셰익스피어가 말했다.

성격이 운명이다.”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부여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성격이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이 말을 아주 좋아한다.

 

반 년 가까이 매달려 쓴 장편의 초고. 아직 이름도 붙이지 않았지만 여하튼 퇴고에 들어갔다. 물론 퇴고는 초고에 비해 마음이 여유롭다. 비유하자면 한 채의 집을 짓는 데 기둥이니 지붕이니 벽채니 다 해놓았고 이제는 미장하는 단계라 할까.

 

물론 그렇다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초고 속 인물들이 이미 성격을 갖춘 존재들이라서, 작가인 나 자신도 함부로 건드리거나 수정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춘향전에서 춘향이를 탐하는 변학도가 느닷없이사실 나는 향단이가 더 좋다!’고 선언한다면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이는 춘향전 이야기를 지어낸 작가(물론 미상이지만)도 철칙처럼 준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초고에서란 인물에 매력을 느낀다. ‘는 실종인 찾기 전문인이다. 의뢰 받은 실종인을 찾아주고는 보수 받아 살아간다. 매는 시력이 3.0이라서 200미터 앞에 있는 구슬을 본다. 매는 냄새 잘 맡는 개 한 마리를 끌고 다닌다. 매는 내몽골인이다.

매는 그의 본명이 아닌 별명이다. 별명으로 살아간다.

 

매가 등장하기는 소설의 전개 후반부이다. 어떻게 해야 매를 더 실감나게 독자들한테 보여줄 수 있을까? 그 점이 퇴고의 관건이다. 요즈음 그런 행복한 고민 속에고생고생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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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배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극작가셨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배의 친동생은 이름난 시인이다. 그런 집안 분위기로 봐 후배는 문인이 될 법했다. 하지만 문인이 되는 일 없이, 평범한 국어교사의 길을 밟은 후배.

 

그 까닭에 나는 후배를 볼 때마다 속으로 의아해했다. 집안 분위기에 더해, 외양까지 바짝 마른 데다가 눈빛까지 형형해 시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후배는 고달픈 교직생활 속에서 시심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시를 항상 발표하는 시인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백묵가루를 날리는 국어교사로서 성실하게 사는 모습.

 

그런데 후배한테 독특한 생활습관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얘기 듣게 되었다. 후배는 일요일 새벽이면, 여기 춘천에서 속초 동명항까지 혼자 차를 몰고 가서는 신선한 회 한 접시를 사 먹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나 다니기 좋지만 그 당시에는 몹시 구불구불한 데다가 좁은 2차선 국도였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을 일요일 새벽에 혼자서 그런 국도를 차 몰고 동명항까지 간다는 후배. 상상만으로도 위험하고 이해가 안 됐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오늘 나는 아내와 속초 동명항에 바람 쐬러 왔다가 후배의 그 이해가 안 되던 독특한 습관이 섬광처럼 납득되었다. 후배는 단지 신선한 회 한 접시 때문에 동명항에 다닌 것이 아니라 부두에서 만나는 풍경들 때문에 다녔다는 것을.

끝없이 일렁이는 검푸른 바다. 밤새 조업을 마치고 귀항하는 어선. 혹은 조업하러 아침 일찍이 항구를 나서는 어선. 긴 방파제 끝의 빨간 등대.

 

나는 깨달았다. 비록 시를 쓰지 않았지만 후배는 시인이었다. 원고지에 갇혀 지내기를 거부했을 뿐 그는 진정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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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덕 선생님이 그 특유의 팔자걸음으로 괜한 헛기침까지 하며 내게 다가왔다.

이 선생. 이번 교직 연수에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교직에서 연수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승진에 반영되는 연수. 다른 하나는 승진에 반영되지 않고 단지 참가해 강의를 받는 데 그치는 연수. 승진에 반영되는 연수의 경우, 시험을 치르는 것은 물론이고 그 때마다 겪는 시험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그러니 단지 강의를 받는 데 그치는 연수를 선호할 만한테 나는 그조차 꺼려했다. 그런 연수는 귀담아들을 게 없는강사(講師)들의 시간 때우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내 결론은, ‘모든 연수는 싫다!’ 였다.

그래서 김병덕 선생님이 조심스레 내게 다가온 것이다. 20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는 연수로서 승진과는 관련 없지만 여하튼 연수라면 일단 거부하는 나를 달래려고 다가와 그러는 것이다.

이 선생이 가 봐야지 어떡하겠어?”

보나마나, 학교 별로 한 사람씩 그 연수에 참가하라고 벌써부터 공문이 왔는데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하자 하는 수 없이 교직 경력이 낮은 편인 나를 대상자로 정한 게 아니겠는가. 솔직히, 다른 연세 많은 선생님이 그런다면 나는 안면몰수하고 단호히 거부의사를 밝혔을 테다. 하지만 김병덕 선생님한테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춘고 3학년 학생일 때 담임선생님이셨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같은 국어과 교사로서 작문 분야에 있어서는 거리낌 없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학창시절에는 사제지간이다가 세월이 흘러 교직에서 선후배 사이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알겠습니다.”

내가 마지못해 승낙하자 김병덕 선생님은 옛날 제자가 자신의 위신을 세워줬다는 생각인지 미소를 지으며 돌아갔다. 김병덕 선생님은연수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연구과장이다.

문제는 그 후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영양가 하나 없는, 강사의 시간 때우기 연수를 듣느라 20시간이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을 걸 생각하니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퇴직한 지 오래인데 무슨 연수야?’

꿈이었다.

꿈에서 깼다. 이른 새벽, 우리 집이었다. 퇴직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교직에 있었을 때 꿈을 꾸다니.

'김병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어언 27. 꿈속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선생님을 뵈었다. 특유의 팔자걸음이며 구부정하게 큰 키. 생전에 같은 학교에 재직할 때 제자인 내가 선생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선생님이 내 눈치를 볼 때가 많았다. 나는 순순한 제자가 못 되었다. 후회가 된다.

김병덕 선생님. 그곳에서 잘 계시는지요. 이렇게 제자가 안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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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가을은 춘천 mbc 사옥이 있는 곳에 가야 볼 수 있다. 가까이로는 공지천이, 멀리로는 봉의산 자락의 건물들까지 한눈에 보이는 그곳에이 가을을 맞아 한국현대조각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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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행운이었다. 20평쯤 되는 공간에서, 신촌블루스의 객원 가수로도 활동한 실력파 여 가수 이은근 님의 라이브 노래를 듣게 되다니!

혼을 빼앗듯 강렬한 노래도 노래이지만 나는 노래 중간의 멘트에 온몸의 전율을 느꼈다. 이은근 님은 이런 멘트를 했다.

제가 영화 흑인 올훼ost로 나온 카니발의 아침에서 주인공이 한 대사에 감명을 받았지요. 이런 대사였습니다. ‘내가 이 기타로 저 태양을 뜨게 하겠다.’ ”

 

사실 태양은 아침이면 당연히 동녘에 뜨는 것이다. 자연현상이니까. 그런데 자기가 기타를 쳐야만 새벽의 어둠이 걷히고 태양이 뜰 수 있다는 그 믿음.

그런 믿음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출발점이 아닐까. 인류의 예술은이 밤을 춤추고 노래 부르며 을 달래야만 다음 날 아침 태양이 뜰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발라드 댄스 )

 

카니발의 아침

우울한 곡처럼 들리지만 사실 사랑을 찬미하는 내용이란다. 프랑크 시나트라, 루치아노 파바로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조수미 등 수많은 세계적인 가수들이 노래 불렀다.

이제 춘천의 이은근 가수가 그들의 뒤를 이어 노래 부르고 있다.

여기는 가을이 깊어가는 화천 감성마을, 휴관한 날(2019.10.15.)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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