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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배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극작가셨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배의 친동생은 이름난 시인이다. 그런 집안 분위기로 봐 후배는 문인이 될 법했다. 하지만 문인이 되는 일 없이, 평범한 국어교사의 길을 밟은 후배.
그 까닭에 나는 후배를 볼 때마다 속으로 의아해했다. 집안 분위기에 더해, 외양까지 바짝 마른 데다가 눈빛까지 형형해 시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후배는 ‘고달픈 교직생활 속에서 시심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시를 항상 발표하는 시인’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백묵가루를 날리는 국어교사로서 성실하게 사는 모습.
그런데 후배한테 독특한 생활습관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얘기 듣게 되었다. 후배는 일요일 새벽이면, 여기 춘천에서 속초 동명항까지 혼자 차를 몰고 가서는 신선한 회 한 접시를 사 먹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나 다니기 좋지만 그 당시에는 몹시 구불구불한 데다가 좁은 2차선 국도였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을 일요일 새벽에 혼자서 그런 국도를 차 몰고 동명항까지 간다는 후배. 상상만으로도 위험하고 이해가 안 됐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오늘 나는 아내와 속초 동명항에 바람 쐬러 왔다가 후배의 그 이해가 안 되던 독특한 습관이 섬광처럼 납득되었다. 후배는 단지 신선한 회 한 접시 때문에 동명항에 다닌 것이 아니라 … 부두에서 만나는 풍경들 때문에 다녔다는 것을.
끝없이 일렁이는 검푸른 바다. 밤새 조업을 마치고 귀항하는 어선. 혹은 조업하러 아침 일찍이 항구를 나서는 어선. 긴 방파제 끝의 빨간 등대….
나는 깨달았다. 비록 시를 쓰지 않았지만 후배는 시인이었다. 원고지에 갇혀 지내기를 거부했을 뿐 그는 진정 시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