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님은, 무심이 SNS 활동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분이다. 항상 알찬 글을 정성스레 써서 올리는 그의 모습에 무심은 처음부터 호감을 느꼈다. 교직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분으로 직감했는데 이번에 내신 책길에서 만난 한자을 보니 과연 그런 분이었다.

책 표지 뒷면에 찔레꽃 님의 모습 사진이 있었다. 역시, 그 동안 SNS 상으로 느낀 그대로 여기저기, 한자들을 찾아다니느라 바쁜모습이었다. 앞으로 무심이 책을 낼 때는 이런 찔레꽃 님의 사진 모습을 많이 참고해야 할 듯싶다.

 

 

찔레꽃 님의 성실한 작업은, 우리가 한자문화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한자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살아온 역사·문화 대부분을 잃어버린다.

 

https://blog.aladin.co.kr/723219143/10811060

  무심은 찔레꽃 님이 책을 내신다면 반드시 한 권 사야지결심했었다. 그런데 그 결심을 깜빡 잊고 님한테 길에서 만난 한자책을 받고 말았다. 님이 새 책을 냈다는 소식에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던 탓 같다.

​  어쩌면 장편소설을 집필하느라 마음의 경황이 없었던 때문인 듯도 싶다.

 

 

   한문 선생님의 교실 밖 한문수업이라는 부제를 단 길에서 만난 한자.

찔레꽃 님의 본명을 알았다. 책 표지에 있었다. ‘김동돈

김동돈 님의 책을 곁에 두고 틈나는 대로 다 읽은 뒤 독후감을 블로그에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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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원주민이 쓰는 모자를 즐겨 쓰는 사내. 흔치 않은, 쇠붙이 갖고서 작품을 만드는 사내. 그뿐 아니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누구나 부러워하는 명문대학교 국어국문과 출신이었다.

 

 

서울 강남의 어느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을 법한데 현재삼막골이란 산골마을에서 쇠붙이와 씨름하며 살고 있다니 내 호기심은 더 이상 가만있기 어려워졌다. 그 이전에 SNS로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았던 데다가 내 작품집 'K의 고개''숨죽이는 갈대밭'을 선사하였으므로 전화 한 번 걸어도 실례가 될 것 같지는 않은 터.

 

 

안녕하십니까? 저는 하는데 사내는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이미 지인을 대하듯 반가움이 묻어났다.

사내의 거처를 방문하고 싶다는 내 제의는 쉽게 이뤄졌다. 심지어 사내는 이런 말까지 덧붙였다.

먼 길 마다하고 찾아오신다니 저야 고맙죠 뭐.”

 

 

아내를 차에 태우고 출발할 때만 해도 나는 사내가 사는 삼막골로 가는 길이 그리도 험한지 몰랐다. 구절양장은 기본이고 맞은편에서 다른 차가 올까 겁나는 비좁은 벼랑 도로라니. 간신히 한 시간 남짓 걸려 사내의 거처에 도달했다.

 

 

(같은 춘천에 이렇게,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려 닿는 데가 어디 또 있을까?) 가는 도중에 오리무중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 길을 가야 하느냐?’고 전화를 한 번 해서 그런지 사내는 자기 집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기다리고 말고도 없었다. 집이 길가에 있어서 집 밖으로 나서면 길이었으니까.

  

 

 

*이상은 지난 529일에 쓴 것이다. 우선은 여기까지 쓰고 기회가 되는 대로 더 써서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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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의 지인(知人) 봉명산인이 나서서 ‘산막골과 삼막골’ 지명 논란에 쐐기를 박는 귀한 댓글을 달아 올렸다. 결론은 ‘산막골이라 하는 게 옳으나 삼막골로 써도 그리 틀린 게 아니다’였다.
봉명산인.
나는 봉명산인만큼 인문사회 분야에 해박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와의 인연은 1977년 겨울 어느 날 동해안의 어느 소읍에서 시작된다. 나중에 별도로 수필을 써서 봉명산인 그를 소개할 것이다.
‘삼막골 과 산막골’지명 논란에 대한 그의 댓글을 소개한다.
『 옛 춘성군.춘천시 공편 '춘천지(1984년 간)'와 이를 모본으로 춘천문화원이 1995년 펴낸 '춘천의 지명유래'에는 2,500여 개의 옛 소지명과 그 유래가 간략 서술돼 있음. *그 중에 '삼막골' 지명은 동산면과 사북면에 각 1개씩 나오고, '산막골'은 북산면에 한곳 있음. *'삼막골'은 옛날 산삼을 캐러 다니던 사람들(심마니)이 산중에 막을 치고 모여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일종의 고유명사임. 전국에 이런 동일유래-동일지명 여럿. *'산막골'은 산골짜기에 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통칭해서 붙는 일반명사형 지명임. 그런데, 깊은 골짜기에 움막치고 머무는 사람이 심마니 아니면 약초꾼밖에 더 있겠는가? 해서 흔히 '산막골'='삼막골'..같은 의미로 고유명사화 지명 혼용함. 지도 찾기에 삼막골로 표기되는 연유임. *따라서 위 삼막골이 북산면 소재라면 본래 지명으론 '산막골'이 맞으며, 삼막골도 꼭 틀린 말은 아님. *우안 선생이 소양댐 물길건너 동네에 살며 그림 그리는 걸로 아는 바 (옛날 그 자제를 풍물지도. '소나무 화가'에 걸맞게 자제 이름에도 '솔' 있음. 부인께서 뒷바라지 고생 많으셨는데 좀 나아지셨는지 궁금), 무심 내외분이 방문하신 삼막골이 그 분의 우안과 인연으로 보나 험한 산세지형으로 보나 북산면 그 '산막골'로 추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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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양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참담한 현실이 드러날 것이므로.

 

깊은 잠재의식에서 떠오르는 슬픈 기억 같아서 K는 언제나인양현장을 지켜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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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외수형이 SNS에 올린 글을, 내가 읽어보고서 분개했다. 형이 감성마을의 정서적 환경 조성 차 몽요담에 산천어를 백만 원어치나 사다 넣었는데 수달들이 하룻밤 새에 다 잡아먹었다는 거다.

형한테 물었다.

그 못된 놈들을 왜 그냥 내버려둡니까?”

형이 답했다. ‘수달들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천연기념물이라 함부로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몇 년째 당하며 산다고. 그 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행패를 부리면 당장 사법처리 되지만 수달들은 행패를 부려도 법적 보호 대상이라니, 세상에 이런 불공평이 있나?’

 

그러면서 시간이 많이 흘렀다.

감성마을의 문하생 한 분이 근래 들어 정말 감성 풍부한 글들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팍팍한 삶의 날들에서 모처럼 보는 감성 풍부한 글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장면이 떠올랐다. 그분이 그런 감성에 젖어 있을 때 주변 숲속의 수달들이 고개를 기웃거리는 장면이다. 그 장면 속의 수달들 행동을 내가 사람 말로써 통역하자면 이렇다.

젠장, 산천어는 몽요담에 넣지 않고 뭐하고 있는 거야?”

 

철저하게 본능에 충실한 감성마을 수달들.

그런 생뚱맞은 장면을 떠올려본 뒤 나는 이상하게 그들에게 정이 간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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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작품집 ‘K의 고개를 발간하기 직전의 일이다. 250여 페이지의 게재 작품 원고가 마무리돼 출판사로 보낼 시점인데, 문제는 외수 형의 추천사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내는 책이므로 마냥 출판사로의 원고 송부를 늦출 수도 없었다. ‘이거 어떡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사실 그 며칠 전에 에둘러 형한테 추천사 송부를 독촉했지만감감무소식인 거다. 그럴 만했다. 내가 작년 늦봄부터 두어 번 감성마을에 가 봤으므로 형의 생활이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에, 모 관청과의 송사(訟事), 남예종전문학교 학장 일에, 그 외 초대받은 강연 문제에도대체 쉴 시간이 없어 보였다.

 

 

나는경우에 따라서는 추천사 없이 두 번째 작품집을 낼 수도 있다는 각오를 했다. 그 순간 형의 추천사가 이메일로 왔다. 새벽시간이었다.

밤을 지새우고 아침 해가 훤히 뜬 뒤에 잠자리에 드는 형의 습성을 잘 알기에, 형이 밤새 내 추천사를 쓰느라 꽤나 고생했을 게 뻔했다.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써 주는 추천사가 아니었다. ‘저는 습작기 시절부터 작가 이병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로 시작되는 형의 추천사는 무려 2페이지나 되었다.

 

 

내 아내가 그런 형의 고마움을 잘 알기에 한 번 감성마을을 방문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벼르기를 몇 달째.

지난 57일 남편() 차에 동승하여 화천 감성마을에 가게 된 연유다.

 

 

 

그 날은 감성마을이 쉬는 날이었다. 개그맨이자 가수인 김철민 님과 문하생 이시유 님이, 형과 함께 우리 부부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형은 제수(弟嫂)씨를 위한 특별공연으로 그 반가움을 표했다. 직접 마이크를 잡고 노래 여러 곡을 부른 것이다.

 

마른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지난 가을날

당연히 정원의허무한 마음도 불렀다.

 

 

형과 나의 인연이 반세기가 돼 간다.

그 날 형이 감성마을 이곳저곳을 안내해 가며 오랜 인연의 반가움을 누릴 때, 못된 그들이 그런 반가움을 눈치 채기나 했을까?

 

 

 형이 감성마을의 환경조성을 위해 몽요담에 산천어들을 사다 놓을 때마다, 죽어라 하고 달려들어 모조리 잡아먹는다는 못된 수달들 말이다. 하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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