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원주민이 쓰는 모자를 즐겨 쓰는 사내. 흔치 않은, 쇠붙이 갖고서 작품을 만드는 사내. 그뿐 아니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누구나 부러워하는 명문대학교 국어국문과 출신이었다.

 

 

서울 강남의 어느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을 법한데 현재삼막골이란 산골마을에서 쇠붙이와 씨름하며 살고 있다니 내 호기심은 더 이상 가만있기 어려워졌다. 그 이전에 SNS로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았던 데다가 내 작품집 'K의 고개''숨죽이는 갈대밭'을 선사하였으므로 전화 한 번 걸어도 실례가 될 것 같지는 않은 터.

 

 

안녕하십니까? 저는 하는데 사내는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이미 지인을 대하듯 반가움이 묻어났다.

사내의 거처를 방문하고 싶다는 내 제의는 쉽게 이뤄졌다. 심지어 사내는 이런 말까지 덧붙였다.

먼 길 마다하고 찾아오신다니 저야 고맙죠 뭐.”

 

 

아내를 차에 태우고 출발할 때만 해도 나는 사내가 사는 삼막골로 가는 길이 그리도 험한지 몰랐다. 구절양장은 기본이고 맞은편에서 다른 차가 올까 겁나는 비좁은 벼랑 도로라니. 간신히 한 시간 남짓 걸려 사내의 거처에 도달했다.

 

 

(같은 춘천에 이렇게,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려 닿는 데가 어디 또 있을까?) 가는 도중에 오리무중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 길을 가야 하느냐?’고 전화를 한 번 해서 그런지 사내는 자기 집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기다리고 말고도 없었다. 집이 길가에 있어서 집 밖으로 나서면 길이었으니까.

  

 

 

*이상은 지난 529일에 쓴 것이다. 우선은 여기까지 쓰고 기회가 되는 대로 더 써서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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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의 지인(知人) 봉명산인이 나서서 ‘산막골과 삼막골’ 지명 논란에 쐐기를 박는 귀한 댓글을 달아 올렸다. 결론은 ‘산막골이라 하는 게 옳으나 삼막골로 써도 그리 틀린 게 아니다’였다.
봉명산인.
나는 봉명산인만큼 인문사회 분야에 해박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와의 인연은 1977년 겨울 어느 날 동해안의 어느 소읍에서 시작된다. 나중에 별도로 수필을 써서 봉명산인 그를 소개할 것이다.
‘삼막골 과 산막골’지명 논란에 대한 그의 댓글을 소개한다.
『 옛 춘성군.춘천시 공편 '춘천지(1984년 간)'와 이를 모본으로 춘천문화원이 1995년 펴낸 '춘천의 지명유래'에는 2,500여 개의 옛 소지명과 그 유래가 간략 서술돼 있음. *그 중에 '삼막골' 지명은 동산면과 사북면에 각 1개씩 나오고, '산막골'은 북산면에 한곳 있음. *'삼막골'은 옛날 산삼을 캐러 다니던 사람들(심마니)이 산중에 막을 치고 모여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일종의 고유명사임. 전국에 이런 동일유래-동일지명 여럿. *'산막골'은 산골짜기에 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통칭해서 붙는 일반명사형 지명임. 그런데, 깊은 골짜기에 움막치고 머무는 사람이 심마니 아니면 약초꾼밖에 더 있겠는가? 해서 흔히 '산막골'='삼막골'..같은 의미로 고유명사화 지명 혼용함. 지도 찾기에 삼막골로 표기되는 연유임. *따라서 위 삼막골이 북산면 소재라면 본래 지명으론 '산막골'이 맞으며, 삼막골도 꼭 틀린 말은 아님. *우안 선생이 소양댐 물길건너 동네에 살며 그림 그리는 걸로 아는 바 (옛날 그 자제를 풍물지도. '소나무 화가'에 걸맞게 자제 이름에도 '솔' 있음. 부인께서 뒷바라지 고생 많으셨는데 좀 나아지셨는지 궁금), 무심 내외분이 방문하신 삼막골이 그 분의 우안과 인연으로 보나 험한 산세지형으로 보나 북산면 그 '산막골'로 추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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