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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의 전쟁
린바이 지음, 박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4월
평점 :
난 '여성'이 들어가는 책은 대충 사버린다. 남자라는 한계는 있지만 내가 여성의 열악한 처지에 공감하고 있으며, 거창한 실천은 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책을 사는 게 여성의 권리신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한 여자의 전쟁>이란 책도 그래서 샀다. 그런데 이건 영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시시콜콜한 경험담을 늘어놓은 이 책을 난 시종 짜증스럽게 읽었다. 앞부분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뒷부분은 답답한 주인공 때문에 혀를 끌끌 차며 읽었다. 주인공 여자가 얼마나 짜증스러운지 한번 살펴보자.
여대생인 주인공은 혼자 여행을 나서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사람에게 나의 진짜 이름과 나이, 직장까지 다 알려주었다. 게다가 이번 여행이 혼자 하는 여행이라는 걸 강조해서 말했다" 여성에게 위협적인 사회에서, 이쯤되면 좀 모자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 다음 장면.
[주인공: 당신과 한방을 쓸 수는 없어요!
늑대: 써야 돼!
주인공: 그럼 당신은 다른 데서 자요!
늑대: 그래, 그렇게 하지.
주인공: 맹세해요!]
이 맹세를 '맹세'로 여기는 남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르겠다. 결국 주인공은 알고보니 유부남이었던 늑대에게 정조를 빼앗긴다. 그러면 정신을 차려야지, 그다음 사람을 만나도 여전히 그런다.
[나는...독신남성은 위험할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여전히 사실대로 대답했다. 나는 혼자 여행을 하고 있으며...아는 사람도 없다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늑대 눈의 사내는 할 일이 없어 시간이 아주 많으니 나와 함께 가주겠다고 했다...순간 나는 늑대 눈의 사내가 나를 인적이 없는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나는...생각했다. "이제 끝장이구나!"
그 '끝장'을 만든 건 여자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물론 남자가 훨씬 더 나쁜 놈이겠지만 말이다. 다행히 구세주가 나타나 여자는 위기를 탈출하는데, 그 후의 행적을 보라. "그날 밤 늑대 눈을 가진 남자가...사진을 보여준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의 방으로 갔다" 정말 짜증나지 않는가? 여기서 늑대눈의 남자는 여자에게 약을 탄 우유를 먹이는데, 또다시 구세주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준다. 그 다음 장면.
"시를 읽던 젊은이는 나에게 신뢰감을 주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혼자서 여기에 왔으며 예정지가 어디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정말이지 당하고 싶어 안달인 여자인 듯하다. 다행이 이 남자는 착한 사람이라 별일이 없었지만, 언제까지나 남자가 착할 것이라는 지푸라기만한 확률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일은 해야지 않겠는가.
나중에 주인공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데, 물론 그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여자가 애를 가졌다고 하자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수술하면 아프겠지?" "정말 성가시게 됐군" 이런 말을 듣고도 여자는 남자를 포기하지 못하는데, 여자가 애를 지우러 병원에 간 날, 남자는 젊고 예쁜 다른 여자에게 청혼을 한다. 그러고도 한동안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기다린다. 문학에 조예가 없어서인지, 난 이런 류의 사소설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짜증만 나는 작품에 '전쟁'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인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따위가 무슨 놈의 전쟁이란 말인가? 내가 기대한 내용은 이런 게 아니었다. 난 제목에 속았다. 어떤 이는 이 책의 작가를 "중국현대문학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하지만, 이 작가-린바이-의 책은 앞으로 읽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