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온 뒤 예비군 훈련이란 걸 한다. 나처럼 대위로 군대를 갔던 사람은 무려 7년이나 훈련을 받아야 한다(올해로 난 4년차다). 예비군 훈련을 할 때마다 난 예비군이 방위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이 든다. 만사가 귀찮고 할 의지도 없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가르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 게다가 몸도 예전같지 않아 군복 바지의 호크가 채워지지 않는 사람도 꽤 된다. 훈련을 하려면 제대로 하던지, 아니면 하지 말던지 할 것이지, 총을 어깨에 짊어진, 예비군 특유의 폼으로 하루종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운 일이다.
다행히 난 학교에 있다는 이유로 학교 옆 훈련장에서 단 하루만 훈련을 받고 만다. 그렇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은 2박3일간의 동원훈련을 받는다. 하루도 지겨운데 2박3일이나? 내가 혜택을 받긴 해도, 이건 정말 말이 안된다. 솔직히 난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의미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른 이들에게도 시간은 똑같이 소중한 법인데, 학교 사람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지금의 제도는 '사농공상'이란 구시대적 이데올로기의 소산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난 틈만 나면 '형평성'을 잃은 예비군 제도를 비난해 왔다. 그런데.
엊그제, 우편물을 하나 받았다. '지휘서신'이라고 쓰인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귀하는 2004년도 국군의학연구소 미생물반 기생충검사장교 직책으로 지정되어, 유사시에는 현역 장병과 동고동락하며 국가안보를 수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귀하는...국가의 부름에 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04년도 예비군 동원훈련은 5월경에 2박 3일 일정으로 국군의학연구소(대전 유성구/자운대)에서..실시예정이오니 착오없으시기 바라며...]
그러니까 편지의 요지는 내가 기생충검사장교가 되어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동원훈련을 받는다는 거다. 이, 이럴수가! 내가 그간 역설했던 형평성은 2박3일의 훈련을 받는 다른 사람들을 하루로 단축시키자는 거지, 하루만 받던 사람을 사흘로 늘리자는 게 아닌데. 아니 갑자기 웬 기생충검사람? 편지를 보낸 국군의학연구소장이 내가 쓴 책을 너무 열심히 읽은 나머지, 기생충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한 게 아닐까? 원칙이 어떻고 하던 평소의 태도는 내가 희생자가 된 지금, 어디론가 도망가고, 별 둘로 예편한 내 친척에게 어떻게 좀 빼달라고 빽을 써볼까 하는 생각뿐이다. 내가 동원에 들어간 사흘간, 나이많은 벤지는 뭘 먹을 것이며, 대변은 어떻게 싸란 말인가? 5월의 그 좋은 나날을 다른 예비군들과 같이 지내야 한다니, 죽고픈 심정이다. 난 절규해 본다. 이, 이건 음모야! 얄리얄리얄리성 얄라리 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