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7월 11일(화)

마신 양: 소주 두병 플러스 알파

장소: 별궁식당


안국역에서 누굴 만나기로 한 적이 있었다. 약 30분 정도 일찍 도착한 탓에 어디서 저녁을 먹을까 헤매고 다니다, 맛있을 것 같은 식당 한곳을 발견했다. 골목길로 들어가야 하는 곳인데 길눈도 어두운 내가 어떻게 그곳을 찾았을까 지금도 신기한데, 그 이후부터 근처에서 약속이 있으면 대개 그곳으로 안내한다. 그 식당의 이름은 별궁식당, 보쌈이 맛있고 청국장이나 된장찌개가 죽여주는 곳인데, 위치는 후미지지만 맛이 좋은만큼 사람도 늘 바글거린다.


사실 식사장소를 정하는 건 나름대로 스트레스다. 맛있으면 본전, 맛없으면 원망을 들으니 말이다. “난 아무데나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더 까다로운 법이고, 어디갈래,라는 질문을 해서 제대로 답변을 듣기가 힘든 것도 서로들 그런 부담을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다. 하지만 아무리 까다로운 사람도 ‘별궁식당’에 간다면, 그래서 보쌈과 청국장을 시킨다면 칭찬을 들을 수밖에 없다. 충청도에서 올라오셨다 인천으로 가신 귀인도 거기서 모셨고, 미녀 한분과 곰님을 만난 어제도 그곳으로 모셔 칭찬을 들었다. 과장을 하자면 이렇다. 무인도에 갈 때 세가지만 가져가라면, 난 미녀 둘과 더불어 별궁식당을 선택할 거다.


그와 대조적인 곳이 홍대 앞 ‘어심’이라는 회전초밥집이다. 물고기의 마음이라는 간판과 달리 적당히 만들어서 팔아먹으면 된다는 탐욕스런 마음이 느껴지는 곳으로, 며칠 전에 한번 갔을 땐 녹차를 제외하곤 어느 것도 맛이 없었다. 그날만 그랬는지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큰맘 먹고 그곳으로 인도한 내 선택을 사흘간이나 후회할 정도였고, 웬만해선 안그러는데 나올 때 쪽지 한 장을 써서 테이블에 놓고 왔다.

“생선초밥은 영 엉망이었고, 튀김은 간이 전혀 안되어 있었으며, 마끼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마구 만든 것처럼요...”


물론 그집만 그런 건 아니다. 오늘 저녁, 영화와 영화 사이의 한시간 동안 밥먹을 곳을 찾다가, 피카디리에서 종로 쪽으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30미터 쯤 간 곳에서 ‘호야’라는 분식집을 발견했다. 겉보기에 깨끗해서 들어갔는데 이게 또 그렇게 엉망일 수가 없다. 라면이 먹고 싶어서 3000원짜리 뚝배기 라면을 시켰는데, 스프를 넣다가 절반쯤 흘렸는지 싱겁기 그지없다. 면발도 덜 익었고. 난 라면이 식당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요리 못하는 사람도 라면은 잘 끓인다. 조리법이 너무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근데 요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어찌 라면을 그따위로 끓일까. 참다못해 종업원을 불렀다.

“라면이 너무 싱거워서 못먹겠어요. 고춧가루나 간장 좀 주실래요?”

내가 그러면 “다시 끓여드리겠습니다”는 말은 못해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종업원, 아무 말 없이 주방에 갔다가 고춧가루를 가져와 테이블에 탕 놓는다. 고춧가루를 쳐도 쳐도 싱거움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중엔 내가 열을 받아서, 병에 든 고춧가루를 몽땅 넣을 생각을 했다. 맛대가리가 없는 우동을 먹던 앞자리 미녀가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 거다.


정리하면 이렇다. 종로에서는 ‘호야’를 조심하고, 홍대앞에선 ‘어심’을 가선 안된다. 대신 안국역 근처라면 꼭 별궁식당을 가자. 거기 가면 용왕이 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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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6-07-13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청국장 먹고 싶어지네요 ㅠ_ㅠ

starrysky 2006-07-13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별궁식당의 청국장 매우 땡깁니다. 안국동 쪽이랑 별로 안 친하지만 앞으로 친해질 기회를 마련해봐야겠네요.
그리고 홍대 앞 어심은.. 물고기도 사람도 별로 발 디딜 곳이 못되죠. -_-

마노아 2006-07-1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로 호야 알아요. 게다가 거기 선불 받죠? 늘 불친절하고 맛도 없어요ㅡ.ㅜ

이리스 2006-07-1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리는 못하지 않지만 라면은 참 못끓여요. -_-;;

ceylontea 2006-07-13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국역 근처 별궁식당... 가보고 싶어요... 가는 길을 알려주세요... 히.. ^^

한솔로 2006-07-13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궁식당, 회사 사람들이 점심 먹으러 가는 가장 선호하는 식당이죠. 제가 아는 분께 소개했더니 여태 서울에서 먹은 음식 중 다섯손가락에 들 정도다, 라고까지 하셨지요^^ 최근 1000원 올라, 6000원.

기인 2006-07-13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무인도 갈 때 가져가시는 '것'이 미녀 둘과 별궁식당이라니요. ^^ 역시 마태우스님의 비유법은 일가를 이루신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한 번 연구를 해 봐야겠어요. 저는 박사논문 주제는 '유머'로 할까 합니다. 진짜로요. ㅎㅎ

달콤한책 2006-07-13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리 못해요...요리하는데 취미가 없지요. 가정주부가 이래서 원...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 나보다 음식 못한 집이면 배로 화가 납니다. 나보다 못하는 주제에 식당을 해서요 ㅋㅋ

2006-07-13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그때 뵌 그 미녀님의 아이디명은 무언가요? 2. '식객'은 별로였나부네요 ㅜㅜ 3. 담번에는 탁구 한판 치시죠!

마태우스 2006-07-1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한책님/주부라고 다 요리 잘해야 하나요. 책 잘 읽고 서재질 잘하는 것도 좋은 주부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즉 자기 취미가 있는 주부는 좋은 주부다...^^ 하여간 맛없는 식당은 범죄예요!
기인님/유머 연구라, 그거 좋은 주제입니다. 현대 사회의 최대 화두가 유머 아니겠어요. 탁재훈의 순발력도 꼭 연구해 주세요
한솔로님/아아 님은 아시는군요.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구요. 그럼요. 충분히 그럴 자격 있어요.
실론티님/안국역 1번출구로 나가서 오른쪽 골목길, 창덕여고 가는 길로 가다가 별궁1길이라는 조그만 골목길로 접어듭니다. 거기만 찾으면 그담부턴 길따라 가면 되요^^
낡은구두님/라면이 어려운 음식이라는 걸 갑자기 깨닫는다는...^^
마노아님/아앗 맞습니다. 선불까지 받죠... 불친절하고 맛없고...위치가 좋아서 돈버는가봐요. 피해자 모임 함 해야겠네요
스타리님/오랜만입니다. 역시 청국장 얘기를 해야 님이 발걸음을 내딛어 주시는군요. 어심을 아신다니 반갑습니다. 거기 진짜 문제 있죠....??
이매지님/여느 청국장은 아니되어요 별궁 청국장을 드시어요

마태우스 2006-07-1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꼭 기억해 주시어요^^ 제 소개로 왔다고 하면 서비스 주는 거 없답니다^^
곰님/그분은 아이디가 없습니다^^ 글구 식객은 별루였다는 게 아니라 오뎅탕밖에 안먹어서 판단을 유보하는 거구요 탁구라....호호. 저 탁구 기본은 됩니다

Mephistopheles 2006-07-1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녀 두명과 별궁식당...거긴 더이상 무인도가 아니라 지상낙원이겠군요...^^

건우와 연우 2006-07-1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국장맛이 제대로인집을 못찾아 집에서 콩삶아 띄워 먹었는데, 별궁식당 기대가 되네요...^^

ceylontea 2006-07-1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다녀올게요.. ^^

모1 2006-07-1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그런데..생각해보면 마태우스님글에서 미녀는 안 빠지는 것같아요. 갑자기...생각났음..하하...

oldhand 2006-07-1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심은 저도 가 본 적 있습니다. 안국역 동네에서 4년이나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별궁 식당은 본 적이 없네요.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인지?

싸이런스 2006-07-1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사이 술 많이 줄이셨다고 생각했는데 말의 효과였나보네요. 작년 이맘때랑 비교해보니 그 횟수에 큰 차이가 없으시네요?

OTL 2006-08-14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라면 제일 좋아하는데 거기는 구역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