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과 독일의 경기가 연장으로, 그리고 승부차기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내게 주어진 수면시간은 한시간여 남짓이었다. 휴대폰의 알람을 믿기로 하고 잠을 청했으나 막상 일어난 시각은 오전 7시를 넘겼고, 뉴스에선 이탈리아가 3대 0으로 이겼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잘 됐지 뭐. 일방적인 게임이었으니 재미없을 뻔했어.’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내내 잤지만, 피로는 여전했다. 게다가 어제 역시 12시와 4시에 축구를 봐야 하는지라, ‘월드컵 낮잠’을 자기로 했다. 할머니가 두 번이나 날 깨웠지만-한번은 우유 먹고 자라고 깨웠고, 또 한 번은 선풍기를 꺼버렸는데, 난 선풍기가 멈추자마자 일어났다-그래도 계속 잠을 잤다. 오후 세시부터 밤 9시까지, 6시간의 넉넉한 낮잠이었다. 하지만 일어난 뒤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꿈 때문이다.


엄마 앞으로 배달된 편지를 뜯어보니, 항암 화학요법 일정이 잡혀있다. 너무 놀라서 편지를 떨어뜨렸다. 엄마에게 갔다.

“엄마, 솔직히 말해줘.”

“뭘?”

“나한테 말 안한 거 있지?”

“없어.”

“엄마, 위암인 거 언제부터 알았어?”

“....”

“수술 안한 거 보니까 말기네?”

고개를 끄덕하는 엄마, 난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평생 아빠랑 살면서 고생만 하고...엉엉엉...”

이런 말도 했다.

“엄마, 이제부터라도 엄마 말씀 잘들을께요, 엉엉엉.”


그렇게 울다가 잠에서 깼다. 밖은 이미 어두웠다. 난 엄마를 소리쳐 불렀다. 엄마는 부엌에서 혼자 식사 중이었고, 내가 불렀을 땐 마지막 숟갈을 뜬 후였다.

“엄마,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왜?”

“꿈자리가 좀 사나워서.”

“어떤 내용인데?”

“응, 그냥 좀....”

엄마는 피식 웃으셨다.

“그런 꿈 꾸면 좋데. 내가 건강히 오래 살 꿈인가봐.”

그래도 난 불안했다.

“엄마, 위 내시경 한번 받아 보세요.”

엄마는 황당하단 표정을 지으신다.

“얘는, 지난 5월에 니 친구 병원에서 받았잖아. 그 징그러운 걸 또 하니?”

아, 그렇구나. 내 꿈은 그냥 개꿈이었구나. 그렇다면 엄마 말씀 잘 듣는 것도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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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7-02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지막 문장 너무 귀여우시네요...^^

중퇴전문 2006-07-02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월드컵 8강전부터는 연장전 때쯤 보면 될 듯 싶네요. 그래도 브라질전은 4시 시작도 마다하지 않고 개시 전부터 애태워 기다리는 마음.

balmas 2006-07-02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역시 마태우스님!

balmas 2006-07-02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또 세 사람이 나란히 댓글을 달았군요. ^^;;;

마태우스 2006-07-02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안녕하시어요? 이밤에 어인 일이십니까^^
중퇴전문님/그러게요...잉글랜드-포루투칼 넘 재미없었어요. 특히 잉글랜드의플레이는 거칠기만 한 듯...
나어릴때님/귀여움이 제 컨셉입니다 흐흐흫.....

모1 2006-07-02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문장이 반전이군요. 어머니가 이 글 못보게 하시길...후후..

세실 2006-07-0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마태님은 딱 규환이 수준! 다음 기회가 어디있담~
이번 꿈을 계기로 효도하세요~ 하긴 마태님은 굉장히 잘하고 계신거예요~~
제가 효도 해야 할듯....

건우와 연우 2006-07-0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떽, 엄마말씀 잘듣는것도 미루다니요.ㅋㅋㅋ 애둘키우는 엄마...

Mephistopheles 2006-07-0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꿈이 어쩌면...이제 좀 엄마말 좀 들어보렴 하는 꿈이였을지도 몰라요...ㅋㅋㅋ

werpoll 2006-07-0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짝 놀랐어요. 저희 외할아버지도 지금 암 말기시거든요...

다락방 2006-07-02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다음기회로 미루지 마세요!

비자림 2006-07-0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마지막 말에 쓰러집니다. 철푸덕. ^^

달팽이 2006-07-0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의 꿈은 마음으로 늘 가지고 있던 어머님에 대한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이제부터라도 하고 살아라는 잠재의식의 메세지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마태우스님의 꿈이야기를 읽고 이런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보통 사람은 그러면 어머니를 더욱 살갑게 대하잖아요...
징그러울 정도로..
마태님의 글이 어머니께 전달된다면 모를까...

마태우스 2006-07-0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해야겠죠. 무슨 일이 생긴 후 그러는 건 너무 늦은 거니깐요. 감사합니다..
비자림님/제가 좀 심했나요^^
다락방님/말이 그렇단 거죠 ^^
토깽이탐정님/아... 그러시군요. 위암말기면 많이 힘드실텐데..
메피님/엄니가 워낙 바쁘셔서 잘할 기회가 별로 없다는.... 이건 핑계겠죠?
건우와연우님/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넘 미워하지 마시어요
세실님/미녀의 효도를 받는 님 어머님은 정말 행복하신 분.... 전 너무 세상을 미모와 안미모로 보는 듯....
모1님/보실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