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큰손이시다. 먹는 것에 대해서는.


화요일 밤, 전날 마신 술로 속이 안좋아 맥주 두잔만 먹고 집에 들어갔더니 어머님이 김밥을 만들어 놓으셨다. 식탁 위에 몇줄의 김밥이 놓여 있었고, 냉장고에는 김밥 재료가 가득하다.

엄마: 김밥 좀 먹고 자라.

나: 저녁 먹었고, 속이 좀 안좋아요.

엄마: 그럼 저 김밥들 어떡하냐?

나: 내일 먹을께요.

다음날, 난 김밥 두줄을 아침으로 먹었고, 세줄을 도시락으로 싸갔다. 수요일날은 몸이 회복되어 술을 잔뜩 먹고 집에 갔다. 엄마에게 왔다고 인사를 했다. 엄마가 날 보고 반가워하신다.

엄마: 민아, 김밥 좀 먹어라.

나: 저녁 많이 먹어서 더 못먹겠어요.

엄마: 그럼 저 김밥들 어떡하냐?

나: 내일 먹을께요.

자기 전에 잠깐 식탁 위를 보니 세줄 정도의 김밥이 놓여 있다. 심난해졌다.


다음날 아침, 엄마가 김밥을 말고 계시다.

“엄마, 또 김밥 싸세요? 어제 것도 있는데 그거 먹으면 안되요?”

“어제 건 아침에 먹고 지금 싼 건 가져가.”

난 김밥 두줄을 먹고 아침에 싼 것까지 다섯줄을 도시락으로 싸갔다. 인간이 저걸 어떻게 다먹냐 싶어서 조교 선생을 불렀다.

“와, 김밥이다!”

조교 선생은 오이를 빼내더니 한줄을 야금야금 먹는다.

“정말 맛있어요!”

“그렇죠? 우리 엄마 김밥 맛있게 싸세요. 그래도...이틀 먹으니 조금 물리네요.”

“그거야 그렇죠. 김밥은 가끔 한번 먹어야 맛있죠.”

우리 둘은 네줄을 먹어치웠고, 나머지 한줄은 오후 4시쯤 먹었다.


저녁을 먹는 회의가 있어서 거기 들렀다 집에 가니 밤 11시, 날 보자마자 엄마가 이러신다.

“민아, 김밥 먹어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김밥이 또 있단 말인가. 식탁을 본 나는 기겁을 했다. 김밥이 산처럼 쌓여 있다. 김밥 생각에 잠이 안왔다.


아침에 깨보니 엄마는 이미 나가셨고 쪽지만 놓여 있다.

“민아, 식탁에 있는 김밥 아침으로 먹고 나머진 도시락으로 싸가라.”

김밥 두줄을 아침으로 먹고 난 뒤 남은 김밥을 세어봤다. 열다섯줄. 어머니는 아들을 해마나 하이에나, 말미잘 등으로 아는 것일까. 두줄이면 배부를 것을 왜 열다섯줄이나? 종이가방에 김밥을 담아 학교에 갔다. 종이 가방은 억수로 무거웠다.


어제 김밥을 같이 먹은 조교를 부르면 화낼 것 같아, 난 내가 학과장을 하면서 친해진 의대 조교들을 불렀다.

“저... 이거 좀 먹어 주면 안될까요?”

“와 김밥! 맛있겠다! 저희 사람들 다 불러서 먹을께요.”

난 내가 싸온 김치까지 건네 줬고, 내 몫으로 한줄을 챙겨서 방으로 왔다 (사발면에다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1시부터 시작된 수업이 끝난 후 과제물을 보관하러 조교실에 갔다가 다른 조교 선생을 만났다.

“아, 선생님! 김밥 정말 맛있었어요! 정성이 느껴지는 그런 김밥이어요. 햄을 후라이팬에 한번 구웠나봐요.”

내 마음 속에 있던 대답은 “사흘 동안 먹으면 지겨워요!”였지만 그냥 겉으로 웃고 말았다. 오늘은 오리엔테이션 따라가느라 집에 안들어오고, 내일도 대구 결혼식 갔다가 새벽 한시쯤 귀가할 예정이니 김밥의 공포에서 당분간은 해방이다.


* 할머니가 김밥을 좋아하시면 도움이 될텐데, 할머니는 김밥을 전혀 안드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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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2-24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후~ 날마다 먹으면 맛있는 것도 질리는 법이긴 하죠. ^^;;(저희집은 애들이 김밥을 싫어한답니다..ㅜㅜ)

oldhand 2006-02-24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재밌는 글입니다. 그리고, 해마나 말미잘이 많이 먹는 동물이라는 새로운 사실도 깨우쳐 주시는 유익한 글입니다. ^-^
저도 한참때는 어머니가 싸주시는 김밥을 앉은 자리에서 8줄까지 먹어본 적이.. -_-;

실비 2006-02-24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어머님이 대단하시네요..
하긴 저의 엄마의 손이 크셔서 한번 만들면 몇십인분을 만들어놓고 몇날몇일 먹은적 있어요.ㅎㅎ

라주미힌 2006-02-24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날 물리도록 먹는게 '부모의 마음'이라...
먹을 땐 모르죠. 고파야 아는.....
김밥에는 참치가 들어가야.. 치즈하고.. ㅎㅎㅎ

Mephistopheles 2006-02-2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마태우스님이 어머님 섭섭하게 해드린게 있는 건 아니시겠죠...
옛날에 제 어머니는 섭섭한 것이 있으면 같은 음식을 매번 올리면서
무언의 테러를 하셨답니다.

진주 2006-02-2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손이 크시네요^^;
갑자기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라는 그림책이 생각나네요 ㅋㅋ

비로그인 2006-02-24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을 읽으니 김밥이 마구 땡기네요~ >_<
저도 한줄 주셨음 넘 감사했을텐데~ ^^

moonnight 2006-02-2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밥 무지하게 좋아한답니다. 매일 먹어도 안 물릴 거 같은데. 아, 햄 들어간 김밥 먹고 싶어요. ^^; 조교 선생님 은근히 김밥도시락 기다렸는데 마태우스님이 안 불러주셔서 삐진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배고프당. ;;

마태우스 2006-02-24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하하,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제가 다 먹는 줄 알고 좋아서 더 싸주셨을지도...
고양이님/어머낫 고양이님. 죄송합니다.
진주님/시금치 같은 것도 잔뜩 사가지고 "오늘 안먹으면 변해!" 라며 협박을 하십니다
메피님/섭섭하게 한 적 최근엔 없구요. 김밥 테러는 테러가 아니란 말이 있답니다.^^
라주미힌님/호호, 사실 제가 글을 저렇게 썼지만 감사하는 맘으로 먹었답니다.
글구 전 참치보단 햄이...
실비님/어머님의 손이 크다는 건 애정이 크다는 걸 거예요...
올드핸드님/해마가 말이죠 많이먹는 걸 몰랐는데요, 제가 존경하는 작가분이 제 배나온 사진을 보고 해마같다고 해서알게 된 겁니다
아영엄마님/아아 김밥을 싫어하는 아이도 있군요! 요즘 애들은 우리 때와 또 틀린가봅니다.

sweetmagic 2006-02-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류소설인 줄 아랐어요 ~ 크크크

비로그인 2006-02-2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ㅠ ㅎㅎㅎㅎㅎ
열 다섯줄ㅎㅎㅎ

울보 2006-02-24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저 김밥먹고 싶어요,,,,

다락방 2006-02-24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야근중인데요 배가 무지 고파요. 그런데 김밥이라니. 아흑 ㅜㅡ
먹고싶어지잖아요 ㅜㅜ

야클 2006-02-24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김밥은 서민이 즐겨찾는 음식이지요 ㅋㅋㅋ

kleinsusun 2006-02-24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맛있겠당. 저도 김밥 두줄만 주세요.배고파용...
근데 왜 할머니는 김밥을 안 드세요?

panda78 2006-02-24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김밥 먹고 싶어요. 하려는데..
야클니임- ㅋㅋㅋ 맞아요, 그렇지요.

세실 2006-02-2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머니 정말 손이 크시군요~~
우리집은 아이들 소풍 가는날 아침에 온 가족이 김밥 먹고, 저녁에 남은 김밥 계란에 부쳐서 먹긴 하지만 그 다음날까지는 절대 안먹는데 말입니다. 호호호.

박예진 2006-03-0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정말 재미있어요 ~~

마태우스 2006-03-0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진양/님이 재밌다니 저도 좋습니다
세실님/그런 절제의 미가 저희집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판다님/담에 갈 때 김밥이라도 싸갈까봐요. ^^
수선님/그러게요. 돼지고기를 못드시는 거랑 관계가 ...없구나.... 제가 여쭤볼께요
야클님/전 님 편입니다
다락방님/앗 졸리에서 이미지가 바뀌었군요. 음, 졸리와 김밥이라...
울보님/님이 저희동네 사시면 갖다드리는데...^^
나를 찾아서님/대단한 양이죠?? 드는데 어깨가 아프더이다
매직님/그래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