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는 건 내게 기쁨이었다. 어느 정도의 미모가 보장되는 스튜어디스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어쩌다 비행기를 탈 때면 난 비행시간의 짧음에 아쉬워하곤 했다. 그런데 태국에 가느라 다섯시간을 날아갈 때, 난 비행기도 지겨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스페인에 비하면 태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열한시간 동안 날아가서 파리에 간 뒤 비행기를 갈아타 마드리드까지 두시간을 더 날아야 했으니 말이다. 좌석에 달린 TV의 채널을 비행기 위치가 표시된 지도에 맞춰놓고, 가져온 책을 읽으며 짬짬이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러시아는 징그럽게 넓었다. 아무리 가도 러시아였고, 귀가 따갑게 들었던 우랄산맥까지 가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앞으로 외국을 안갈 거니 그렇게 장시간 비행기를 탈 일은 없겠지만, 하여간 난 의자를 뒤로 제끼는 버튼을 없앴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일등석이나 비즈니스 클래스는 저 세계 얘기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코노미를 타야 한다. 이코노미의 좌석 간격은 나 정도의 키를 가진 사람에게도 충분히 버겁다. 그런데 앞사람이 의자를 뒤로 제낀다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고충을 아는지라 대개 사람들은 의자를 제끼는 경우가 드물지만, 간혹 가다가 그런 인간이 있다. 파리에 갈 때 내 앞에 탄 젊은 외국인이 그랬다.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 주의를 받고, 가는 동안 혼자서 맥주 수십캔을 비운 거야 내 알바 아니지만, 그 인간이 의자를 심하게 제끼는 바람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나도 불편하지만 스페인 미녀가 자리를 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그에게 말을 안할 수가 없었다 (내가 영어를 못하니 스페인 미녀가 대신 말했다. “Too narrow!"라고). 물론 그는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수시로 등받이를 뒤로 제꼈다. 좌석에 달려있는 기능을 쓰는 건데 니가 왜 상관이냐는 듯이.


서울에 갈 때는 다행히 괜찮은 사람을 만났지만, 내 옆의 아저씨는 의자를 제끼는 앞사람을 만나 불편을 감수한 채 앉아 있어야 했다. 앞사람이 어떠냐에 따라 여행의 피로도가 달라지는 작금의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으며, 그런 걸 운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최소한 이코노미에서는 제끼는 버튼을 쓰지 못하게 할 것을 강력히 제안하는 바다.


* 파리에 갈 때, 내 옆의 커플은 미스테리 그 자체였다. 그 남녀는 여행을 가는 동안 거의 한마디도 안했다. 서로 모르는 사이구나 싶었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여자 무릎을 베고 눕는다 (자리 하나가 비어서 그게 가능했다). 남자는 두 시간 이상을 그 자세로 잤는데, 여자가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생각을 내내 했다. 잠에서 깬 남자는 다시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권태기에 접어든 남녀의 모습?


** 올 때 비행기에서 먹었던 사발면은 정말 환상 그 자체였다. 짜먹는 고추장과 더불어 먹었는데, 채 익지도 않은 면발의 맛은 지금도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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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6-02-1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잼 있게 놀다 오셨죠??
그래서 뱅기 보딩을 할때는 맨 앞자리, 맨 뒷자리, 중간문에 위치한 자리를 달라 하셔야 하거든요...다리도 뻗고, 뒤로 누워서도 가고.
근데 저 미스테리커플 저랑 제 짝이랑 비슷한데요.

이리스 2006-02-1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행의 로망, 짜먹는 볶음 고추장.. ㅋㅋ

Mephistopheles 2006-02-1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가 이번 미국 가실 때 항공사의 실수로 예약이 잘못되어서
죄송하다면서 비지니스 클래스로 가신 적이 있으셨는데요..
어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밥주는 그릇부터 틀리다..라고 그러시더군요..^^

아영엄마 2006-02-1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비행기 안에서 사발면도 먹을수 있어요? @@

2006-02-16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06-02-16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에 한국 올 때 메뉴를 보니 중간 스넥. 이라고 써있길래
내심 사발면을 눈빠지게 기다렸건만 초코 아이스크림 바를 주더군요 꺼이꺼이
라면 기다리던 입에 아이스크림이라니..좀 먹다 내팽개쳤어요 ㅠ_ㅠ
나쁜 노스웨스트. 국적기나 유나이티드는 라면 주던데 흑흑

비로그인 2006-02-16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정말 사랑하는 모습?

마늘빵 2006-02-16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미녀에 대한 페퍼를 올려주세요. 미녀 미녀!!

moonnight 2006-02-1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발면이 얼마나 맛있었을지 상상이 됩니다. ^^; 엥. 예의없는 외국인 땜에 힘드셨군요. 전 좀 불편해도 비행기 타는 거 좋던데요. 내릴 땐 너무 아쉽더라고요. >.< 맘껏 책도 읽을 수 있고 특히 밥도 자주 주고요. 헤헤 ;;;;

모1 2006-02-16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사발면이 가장 인상깊으셨군요. 그런데 정말 앞으로 외국 안가실껀가요? 후후..

울보 2006-02-16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신혼여행때 부부가 생각나는군요, 여행사에서 가이드로 붙었는데 그 부부만 나혼자 여행이고 그리고 기내에서 무슨 술을 그리많이 사는지,
타고 갈때도 내릴때도 우리 그사람들 술장사하는줄알았습니다,

산사춘 2006-02-1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석이름들도 맘에 안들어요. 누군 절약이고 누군 비즈니스?

다락방 2006-02-16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비행기안에 오래 앉아있는거 너무 힘들죠? 저도 뉴욕에 간다고 열세시간 앉아있는데 기내식이 소화가 안되더라구요. 정말 끔찍했어요. 마태우스님 제안대로 의자를 제끼는 버튼을 없애거나, 제껴도 불편이 없도록 사이를 넓게 띄우거나 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징글징글 해요. ㅜㅜ

하루(春) 2006-02-17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자리 외국인 조용히 불러서 한 대 때려주고 싶었을 것 같아요. 저 같으면... 아니면, 스튜어디스한테 얘기하든가... 아, 화 나...
이코노미.. 정말 문제있어요.

마태우스 2006-02-1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안그래도 담배와 지나친 알콜로 인해 스튜어디스들한테 찍혔었어요.
다락방님/열세시간의 비행, 이제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넓게 띄우는 건 돈 문제 때문에 안될 것 같으니 버튼이라도 못쓰게 하면 좋겠어요
산사춘님/듣고보니 그러네요 재치덩어리 춘님.
울보님/술 사는 건 좀 낫지만, 그사람은 공짜라고 맥주를 무진장 마시더이다.
모1님/네..앞으로는 안가려구요... 근데 그 사발면 진짜 맛있었어요
달밤님/님은 비행기 체질이시군요^^
아프락사스님/님의 관심은 저에게서 멀어지셨군요 오직 미녀만...흑..
주드님/네??? 사발면을 사랑하는 모습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키티님/사발면과 아이스크림은 절대 호환이 안되는 상품이지요^^
아영엄마님/저도 이번에 첨 알았어요. 그리 맛있는지도...^^
메피님/그런 실수는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제가 탄 비행기는 비즈니스랑 일등석에 외국인밖에 없더이다...
낡은구두님/맞다, 구두님은 외국여행 경험이 꽤 있으시지요??
강쥐님/그런 자리 앉으면 정말 좋죠. 그 외국인은 참고로 그런 자리였음에도 의자를 뒤로 제꼈다는... 글구 미스테리 커플이 강쥐님과 비슷하다니 맘이 아픕니다
따우님/그렇게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