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부터 이런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양이가 죽었습니다. 제가 매일 아침 참치캔을 줬던 바로 그 녀석 말입니다.
어제 늦게 잔 탓에 오늘 아침엔 다소 늦게 일어났어요. 오전 6시 반이면 저희집 차 밑에서 야옹거리고 있던 고양이를 생각하며 황급히 밖으로 나갔어요. 하지만 사납게 생긴 고양이 세마리만 저를 째려볼 뿐, 회색털에 다리를 저는 녀석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늦게 나왔다고 삐져서 가버린 건가, 아니면 저 고양이들 등쌀에 어디론가 가버린 건지.
서둘러 출근준비를 하고, 큰길로 나가기 위해 예식장 주차장을 가로지르려던 저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고양이 한마리가 옆으로 누운 채 죽어 있었으니까요. 불안한 마음에 얼굴을 들여다본 저는 그게 녀석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이별은 가슴이 아프기 마련이듯, 오늘 아침 겪은 이별도 저로 하여금 아무 생각도 안나게 만드네요. 어젯밤 늦게 어머니와 그 길을 가로지를 때만 해도 녀석의 흔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녀석은 아마도 오늘 새벽에 그곳으로 와서 죽음을 맞았나 봅니다.
녀석을 처음 본 건 2001년 가을 무렵이었을 겁니다. 애처로운 얼굴로 집앞에 앉아 있는 게 딱해서 먹을 것을 준 게 인연의 시작이었지요. 그 뒤 만 4년하고도 4개월간을 더 지냈으니 아침만 대충 챙겨 줬지만 마치 제가 키운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두들겨 맞아 부러진 다리가 잘못 붙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저는 녀석의 눈빛은, 사나운 표정으로 절 노려보던 다른 도둑고양이들과 달리 정감이 갔습니다. 사람에게 하도 당했는지 제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는 그래도 제가 부르면 저한테 오곤 했고, 제 앞에서 귀여운 동작을 보인 적도 있답니다. 한때 저희집 옥상에서 기를 생각까지 했지만, 여러가지 사정상-도둑고양이에게 옥상은 감옥일지도 모르니깐요-그렇게 하지는 못했었지요. 쓰다듬어 준 적은 한번도 없지만 세월의 깊이만큼 고양이에게 정이 들었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에도 고양이 아침을 챙겨주러 일찍 일어나려 했답니다.
하지만 이제 녀석과는 영영 이별이네요. 녀석이 왜 죽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유난히 추운 올 겨울이 녀석의 죽음을 재촉한 측면도 있었겠지요. 옆으로 길게 누운 녀석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애려 오네요. 사람에게 왕후장상의 씨가 없듯이, 도둑고양이로 태어나는 고양이는 없습니다. 좋은 주인을 만났다면 녀석 역시 따뜻한 이부자리에 길게 누워서 재롱이나 피우며 유유자적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녀석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런 삶을 살지 못했고, 다리를 절면서 아침마다 모르는 집 앞에 애처롭게 앉아 저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지요. 아침을 먹고난 뒤 녀석이 무얼 하는지 역시나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목이 마르지는 않은지, 저녁은 도대체 어떻게 먹는지 궁금했던 적이 여러 번이었지만, 애써 그 생각을 지우려 했었지요.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을 내가 책임질 수는 없지 않냐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요.
아무리 비참한 삶도 죽음보다 아름답다고 하실 분이 있으시겠지만, 그 고양이는 냉정한 이 세상보다 하늘나라가 더 좋을지 모릅니다. 먹을 것을 구하러 하루 종일 헤매야 하고, 매섭게 몰아치는 추위를 피할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는, 하지만 마음 편히 몸을 누일 곳이 없는 그런 삶, 그래서 녀석은 죽는 순간 자신의 삶을 저주했을 것입니다. 삶이 이렇듯 힘든 것이라면 다시 태어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지는 않았을런지요. 현실의 주소와 하늘나라의 주소가 비슷하다면, 먼저 저 세상에 가있는 벤지가 녀석을 따뜻이 맞아주지 않을까 싶네요. 녀석은 벤지를 싫어했지만, 벤지는 녀석만 보면 꼬리를 치고 잘해주려 했으니까요.
매일 밤 참치캔 한통식을 사가는 저를 의아한 눈으로 보던 편의점 아저씨는 이제부터 “왜 재가 요즘 우리 가게 안오나? 참치캔 많이 갖다놨는데.”라고 혼자 중얼거리겠지요. 오늘밤 술을 마실 때, 전 녀석의 명복을 빌며 술잔을 들이키렵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한명 정도는 자신의 죽음을 슬퍼해줄 사람이 있어야 녀석이 가는 길이 덜 외롭지 않겠습니까. 고양이의 주검을 볼 때는 안그랬는데, 이 글을 쓰면서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요. 녀석에게 잘 못해줬다는 자책감 때문일까요, 아니면 죽음의 덧없음을 새삼 느꼈기 때문일까요. 지금쯤 먼 길을 가고 있을 그 고양이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