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남녀 사이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밤을 같이 보내면 친해진다. 하물며 대학 시절을 내내 같이 보냈다면, 그 과정에서 미운정, 고운정이 들게 마련이다.
지난 금요일(12/30), 85학번 동창모임이 있었다. 원래 난 대학에 가서 친구를 사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들은 동료이면서도 성적을 잘받기 위해서는, 나아가서는 인턴, 레지던트에 합격하기 위해 제쳐야만 하는 경쟁자였다.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낸 편인 나지만 몇몇 친한 애들을 제외하고는 그리 오랜 시간 얘기해본 기억도 없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의대 애들은 낭만을 모르고 이기적이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친해질 마음도 가져보지 못했다.
하지만 6년의 세월이란 건 무시못할 긴 시간이고, 게다가 우리 학번 애들은 유난히 잘 뭉쳤다. 학기 때마다 같이 MT를 가고, 수학여행을 갔다. 그런 추억들 때문인지 인터넷에서 동창회가 만들어졌을 때 동창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저 반갑고 좋았던 것 같다. 동창회가 붐을 이루던 시절을 지나 대부분의 사이트가 흐지부지된 와중에도 우리 사이트는 아직도 새글이 시시때때로 올라오고, 글을 안올리는 친구들도 열심히 댓글을 단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비록 열명 남짓한 친구들만 참석을 했지만 송년회를 했다. 이러니 내가 우리 학번을 자랑스러워 할 수밖에. 개업의와 그렇지 않은 친구간에 생활 수준의 차이가 조금씩 느껴지지만,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날 난 즐겁게 술을 마셨고, 새벽 세시쯤 얼큰하게 취해서 집에 들어갔다.
동창 중에 성형외과를 하는 친구가 있다. 역도부를 했을 정도로 근육이 발달한 그 친구는 희한하게도 섬세한 손길이 요구되는 성형외과를 전공했는데, 부당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상 내 눈을 볼 때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전에도 한번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 역시 내게 이런 제안을 한다.
“야, 내가 공짜로 니 눈 획기적으로 고쳐줄게. 너 조금만 손을 보면 드라마틱하게 좋아져.”
기술이 어느 정도 된다면 모든 쌍거플은 그 사람을 예쁘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라 그 제안에 약간 마음이 움직이지만, 변신을 하기에 마흔의 나이는 너무 많은 나이이고, 나나 주위 사람이나 지금까지 살아온 내 모습에 익숙해져버려 더 좋은 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주저하게 된다. 내가 아는 미녀 하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내 질문에 “쌍거플을 하면 같이 안논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녀의 협박이 아니더라도 난 그냥 이 눈으로 여생을 살고 싶다. 이 눈을 가지고도 인기가 그렇듯 많은데 쌍거플까지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