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1월 25일(금)
마신 양: 소주--> 소주--> 맥주로 정리
어찌어찌 아는 출판사 미녀분과 만나기로 했었다. 전에도 약속을 미룬 적이 있었던 터라 이번 약속은 절대 안 건드리려 했는데, 악마의 유혹이 닥쳤다. 친구 하나가 3대 3으로 만나서 놀자는, 무지하게 매력적인 제안을 한다. 마음이 흔들렸지만 난 안된다고 했다.
“다들 미녀야! 너 후회할 걸?”
그래도 난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지 뭐.”
나중에 약속을 한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 새로 온 동료 한분이랑 같이 가도 되지요?”
“그럼요.”
이럴 수가. 설마 했는데 새로 온 동료 분은 남자들이면 누구나 좋아할 청순가련형의 미녀였다. 시종 수줍은 듯한 미소를 흘리던 그녀는 소주 역시 수줍게 마셨다. 언제 어떻게 마시는지 모르지만, 그녀 잔을 볼 때마다 잔은 비어 있었다. 술잔이 새는 게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가냘픈 목소리로 무슨 말을 하겠냐 싶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래도 할말은 다했다.
“머리 좀 자르세요.” “그건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돼요. 미녀는 마음 속에 있는 거예요.” 등등, 그녀는 대화의 3분의 1 이상을 항상 책임졌다. 안그래도 죽이 잘맞는 분과 술을 마셨는데 그녀까지 합류하니 술자리가 즐거운 것은 당연한 일, 기분좋게 집으로 걸어들어갔고, 과음한 탓에 다음날 아침 심하게 헛구역질을 했다.
그날 난 그 미녀에게 결례를 했다. VIP라 황소곱창에 모셨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곱창을 먹지 못한단다. 하기사, 미녀와 곱창은 원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미리 물어보지 못한 게 불찰이고, 황소곱창은 남녀노소가 다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탓이었다. 다음에 또 그녀를 만난다면 스테이크를 썰리라.
일시: 11월 26일(토)
마신 양: 소주만 달랑.
아는 친구가 만나자고 했을 때 퉁명스럽게 대한 것을 이내 후회했다.
“그때 만났던 그 작가가 자기 친구 하나 더 데리고 나온데. 아주 참하고 미인이라는데?”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나는 피곤한 몸과 어울리지 않는 들뜬 마음으로 약속장소에 갔다. 연극을 봤고, 내가 자랑하는 대학로의 묵은지 집에서 저녁 겸 술을 마셨다.
그 작가분의 좋은 성격만으로도 즐거웠을 그 모임은 같이 나온 여자분의 미모 덕분에 한층 더 빛이 났다. 2차를 갔고,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오랫동안 수다를 떨었다. 집에 갔을 때 시각은 새벽 세시 반, 두시간 남짓 잔 뒤 테니스를 치면서 연짱으로 술을 마신 후유증 때문에 헛구역질을 계속 해댔다. 안되겠다 싶어 오늘 약속에 가지 않았고, 하루종일 잤다. 돌이켜보면 지난 3주간은 술로 점철된 아주 힘든 나날이었다. 이번주는 절.대.로. 두 번 이상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 곧 연말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