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일인 어제, 난 4통의 전화를 받았다.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 발견’에 대한 내 견해를 묻는 거였다. 다른 훌륭한 분들도 많은데 나한테까지 차례가 오는 게 마냥 신기했지만, 생각해보니 이게 다 책을 내면서 기자들과 친분을 쌓은 탓이지 명성과는 관계없는 거였다. 외부에 있던 관계로 그냥 내가 평소에 아는 지식만 가지고 설명을 해줄 수밖에 없었는데, 오늘 아침 그 기사가 대부분의 신문에서 톱뉴스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다. 사실은 당황한 게 아니라 무서웠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나 뿐 아니라 다른 기생충학교실 선생님들도 다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고, 다행히도 인용된 말도 큰 차이는 없었다.
김치같이 안좋은 환경에서도 과연 회충 감염이 가능할까, 그리고 그렇게 감염된 회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회충알이 튼튼한 껍질에 싸여있는지라 ‘가능하다’는 것이고, 회충 한두마리 정도 걸리는 게 큰 문제는 없지만 아주 드물게 맹장이나 담도로 회충이 이동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고, 회충이 약에 잘 듣는데 그거 가지고 수술을 하면 얼마나 억울하냐, 그래서 이왕이면 안걸리는 게 좋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옛날에 회충에 걸리는 루트는 주로 김치를 통해서였다. 특히나 ‘봄 가을에 구충제를 먹어야 한다’는 신화 중 ‘봄’은 겨울에 겉절이로 김치를 먹은 탓이었다.
[고려대의대 기생충학교실 조성환 교수는 “우리도 인분(人糞)을 농산물 비료로 사용하던 1960~70년대에서는 김치나 야채를 통한 기생충 감염이 많았다”며 “중국이 그런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5-10-22 05:35]
이화여대 의대 양현종 교수는 “기생충 알의 경우 김치에서 최대 3개월 동안 살 수 있다는 것이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산 김치서 기생충알 검출]안심하고 먹으라더니… 동아일보 2005-10-22 03:19]
아, 나도 이런 말을 했어야 하는데. 3개월이라, 멋져보인다.
한겨레에서 인터뷰를 한 최민호 교수(서울의대)는 이런 말도 했다.
“기생충 알이 든 중국산 김치를 먹는다고 해서 사람에게까지 감염을 일으킬지는 알 수 없다” “김치의 소금 농도나 냉장 온도 등에 따라서 (감염 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일보에 인용된 최민호 교수의 말, “기생충 알은 절인 식품은 물론 외계에 노출된 상태에서도 최대 2주일까지 감염력을 유지한다”
이런저런 기사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한 말이 가장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는 "회충.구충(십이지장충) 등이 든 김치를 먹으면 가벼운 복통.구토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며 "다만 기생충이 한두 마리 정도에 불과하면 별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1960, 70년대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는 이들 기생충 감염이 큰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지금은 국민 영양 상태가 좋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중앙일보)]
아, 이 말 말고도 학구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말을 더 했었는데. 예컨대 회충이 장으로 가기 전에 폐를 들르는데, 그래서 기침, 각혈 같은 폐증상이 있을 수도 있고, 인분비료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도.
갑자기 기생충이 각광을 받는 건 우리 학계로서는 나쁠 게 없다. 중국 것들은 왜 하나같이 더러운지 떫은 눈으로 중국을 보는 사람들에게 이번 사태는 중국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재확인하게 해줬을 것이다. 더구나 김치는 우리에게 필수품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번 사건이 1면 톱으로 보도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신문은 모르겠고 한겨레에서는 1면 톱이다). 냉면에서 대장균이 나온 게 별반 신기한 일이 아닌 것처럼, 인분비료를 쓰는 중국김치에서 회충알이 나온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물론 대장균과 회충이 같을 수야 없고, 극히 드물지만 회충이 일으키는 부작용으로 볼 때 회충에 안걸리는 게 걸리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웰빙’ 중 하나가 화학비료 대신 유기농으로 재배된 음식을 먹는 걸 얘기하는 것이라면 회충알의 존재는 중국산 김치가 웰빙음식이란 걸 증명해 준다. 화학비료와 회충알 중 어느 게 해롭냐고 한다면 난 당연히 전자를 택하리라. 인터뷰에 응한 기생충학 교수들의 한결같은 의견이 “영양상태가 좋은 지금엔 그다지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임에도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회충의 공포를 그대로 가져와 중국산 김치를 먹으면 큰일날 것처럼 떠드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닭을 날로 먹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위에는 없다. 들어본 적도 없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약간만 끓이면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류독감 사태 때 닭집들은 다 망했고, 주인 중 한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시금 조류독감이 돌 기미를 보이는 요즘, 닭집 주인들은 좌불안석일 것이다. 콜레라가 돈다고 한동안 회를 안먹고, 저 멀리 영국에서 발생한 광우병 소식에 고기를 안먹는 우리들, 이렇듯 우리 국민들이 먹거리에 민감하다면, 폐해를 과장하기보다는 좀 더 차분한 접근이 필요할 듯하다.
기생충알이 나오건 말건 김치를 직접 담구지 못하고 사서 먹어야 하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파는 김치의 대부분은 중국산이고, 국내산이라는 레테르를 달고 나온 것들 중에도 중국산은 있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김치를 사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사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 사족: 다행히도 조선일보 기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오진 않았다.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사절함은 물론이고 내 이름이 실리는 것조차 반대하는 나로서는 거기서 전화가 올까봐 약간 걱정을 했다. 다른 거야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국민보건에 관한 거라 거절하는 게 옳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생충을 전공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니, 전화가 걸려왔더라도 아마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줬으리라.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기생충을 이용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연구를 했다손 치자. 그 연구가 너무도 획기적이라 황우석 박사처럼 여기저기서 대서특필된다. 그때도 내가 조선일보에 무조건 거부를 하는 건 과연 옳은 것일까? 내가 열심히 연구를 안하는 이유는 그게 걱정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