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이제 겨우(?) 서른 다섯에 접어든 내 후배의 말이다. 난 그 말에 동의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어찌보면 완고해진다는 얘기고, 그건 누가 뭐라고 하건 자기 길을 간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난 여전히,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단정하지 못한 머리 하며 맨날 퍼마시는 술을 생각한다면 내가 타인이 어떻게 보는가에 무관하게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충남시사신문과 인터뷰를 할 때 찍은 사진이다. 충남시사신문은 교차로랑 같이 찍어내는 신문인데, 충남 지역에서 3만부 정도가 나간단다. 많은 양 같지만 그 대부분을 폐지 수집하는 분들이 가져가니 실제로 보는 사람은 얼마 안될 것 같다. 내가 나온 신문도 교차로 배부함을 열댓군데나 뒤진 끝에 겨우 구했으니 말이다. 그렇기는 해도 거기서 날 본 사람이 있을까봐 걱정이다. 왜? 오늘, 인터뷰할 때 입었던 윗도리를 또 입고 왔으니까. 그 사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행여 “쟤는 옷이 저거밖에 없나봐?”라고 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정말 별 걱정을 다 한다는 생각이 들거다. 사람들은 대개,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난 이상하게 그런 걸 신경쓴다. 수많은 사람들 중 내 얼굴을 서점 직원이 유난히 더 잘 기억하는 게 아님에도, 사재기를 할 때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에서 계산을 하는 거나, 그것도 모자라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책을 사게 하는 것도 걱정도 팔자인 예가 될 것이다. 테니스를 치는데 누가 한명이라도 서서 구경을 하면 플레이가 급격히 위축된다. 그가 나만 보는 게 아니지만, 이상하게 뭔가 멋진 플레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회 때마다 내가 실력발휘를 못한 채 죽을 쓰는 것도 그런 심리의 연장.
추석이 지나고 날씨가 쌀쌀해진 요즘, 난 잠바를 갖고 다닌다. 그게 뭐 이상하겠냐만, 문제는 입고 다니는 게 아니라 들고 다닌다는 거다. 더위를 많이 타 집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고, 지금 날씨에도 반팔이 딱 좋음에도 불구하고, 반팔로 다니면 “없어 보일까봐”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한쪽 팔로 잠바를 들고 다닌다. 추울 때 입게 가방에 잠바를 넣으면 되겠지만, 곧죽어도 팔에다 감는다. 없어 보이는 걸 죽어도 못참는 것, 이게 재벌2세가 겪어야 할 굴레가 아닐까. (말은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