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은 오래 전에 실직했고, 그냥 집에서 논다.

처음에는 안좋게 여긴 적도 있었지만 어머니-내게는 할머니-를 지성으로 간병하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을 달리 먹었다.

삼촌은 노니까 그러지라고 하지만,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를 벌써 6년 이상 돌보고 있는데,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삼촌은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하다가 은퇴한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를 분양받아 기르고 있다.

뻔히 쳐다보는 데 그치지 않고 만지거나 짖을 때까지 괴롭히는 사람들한테 시달림을 받았던 그 개는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산책을 시켜주는 삼촌 덕분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그래도 세상의 인심은 노는 분한테 야박한 법,

동네 사람들이 삼촌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삼촌이 나한테 집근처로 한번만 와달라고 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TV에 나오는 기생충박사가 조카라는 걸 자랑하고 나면 자신을 그전보다는 좋게 볼 것 같아서.

실제로 삼촌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게 전화를 건 적이 있는데,

친구가 정말 조카라면 전화통화라도 한번 해봐라고 해서였단다.

나랑 연결이 된 그 친구분은 “...목소리가 똑같네요라며 놀라워했다.

그래도 이번엔 좀 자신이 없었던 게, 내 인지도라는 게 사실 그리 대단한 게 아니어서였다.

10명이 지나가면 1명이 알아볼 정도인데, 그걸로 삼촌의 위상을 얼마나 올려줄 수 있겠는가?

제발 누가 날 좀 알아봐 줬으면하는 마음으로 삼촌 집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갔다.

삼촌과 횟집에서 회를 먹을 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야속한 종업원과 사장은 서빙을 몇 번이나 하면서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다른 손님들도 사정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 횟집이 값이 그리 비싸지 않고 깔끔한 곳이라 젊은 남녀간에 온 손님이 많았는데,

한창 열애중일 그들이 상대방을 보지 않고 멀리 떨어져 앉은 날 봐줄 이유는 없었다.

삼촌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삼촌은 나랑 동네 한바퀴를 돌자고 했다.

아까는 밥집이어서 밥먹다 말고 아는 체 하기가 어려웠을 거야.”

 

문제는 그 리트리버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는 것.

키가 1미터50센티에 육박할 커다란 개가 거리에 나타나니

사람들은 정말로 개만 봤다!

여중생, 남중생, 어른 할 것 없이 다들 개를 쳐다보고 귀엽다고 했고,

와서 쓰다듬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 옆에서 제발 날 좀 봐주세요라는 표정으로 서 있는 내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정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거의 한 시간 가량 산책을 했지만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자 삼촌은 좀 실망한 눈치였고,

어두워서 그런가봐. 다음번엔 해지기 전에 보자라고 하셨다.

좌절한 삼촌을 생각하니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마음이 편하지를 않았는데,

역시 인지도를 좀 더 올리는 수밖에 없겠다 싶다.

개보다 관심을 덜 받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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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9-2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인 병수발 오래 하는 것은 성인군자도 힘들죠...4대 성인들도 해보지 못했으니까요...

아...그리고 네발짐승 키는 어깨높이로 잰답니다.체고라고 하지요.150센티라면 체장을 말씀하시는듯해요.리트리버 정도면 키가 80센티 정도 될 겁니다.

마태우스 2013-10-01 14:56   좋아요 0 | URL
그죠 노인병수발 진짜 힘든데, 삼촌은 정말 열심히 하더이다. 리트리버 키가 80센티나 되는군요 어쩐지 크더라...^^

Mephistopheles 2013-09-2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되겠군요 최후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어디어디 몇시에 출현한다고 전화하시면 시간 맞춰 그 장소에 나타나..

"앗...TV에 출연하시는 기생충 박사 교수님 아니십니까..팬입니다. 사인이요!!"하며

그 장소가 떠나갈 정도로 호들갑을 떨어버린다면......

(사람들이 쟤네들 뭐야? 하고 쳐다보겠죠....)

마태우스 2013-10-01 14:56   좋아요 0 | URL
근데 제가 원하는 장소에 메피님이 나타나주시려면..일당이 세야 할 것 같다는...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지 않는 이상.ㅠㅠ

잘잘라 2013-09-2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후훗, 재미있게 읽었어요. 오랜만에 [공감하기],[ThanksTo],[노란 별] 삼종세트를 완성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아! 인지도 말씀인데요, 저라면 인지도 높은 정치인과 이름 모를 리트리버를 만난다면 당연히 리트리버를 쳐다볼것 같은데요! ^^ 류현진 선수라면 모를까 웬만해선 리트리버를 당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ㅎㅎ

마태우스 2013-10-01 14:57   좋아요 0 | URL
앗 땡스투도요? 그렇다면 저 위에 언급한 책을 사신 건가요...?? 글구 류현진급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 가슴에 새기고 인지도를 위해 정진할게요!

이네사 2013-09-29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나 마태우스님 삼촌님 성품이나...하여간 두 손 두 발 들 수 밖엔 없네요.
남들이 안 알아주면 어때요? 그렇게 따스하고 소박한 성품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인데...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고 있다면야, 남들이 뭐라 하건 상관없을 듯 싶네요.
읽으면서 웃었네요. ㅋㅋㅋ 꼭 제 조카 아기때 데리고 다니던 것이 생각나서...
녀석 아기때 의기양양하게 안고 다니면서, 왜 사람들이 이렇게 귀여운 녀석을 아무도 안 알아봐줄까 섭섭해서 속으로 중얼거렸었거든요. 5달밖엔 되지 않은 녀석을 붙들고, 네가 귀엽지 않아서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니야, 단지 사람들이 아직 널 몰라봐서 그래, 라고 대화를 나눴었으니, 뭐...하여간 남의 이야기 같지 않었네요. 삼촌 되시는 분이 아마도 속으로 무척 마태우스님이 자랑스러우셨을 듯...^^

마태우스 2013-10-01 14:58   좋아요 0 | URL
네...삼촌이 저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십니다. 단지 좀 오버하셔서 장관도 해야 한다, 이러실 땐 당황스럽더이다. 사실 저를 알아봐줬으면 할 때가 그리 많진 않아요. 지금까지 딱 두번...근데 두번 다 외면당했죠^^

숲노래 2013-09-29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촌 되는 그분은 마태우스 님 인지도를 쓴다기보다
마음이 외롭고 힘들 적에
가끔 말벗이 될 사람이 있기를 바라셨지 싶어요.

함께 간 식당에 마태우스 님 책을 한 권 놓고 나왔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 식당에 삼촌이 찾아가실 적에
많이 달라지리라 생각해요.

다음에는 삼촌 분과 다니는 가게나 찻집이나 밥집이나 술집이나
구멍가게에까지,
마태우스 님 책에 손수 사인을 해서
'여기 우리 삼촌인데, 삼촌을 봐서 제 책 즐겁게 읽어 주셔요.' 하고
한 말씀 해 주시면, 삼촌도 한결 느긋하게
집에서 지내며 해내는 온갖 병수발과 다른 일들
조금 더 씩씩하게 할 기운 얻지 않을까 생각해요.

마태우스 2013-10-01 14:58   좋아요 0 | URL
그, 그럴까요. 님처럼 좋게 해석해주시니 그날의 좌절이 조금 씻겨집니다^^

비로그인 2013-09-30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깥세상에서의 마태우스님 인지도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쓰시는 글만큼은 최고네요ㅎㅎ 소설 한 편 읽은 느낌입니다^^

마태우스 2013-10-01 14:58   좋아요 0 | URL
어맛 후와님, 님이 훨씬 글 더 잘쓰시잖아요>.!!!

아무개 2013-09-30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만한 인지도로는 리트리버를 이기긴 힘드실텐데요......

저는 그때 찍은 마테우스님 사진을 이곳저곳에 자랑하고 다닙니다.
"너 베란다 쇼 보냐? 나 이 사람이랑 술도 마신 사이야~~ "
이러면서요 ^^::::::::::::

마태우스 2013-10-01 14:59   좋아요 0 | URL
앗 그러시군요. 제가 도움이 된다니 기뻐요!!

조선인 2013-09-30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포핀스님과 아무개님에게 저도 한 표요. 히히

마태우스 2013-10-01 16:30   좋아요 0 | URL
그럼 그분들은 한표씩 나머지는 0표입니다^^

하늘바람 2013-09-30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나타나시는 장소를 찾아갈까요 메피님 따라 꺄 기생충박사님이시당 하며 아줌마 팬으로~~

마태우스 2013-10-01 16:30   좋아요 0 | URL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담번엔 꼭 예고할게요!

ceylontea 2013-09-30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ㅎㅎㅎ 제가 그 자리에서 아는 척을 해드렸음 좋았을텐데 말입니당~~~!! ^^

마태우스 2013-10-01 16:31   좋아요 0 | URL
오모나 실론티님 안녕하세요 몇 안되는 1세대 친구잖습니까.

transient-guest 2013-10-0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리트리버를 이길 사람은 과연 없는 것일까요? 마태우스님의 실패(?)가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