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신고 식물..' 어쩌고라서...

4년 전, 우연히 강당에 들어갔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몇 명의 신입생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 등을 보인 채 벽에 기대 서 있다. 두 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무대는 밝았고 좌석 쪽은 불을 꺼서 어두웠다. 거기에 앉은 선배들이 신고식을 하고 있었던 것. 자기 소개를 하는 신입생에게 “똑바로 못해!” “목소리가 그게 뭐야!”라며 호통을 쳤고, 목소리가 작다며 엎드려 뻗쳐를 시키기도 했다. 이른바 군기를 잡는 것, 군사독재가 사라진 지 십여년이 넘었건만, 우리 학교에는 왜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단 말인가. 그 신고식은 무려 두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몇 명의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너도 신고식을 했을텐데, 싫지 않았냐고. 싫었단다. 그때 기억이 참으로 끔찍했단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날라오는 호통도, 그 무시무시한 분위기도. 그런데 왜 하냐고 물으니까 남들이 하니까 자기도 억지로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고식을 주도하는 강경파들을 무서워했고, 내가 자기 말을 인용해 반대 논거로 써도 되냐는 질문에 한사코 안된다고 했다. 난 내가 느낀대로 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신고식을 싫어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공개적인 댓글이 아닌, 이메일로 내게 지지를 보냈다. 신고식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내 글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한 학생들의 논거는 대충 이랬다.

-신고식을 통해 선후배가 친해질 수 있다; 선후배가 친해지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가. 신고식을 통해서만 그게 가능하다면, 난 선후배가 친해지지 않는 게 옳다고 본다.

-전통이다; 전통에도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다. 이런 야만적인 전통은 아무리 수백년 묵은 거라도 없애야 한다.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가 아니라면, 신고식을 주도하는 강경파 학생들도 신고식을 받을 때 괴로웠을 거다. 그랬던 애들이 선배가 돼서 다시금 신입생들을 괴롭히는 이유가 뭘까? 신고식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 내가 당했으니까 너도 당해야 한다는 논리? 어떤 이유로도 난 신고식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군대도 민주화 바람이 부는 차에 지성의 전당 어쩌고 하는 대학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해마다 일어날 수 있을까.


예2 대표가 내게 왔다. 내일 신입생 대면식-신고식의 온건한 표현-이 있으니 장소 허가 싸인을 해달라고. 자기들끼리 할테니 난 절대 오지 말란다. 해줬다. 내 힘으로 막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이건 그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개뿔, 전통이라는데, 내일 못하면 다른 곳에서 하겠지. 원래 방학 때 하려고 했던 건데 내가 반대해서 못했으니 내일로 날을 잡은 것처럼. 올해부터 신입생들 수업에 들어가니, 말로 설득하고 글로 대화하련다. 내년부터 제발 그런 거 하지 말라고. 아무것도 모른 채 앉아있는 신입생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지만, 애들아. 이번만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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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3-0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대학에서 이런 거 하나 보네요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선배들이 군기 잡는다면서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후배들을 잡더군요 이유는 뭔지 모르겠고 하여간 운동장에서 굴리더라구요 그런데 재밌는 건, 동기생들끼리도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을 잡는 거예요 예비역들은 이런 종류의 군기 잡기에 익숙한 것 같아요 하여간 민주주의의 산실이라는 대학에서 군대식 규율 잡기가 선후배 간에, 심지어는 같은 동기생들끼리 벌어지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밖으로는 파시즘 독재라고 데모하면서 안으로는 자기들끼리 규율 정하고 처벌하고... 아무리 비판을 한대도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의 의식이나 문화로부터 자유롭기란 어려운 문제 같네요

sooninara 2005-03-0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도 신고식때문에 대학 신입생이 죽기도 하던데..어느나라나 그런 전통(?)이 있나봐요. 우리나라 군사문화라고만 치부하지 말고..좀더 좋은 방법으로 변하도록 바꾸어 봐야겠죠..

조선인 2005-03-02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의대의 전통인가요, 그 학교의 전통인가요? 아니면 남녀공학은 다 하나요? 난 학교에서 신고식한다는 거 처음 들었어요.

날개 2005-03-02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도저히 저런 신고식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요즘 애들이 그걸 당하고 있나요?
제가 학교다닐땐 여대라 그런지 저런일 없었는데, 공학이라 그런가요?

로렌초의시종 2005-03-0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올해 하고나면 당한 게 억울해서 내년에도 하게 해달라고 할 공산이 매우 크다고 보옵니다. 물론 명분은 가지가지로 세우겠지만 말이죠. 마태우스님이 말씀하셨듯이 전통, 선후배간의 우의를 찾으면서요.

가을산 2005-03-0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학교는 그런거 없었어요..... !
신고식은 우리 때보다도 90년대 후반들어 더 심각해진 것 같아요.

2005-03-02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굼 2005-03-02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거 안했는데; 술도 안먹고 싶으면 안먹었고;;

호랑녀 2005-03-0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이런 게 있나요?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없는 학교도 많대요. 굳이 저런 거 전통으로 세울 만큼 내세울 게 없는 학교에 다니느냐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셔요. 저런 거 해서 친해질까요? 그냥 학교생활 잘 하는 방법, 신입생 때 못해서 아쉬웠던 게 이런 거였으니 너는 꼭 해봐라 뭐 이런 얘기 해주는 선배가 훨씬 좋을 것 같은데...
젊은 애들이 참... 내가 신입생이라면 그런 신고식 그냥 안 나가버리겠네...

니르바나 2005-03-02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러난 사실로만 보면 어찌 꺼꾸로 가는 세상같구만요.
설마 논산훈련소에서 행한 지난번 사건같은 저급한 행동은 안하겠지요.
어찌 좋은 전통은 찾기 드물고 이리 한심한 일을 전통으로 삼는가 모르겠어요. 마태우스님

마냐 2005-03-02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어어. 10년전에...저 비슷한 르포 썼는데.... 암튼, 아직도 그런다는게 믿기지 않슴다.

하루(春) 2005-03-0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대가 원래 그런 게 심하지 않나요? 체대랑.. 독특한 집단이라고 하면 마태우스님이 화내시려나? 예전에 종합병원이란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 심심찮게 나왔었잖아요.

sweetrain 2005-03-03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그러다 앰뷸런스 부르게 돼야 정신차리고 그만할겁니다...우리 과처럼요.

부리 2005-03-03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비님/그런 사태까지 안갔으면 좋겠구, 그냥 알아서 그만두는 성숙함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하루님/저흰 안그랬거든요. 제가알기에 여기처럼 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답니다.
마냐님/그러게 말이어요. 믿기지 않는 현실입니다
새벽별님/그래도 노력은 해봐야겠죠?
니르바나님/그러게 말입니다. 이게 다 관습법 파동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뜬금없나요?
호랑녀님/들어온지 얼마 안되서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그렇게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어서 뭐가 좋단 말인가요..... 탄식할 일이어요
소굼님/그게 당연한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을산님/으음, 글쿤요. 옛날보다 지금이 더 심하다.... 우리학교만 그런 게 아니구요??
로렌초님/히유, 21세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자체가 말이 안되죠
날개님/공학이고 뭐고, 정말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부글부글... 이따 학장님이랑 난입해서 깽판놓고 싶어..
조선인님/대학이 무슨 선후배간의 군기잡는 곳도 아니구 말입니다....
수니님/술 많이 먹이는 건 제가 말렸지요. 그래도 신고식은 하네요...
나나님/얘네들은 군부독재를 경험한 애들이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왜 이런 발상을 했으며, 계속해 나가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요. 저희 때라면, 뭐 의식이 미개하여 그럴 수도 있다고 치겠지만...


하루(春) 2005-03-03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넘겨짚은 제가 부끄러워요. ^^;;

하얀마녀 2005-03-04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글이 아니었다면 안 믿었을 듯... 아직도 그런 곳이 있단 말이죠?

책읽어주는홍퀸 2005-03-0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머 말도안돼!말도안돼요!!정말 이해할수없어요!!어케이해해야하는지 갈켜주세요!!!아니 자기가 당했다고 꼭 분풀이를 해야하냐고요~~~~왜?워쨰서?모땜시??아무리 자기가 당했어도 아닌건 아닌건데...왜 그걸 꼭 도돌이표를해야하는건지...정말 암것도모르고 당할애들 불쌍해서 워쩐데요? 어떡하죠? 어떡해야할까요?? 넘 답답하고 속상해서 일이 손에 안잡히네요..밥맛도없어질라고해요..이건 쫌 오반가..? 암튼 어차피 하기로한거니깐 조금이라도 들 괴롭히길 바랄뿐이네요...아니, 갑자기 생각을 바꿔서 올해부턴 건전하게 하기로했다는 소식이...제가 넘 기적을 바라는건가요...?? 제발 기적이 일어나길...아저씨 기적주세요!!신입생들이 위험해요..기적이면 낳을수있다고하던데...근데 이게 무슨 공익 광고였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