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를 소재로 한 <그때 그사람> 시사회를 보러간다. 시사회라고는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이게 다 친구를 잘 둔 덕분이다. 더구나 내가 꼭 봐야지, 하고 찜해놨던 영화가 아닌가.

사실 시사회가 아니면 이 영화를 보기 힘들 것 같기도 하다. 박정희의 아들인 박지만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는 걸 법원에 냈기 때문이다. 박지만이 뻑하면 대마초를 피우면서 범법을 했다는 것도 그렇고, 영화의 주인공인 박정희가 쿠테타로 헌법을 유리한 사람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의 후손이 법의 힘을 빌어 영화의 상영을 금지시킨다는 건 무척이나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박지만은 왜 이 영화가 상영되면 안된다는 걸까? 그가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대통령을 암시하는 ‘각하’라는 인물이 사생활이 문란하고 일본을 동경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으며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이 명예를 훼손했다”
박정희의 채홍사-여자 조달하는 사람-가 법정에서 증언한 것에 따르면 박정희는 죽기 전까지 3일에 한번씩 소행사, 5일에 한번씩 대행사를 치뤘다고 한다. 여럿이 모여서 여자 끼고 노는 게 대행사, 둘이서 오붓하게 노는 건 소행사인데, 이를 위해 채홍사는 한다하는 연예인.모델 등을 섭외해 교육을 시킨 뒤 연회장에 내보냈다고 한다. 촬영 하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연예인은 모두 그런 거였다는데, 몇 번쯤 불려간 연예인은 교통신호 위반으로 경찰에게 걸리자 “감히 국모한테” 운운하기도 했단다. 이게 사생활이 문란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 놀아야 ‘문란’이란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것일까?
박정희가 일본을 동경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는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진충보국’ 어쩌고 하는 혈서를 씀으로써 이겨내고 일본 육사에 들어갔고, 만주에서 독립군을 때려잡으며 보냈다. 한국의 식민화에 애를 쓴 일본인들에게 훈장을 준 것도, 육사 시절 스승을 불러 일본 군가를 부르며 히히덕거린 것도 일본에 대한 그의 동경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가 영구집권을 위해 단행한 ‘10월 유신’이란 것도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따온 것이 아니던가?
‘목숨 구걸’이란 대목. 난 목숨을 구걸하는 게 왜 나쁜지 모르겠다. 나 같아도 누가 총을 들고 나한테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면 시키는대로 하면서 삶을 연장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아무리 비루한 삶이라 해도 죽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내 생각이니까. 그래서 난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할 당시 박정희가 탁자 밑으로 잽싸게 숨은 것이 결코 나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영구집권의 길을 터놓은 지 2년도 안되어 비명횡사한다면 얼마나 아깝겠는가?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이 영화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박정희는 박근혜의 아버지이일 뿐 아니라 이 나라를 근 20년 가까이 통치한 사람이며, 그만큼 이 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보는 관점에 따라 그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일 수 있으며,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기 나름의 박정희관을 펴보인 것이다. 그런 것이 불쾌해서 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면, 이인화나 조갑제처럼 박정희를 예찬해 마지않는 사람들의 작품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일까? 더더욱 황당한 것은 박근혜가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는 것. 박근혜는 보지도 않고 영화 전체를 알 수 있을지 모르나, 나같은 사람은 영화를 보고 나서 판단하고 싶다. 한가지 더. 이 영화가 현 정권의 사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굳게 믿고있는 분들이여, 제발 철 좀 들어라. 왜 당신들의 사고는 박정희가 시켜서 만든 숱한 반공영화에서 멈춰져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