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서재를 처음 만든 2003년 11월, 그때의 내 목표는, 이전에도 누차 밝혔듯이, 서재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성장기 때 책을 안읽은 콤플렉스를 서재를 정복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해 보고자 했던 것.
방문자도 몇 안되고 댓글도 거의 안 달리던 초창기에
어느 분이 내게 댓글을 달아 주셨다.
그 댓글에 감격한 난 정말 경건한 자세로 답변을 드렸다.
“이런 누추한 서재에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는 말로 시작되는 경건한 답변을.
그때는 댓글 하나하나가 내게 기쁨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난 1일 방문객 수, 댓글 수, 즐겨찾기 숫자 등의 각종 지표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한, 소위 서재권력이 되었다.
그래서 좋았을까?
물론이다.
내가 글을 쓰면 많은 사람이 달려와 지지해주는 게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권력을 얻으려 하는구나,고 생각했다.
댓글이 수없이 달렸지만, 난 초창기의 경건한 자세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직급은 높아지셨나 모르겠지만 시야는 좀 좁아지셨네요. 제가 좋아하던 그 분이 맞나 싶습니다.”
얼마 전, 설거지를 하는 내내 펠레님이 내게 달아준 댓글을 생각했다.
공지영에 관련된 글을 하나 썼는데, 거기에 대한 내 반응은,
초창기의 경건함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인터넷 사회에서 오가는 댓글에 비해서도 날이 서 있었다.
냉소적이었고,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는 그런 댓글이었다.
심지어 펠레님의 댓글에 대해서도 “직급과 시야는 원래 별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답을 드렸다.
정말 난 높아진 직급만큼 시야가 좁아진 걸까,가 20여분간 했던 생각의 주제였다.
직급이 높아진 건 지난 9월 내가 정교수가 된 걸 의미할 텐데,
그랬다고 해서 월급이 많아진 것도 아니고 (교수 사회는 근무연수로 월급이 오르며, 그나마도 등록금 동결로 인해 월급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연구실을 옮긴 것도 아니었다.
밑에 있는 사람도 여전히 조교 한 명이라,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전과 똑같다.
그렇다면 그전보다 명성이 높아진 걸 의미하는 것일까?
알라딘 서재 덕분에 경향에 글을 연재하는 사람이 됐긴 하지만,
그랬다고 시야가 좁아진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원래 이런 건 본인은 모를 수 있지만)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과거에 비해 내가 인내심이 없어졌다는 것.
경건한 댓글을 달던 옛날에도 날 짜증나게 만드는 댓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권력유지에 관심이 있던, 그래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지라
최대한 예의바르게 댓글을 달았던 것 같다.
게다가 내게 댓글을 다는 알라디너들이 죄다 친분이 있는 분들이었기에
가시돋힌 답변을 하기는 어려웠다.
지금은 많은 게 변한 것 같다.
그때 나와 점수 경쟁을 하던 알라디너들은 거의 서재를 떠났거나 문을 닫았다.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알라딘에 쏟던 그때와 달리 알라딘에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고,
결정적으로 더 이상 권력을 유지하는 데 관심이 없어졌다.
댓글을 통해서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도 줄어들었다.
이런 게 나로 하여금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날카로운 답변을 하게 만든 원인이 아닐까?
알라딘이 내게 뭐냐고 묻는다면, 난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친정이라고 답변을 한다.
여기서의 생활이 내게 끼친 긍정적인 면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가끔씩 서재 문을 확 닫고픈 때가 있지만, 그래도 내가 그러지 않고 남아있는 이유는
알라딘에서 많은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고,
조금 기분이 나쁘다고 페크언니나 다락방님을 비롯한, 1세대가 아니면서 내게 정말 잘해주시는 분들과의 인연마저 접을 수 없기 때문이고,
슬플 때 징징거릴 곳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친정은 그런 곳이다).
하지만 20분간 생각한 끝에 얻은 또 다른 결론은
과거에는 친정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구성원이 많이 바뀌어서, 꼭 친정인 것만은 아니라는 거였다.
좀 달리 표현하면 알라딘은 이제 내게 시댁인 셈이고,
시댁에서 엊그제처럼 굴면 소박을 맞는다.
이 글은 그러니까 된장님, 펠레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게 드리는 사과이며,
가시돋힌 날 보고 놀랐을 많은 알라디너 분들게 드리는 사과문이다.
잃어버린 인내심을 갑자기 기를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노력은 해보겠노라 약속드린다.
* 첨언: 여러 가지 이유를 댔지만 솔직히 요즘 내가 많이 어려운 건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며, 아내가 술을 마시도록 허락만 한다면 다시금 경건한 댓글을 달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