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에서 테니스 레슨을 받은지 벌써 5개월째에 접어든다.
테니스라는 게 생각만큼 늘지 않는 운동인데다
개폼으로 십여년을 쳐온 가락이 있다보니 여간해선 교정이 안된다.
엊그제 친구들과 시합을 할 때는 하도 속상해서 강물에 뛰어들고픈 마음까지 들었는데,
이 정도면 취미 치고는 집착이 과하다 싶다.

1. 목사님
두달 전부터 내 앞 타임에 목사님이 레슨을 받는다.
코치가 “목사님 목사님” 해서 목사인 줄 알았다.
목사님의 레슨 첫날, 목사님이 공 주으려면 힘들겠다 싶어서
목사님이 친 공을 내가 좀 주워드렸다.
공을 한군데다 모아놓고 바구니에 담고 있는데,
레슨이 끝난 목사님도 같이 공을 주웠다...이래야 되는데,
그 목사님은 자기 앞에 있던 공을 나한테 다 밀어놓고
다른 코트로 가서 친구들과 테니스를 치신다.
공을 주워줬으면 고맙다고 해야 마땅하고,
최소한 나머지 공이라도 자기가 주워야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담?
코트 내에서는 원래 모르는 사이에도 다 인사를 하고 다니는 게 예의건만,
그날 이후부터 난 그 목사님한테만은 인사를 안하고,
그분이 칠 땐 그냥 서브연습을 한다.
그렇게 두달을 한 결과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가끔 듣는다.
“서브가 왜 이렇게 세졌어?”
그럴 때면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종교의 힘이지.”

2. 아이
내가 배우는 시간에 다른 코치한테 레슨을 받는 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3-4학년 가량 되어 보이는데,
그 나이에 테니스 레슨을 받는다는 게 참 부럽다.
나도 그때부터 레슨을 받았다면 지금 얼마나 테니스를 잘쳤겠는가?
그 아이의 아버지는 한의사로, 차가 BMW다.
차 때문에 기죽지 말자는 신념을 갖고 있지만,
내 마티즈를 그 옆에 세우면 사람이 괜히 위축이 돼,
테니스가 더 안맞는다 (그래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세우려고 한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무척 귀하게 키우는 모양으로,
아들이 테니스를 치고 나면 그 공을 자기가 다 줍는다.
그동안 아이는 돌아다니며 공을 발로 차고 다니는데,
교육적으로 저건 좀 아니다 싶다.
아무튼 그 아버지는 참 예의가 바른 분으로,
날 볼때마다 해맑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아들한테 말한다.
“너도 인사 좀 해라.”
하지만 그 아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인사를 안한다.
그런 아들을 보면서 아버지는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러신다.
“녀석 참.”
이따금씩 그 아이와 마주친다.
그때마다 난, 예의바른 아버지를 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그 아이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내 인사를 무시한다.
대략 열 번 정도 내 인사를 생깠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상대방이 싫다는데 나는 왜 그에게 그렇게 집착했을까?
내가 공을 주우려고 모아놓은 걸 발로 차고 다니는 그 싸가지 없는 애한테
왜 인사를 했을까?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과 다 잘 지낼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 나니 인생이 더 편해지는 느낌이다.
그 아이에게 한 마디.
얘야, 만약 네가 기생충에 걸린다면 난 너를 모른다고 할 거야.
그때 후회해도 소용없다.

* 사진은 옛날에 찍은 걸 리바이벌했습니다. 우려먹는다고 너무 뭐라고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