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신났구나?
사립학교 짱들이 모여서 이런 발표를 했다.
“열린우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신청을 하겠다!”
어제 관훈토론회에 나온 박근혜도 국보법, 언론개혁법, 사립학교법, 과거청산 등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4대 개혁입법-그나마 알맹이는 빠진-에 대해 위헌신청을 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행정수도에 대한 헌재의 위헌결정이 가져온 후폭풍이다.
과거에는 쪽수만이 중요했다. 국정원장과 감사원장을 임명하려 해도, 한나라당이 쪽수의 힘을 빌어 부결시키면 그만이었다. 대통령이 굴하지 않으면 “국민의 뜻을 무시한다”며 길길이 날뛰었었지.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김두관 행자부 장관을 해임시킨 것도 쪽수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였다.
그러던 한나라당이 탄핵이라는 자충수를 두다가 원내 제1당을 빼앗기고 만다. 쪽수를 가지고 정국을 혼란하게 했던 과거의 전략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거다.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할까. 과거 야당이 그랬듯이, 몸으로 싸우는 수밖에. 국회를 점거하고 의장을 연금하고, 그도 안되면 거리로 나가는 것. 김덕룡 의원이 “위헌심판이 기각되더라도 행정수도 반대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제법 비장하게 말한 것도 장외투쟁을 포함한 것이리라.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자기들만큼이나 보수적인 헌재가 “위헌”이라고 얘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이 나니까. 앞으로 여당이 조금만 개혁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 무조건 위헌신청을 하지 않을까 싶다.
헌법재판소 분들도 신이 났다. 지금껏 그 존재 가치가 미미했지만, 올해는 헌재가 생긴 이래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탄핵 때도 그랬지만, 행정수도 위헌결정 이후에는 우리나라 권력의 최정상에 서서 모든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버렸다. 헌법에 있으면 있으니까 위헌, 없으면 관습법을 적용해서 위헌, 이 나라는 헌재가 지배하는, 지구상 최고의 법치주의 국가로 거듭날 전망이다.
2. 아버지
관훈토론에 나온 박근혜는 박정희의 좌익 활동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사실이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박정희의 좌익활동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박정희의 신봉자인 조갑제가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도 그 사실이 나오는데, 정치판 입문 이래 노상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짖던 박근혜는 그 책도 안읽어봤단 말인가?
일본군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려던 꿈이 해방으로 인해 좌절되자, 박정희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남로당 가입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우리 사회의 주류는 사회주의였으니까. 당시 주를 이루던 농민들은 지주들에게 하도 시달림을 당한 나머지 남로당이 얘기하는 토지분배에 솔깃했을 터다. 그 전력 때문에 여순반란 사건 이후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되는데, 한국전쟁이 터지지 않았다면 대통령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쿠테타 직후 미국은 박정희의 좌익전력 때문에 시종 그를 의심했는데, 박정희는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민족일보 조용수를 비롯해서 수많은 혁신계를 잡아다 죽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력이 아둔한 북한은 남로당 출신이 대통령이 되자 무지하게 흥분, 좌익활동을 하다 총맞아 죽은 박상희(박정희의 형)의 친구를 보내 통일에 대해 협상을 하려한다. 이 사건은 ‘황태성 남파사건’이라는 간첩사건으로 둔갑하고 말았지만, 박정희의 좌익 의혹을 더욱 증폭시킨다. 63년, 67년 그와 대선에서 맞붙었던 윤보선이 박정희의 좌익전력을 들추며 끈질기게 색깔공세를 편 것도 다 거기서 연유한다.
물론 박정희가 공산주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남로당에 가입해서 활동한 것은 사실인만큼, “사실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는 답변은 좀 무책임하다. 남로당 가입이 좌익이 아니라 우기고, 신자유주의에 지나치게 충실한 노무현 정부를 뻑하면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걸 보면, 박근혜가 ‘좌’와 ‘우’의 개념을 헷갈려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간 박근혜는 자기 아버지를 지나치게 우상시한다. 아버지를 팔아 그 자리까지 와서 그런지 몰라도 불리한 것은 무조건 부인한다. 차라리 “좌익 활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전력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공국가를 만들었지 않느냐”고 대답했다면 훨씬 더 멋있었을 거다. 인권 탄압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기 아버지 치하에서 억울하게 고생한 분들의 존재를 무턱대로 부인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가 “그땐 미안했다.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당신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거 아니냐”라고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르긴 해도 박정희의 명성이 더 높아졌으리라. 자신의 아버지가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아버지도 그 사람에겐 소중하다는 걸 알아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박근혜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고, 그녀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위대한, 흠결 한점 없는 훌륭한 아버지다.
3. 국민투표
난 수도이전에 대한 국민투표를 반대하는 편이다. 사안 자체를 냉정히 평가하기보다는 누가 그 정책을 추진하는가에 따라 판단이 결정되는 정략적인 사고가 대세를 이루는 와중에, 국민투표의 실시는 또 다른 대선이 될 수밖에 없다. 충청도의 찬성은 이해가 가고, 서울 사람들은 집값이 떨어질까봐 반대할 수 있지만, 서울에 땅 한평 없는 지방 사람들이 도대체 왜 반대를 한담?
토론 프로에 나온 최모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국민투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지요”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다. 여러 가지라면 최소한 세가지 이상이란 소린데, ‘하자’ ‘말자’ 빼고 또 뭐가 있담? 하는 척하다 말자? 오늘하자, 내일하자, 모레하자?
위헌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를 해보니 국민투표를 하자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단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결정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지만, 내 생각에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리 국민들이 노리는 것은 투표날 갖게 되는 하루의 휴식이 아니었을까. 늘 격무에 시달리고 일년에 고작 4-5일의 휴가만을 향유하는 고단한 국민들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쉴 때 쉬더라도 수도 옮기고 쉬면 좋겠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