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0월 4일(월)

누구랑: 혼자, 아니 벤지랑

마신 양: 소주 한병 반


별일이 없으면 난 언제나 7시 49분차를 타고 출근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기차 시간을 조금 뒤로 미뤄야 했다. 내 얼굴이 영 엉망이었기에. 안그래도 외모가 처지는데, 눈까지 퉁퉁 붓고 나니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엊그제 밤부터 벤지가 아팠다.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고, 숨소리도 가빴다. 일찍 퇴근을 해서 벤지를 데리고 가축병원에 갔다. 톤이 높은 목소리의 의사가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네요”

하염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마음의 준비를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막상 그런 말을 들으니 걷잡을 수 없이 슬픔이 몰려왔다.


원래 술을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창고에 가서 소주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슬픈 일이 있을 땐 술이 가장 좋은 친구니까. 여행을 떠나신 어머님이 미리 해놓은 육개장에다 소주를 마시면서 난 벤지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좋은 일보다는 내가 못해줬던 기억이 더 많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나와 더불어 산 지 16년, 벤지는 이제 내 곁을 떠나려 한다. 백내장으로 희미해진 눈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날 바라보는 벤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날 기다려 줬기에, 벤지가 없는 내 삶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데.


그렇게 술을 마시고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벤지는 전날보다 아주 조금 나아 보였다. 내가 차려준 밥을 다 먹고, 옥상에 올라가 자기 다리만한 대변을 보았다. 식욕이 돌아온 걸 보니 좀더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출근할 때면 늘 그렇듯이, 오늘 아침에도 벤지는 출근을 하는 날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텅 빈 집에서 기다릴 벤지 생각을 하니, 오늘 저녁의 술자리는 도저히 참석하지 못하겠다. 4시 반의 회의만 끝나면 잽싸게 집에 가야지. 벤지야, 조금만 기다려라. 아빠가 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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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5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0-05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eylontea 2004-10-05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오랜만에.. 1등이닷...

하얀마녀 2004-10-0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질뻔 했습니다. ㅜ_ㅜ

paviana 2004-10-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가 좀 나아있기를 바래요.. 글구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고
꼭 기필코 반드시 칼퇴근하세요...

갈대 2004-10-05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따라 벤지의 슬픈 눈이 더 슬펐을 것 같습니다. 일찍 퇴근해서 함께 해주세요

ceylontea 2004-10-05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벤지가 아프군요...건강하게 조금 더 살아줬으면 좋겠어요... 마태우스님을 위해서라도.
저는 어제 일때문에 밥을 샜더니.. 제정신이아닙니다...

비로그인 2004-10-05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마태님 당분간은 술자리 자제하시고 벤지랑 함께 해주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려요 ㅜ.ㅜ
아무리 잘해주고 사랑해줘도 지나고 나면 더 잘해줄걸 하는 후회만 남습니다.
퍼내면 퍼낼수록 더 많이 나올수 있는게 사랑이에요.

정 술드시고 싶으면 나중에라도 제가 사드릴테니 당분간 벤지옆에 꼭 같이 있어주세요.

플라시보 2004-10-05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벤지가 떠나더라도 님 덕분에 오래오래 잘 살고 간다고 생각할껍니다. (모 프로그램에 정선희씨가 강아지를 10넘게 기르면 생각도 하고 사람 말도 알아듣는다고 하더라구요.) 남은 시간동안 옆에 함께 있어주시기 바랍니다. (벤지가 더 길게 살았으면 좋겠네요.)

2004-10-05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4-10-05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든 다 그렇지만, 특히 곁에 두고 키운 개는 나중에 죽을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정 떼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개 다신 안 키운다고 했는데 우리는 또 개를 맡고 말았으니 이제 겨우 1년 됐지만...그래요. 될 수 있으면 많이 벤지 곁에 있어 주세요.^^

starrysky 2004-10-05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야, 힘내! 아빠가 슬퍼하시잖니.. ㅠㅠ
마태님 일찍 퇴근하셔서 벤지 꼬옥꼬옥 안아주세요..

2004-10-05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코죠 2004-10-0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벤지 괜찮아요...? 마태님도 괜찮으세요..? 모두 한마음으로 안타까워 하고 있으니 어서 괜찮다고 글 올려주셔요.

겨울 2004-10-0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가 아프다고 하니 꼬맹이 조카 아이들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어쩔줄 모르고 바라만 봐야하는 심정... 불쌍해서 어쩌죠?

책읽는나무 2004-10-06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벤지가.......어쩐담?
마태님 곁에 오랫동안 있어주면 좋을텐데~~~ㅡ.ㅡ;;
벤지야..힘내라~~^^

sooninara 2004-10-06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야..아빠가 술만 마시고 집에 안들어 와서 맘이 아팠니?
이젠 일찍 들어오실거야..벤지..힘내거라..

마태우스 2004-10-0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친구님/오늘은 진주 출장이라 조금 늦게 가지만, 이번주는 술 안마실 겁니다. 꼮이요!
책나무님/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말씀 감사합니다...
우울과 몽상님/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구,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요.
오즈마님/걱정해 주신 덕분에 조금 나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속삭여주신 분/그, 그렇게 해볼까요? 솔직히 자포자기한 상태긴 하지만..... 마음이 결정되면 연락 드릴께요
스타리님/흐흑, 벤지 생각한다고 난방을 세게 틀고 갔는데요, 방안이 불덩이예요. 흑흑. 빨리 오길 다행이지...
스텔라님/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해야죠.
플라시보님/벤지가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체셔고양이님/걱정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술 당분간 안마실께요
실론티님/덕분에 벤지는 괜찮아졌습니다. 실론티님 오늘 푹 쉬셔야겠네요.
갈대님/그렇죠...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얼마나 서러울까요....
파비아나님/어제 회의 끝나고 암표 사서 기차 탔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얀마녀님/저도 쓰면서 울었어요..........공감해 주셔서 감사해요
속삭이신 매직님/님의 말씀 잘 듣겠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진/우맘 2004-10-06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야 봤네요...이런...벤지 없는 마태님은 상상할 수 없어요. 벤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