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등학교를 아주 모범적으로 다닌 나, 그 과정에서 ‘노는 애’에 대한 편견이 내게 내면화되어 버렸다. 즉 노는 애들이 하는 건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의지가 너무 강하다보니, 건전한 놀이조차 거부하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 담배를 안피게 된 것도 아버지가 골초여서라기보다 노는 애들이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이고, 당구를 안치는 것도, 머리를 뽂지 않는 것, 빽바지를 안입는 것 등도 다 그때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그중의 하나가 나이트였다. 당시 노는 애들은 심심치 않게 나이트를 갔다. 그것도 여자랑. 그 얘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워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난 절대 나이트에 가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곤 했다.
대학에 갔지만 변한 건 없었다. 난 여전히 당구를 멀리했고, 나이트를 안갔다. 그러다 일이 생겼다. 써클에서 5박6일의 진료봉사를 마치고 동기들과 애프터를 하는데, 이것들이 신촌에 있는 나이트를 간 것. 난 죽어도 춤을 안추겠다고 테이블에 앉아 맥주만 축냈지만, 애들은 한사코 날 스테이지에 나가게 하려고 안달이었다. 결국 버티다 못한 난 화를 내며 나가 버렸으니, 그 뒤 분위기가 얼마나 썰렁했겠는가. 춤을 추는 걸 타락으로 알았기에 써클에서 좋아하던 여자애가 춤을 추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고, 그런 걸 안보려고 돌아앉아 술을 마셨었다. 그때 그 멤버가 겨울에 설악산에 놀러를 갔다. 떠나기 전날 별 둘짜리 호텔의 나이트에 갔는데, 그래도 대학을 1년 다녔다고 난 좀 변해 있었다. 빅 세븐스라는 듣도보도 못한 그룹의 노래를 들으면서 춤을 췄는데, 난 씩씩하게 스테이지에 나갔다. 하지만 난 발만 움직였을 뿐, 손뼉치는 걸 제외하곤 손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건 손동작까지 하면 내가 타락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많이 노력한다”는 칭찬을 친구로부터 들었다. 그 뒤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분위기를 깨지 않을만큼 스테이지에 나갔고, 나가면 늘 손과 발을 반복적으로 흔드는 똑같은 동작을 취했고, 대부분의 시간은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셨다. 남들은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춤이 댕긴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난 한번도 나이트에 자발적으로 가고픈 적이 없었다. 나이트가 변질이 되어 부킹을 시켜주는 곳이 되고만 요즘도 난 나이트가 싫은데, 그건 예전처럼 춤이 싫어서가 아니라, 부킹에 자신이 없어서다.
지금은 내가 그랬던 걸 후회한다. 사람이 뭐든지 조금씩은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춤을 못춰도 너무 못추니까. 한 유머 하는 사람이라면 춤도 잘 춰야 했기에 후회감은 증폭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나이트에 가면 춤을 잘추는 사람을 유심히 쳐다본다. 춤을 배우기 위해서. 테이블에 앉아서 따라해 보기도 하는데, 그게 매우 단순한 동작을 우려먹는 것인 건 알겠지만 내겐 너무 어렵다. 음악에 맞춰서 동작이 달라지는, 말로 표현하자면 리듬감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난 없다. 멋진 동작이라도 하나 익혀두면 계속 우려먹을텐데, 내가 추는 건 왜 그렇게 멋대가리가 없는지. 잘추는 애들에게 물어보면 뮤직비디오도 보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한다는데, 나이트를 자주 갈 것도 아닌지라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다. 세상이 아무리 날 ‘몸치’라고 구박할지라도.
따지고보면 젊은 시절의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잘못된 선입견들을 너무 고집했던 것 같다. ‘음악은 아편이다’라는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팝에 대해 일자무식이고, ‘만화방은 날라리나 간다’는 생각에 주옥같은 만화들을 다 흘려보냈다. 어릴 적 과일 때문에 고문을 당했다고 지금은 모든 과일을 안먹어 버린다. 싫어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나처럼 극단적으로 안해 버리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 지난 세월이야 어쩔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잘해야겠지만, 요즘도 그 잔재가 남아 주기적으로 날 괴롭힌다. 갖은 편견으로 왜곡된 내 인생을 어째야 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