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니스를 못쳤다. 테니스장으로 출발하려고 모인 6시께,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설마 그치겠지 하면서 떠났지만 비는 계속 온다. 실내 코트는 이미 예약이 끝났단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며 집으로 왔다. 계속 비가 왔으면 모르겠지만, 오후 4시에 잠에서 깨보니 날씨가 맑기만 하다. 테니스를 두시간 뛰고 나면 살이 조금이나마 빠질 텐데, 아무래도 하늘이 내가 날씬해지는 걸 시기하나보다. 작년에도 일요일마다 10주 연속 비가 온 적이 있고, 테니스 치는 날을 토요일로 바꾼 올해는 주로 토요일에 비가 온다. 오늘치 운동을 못했으니, 이따 야구를 보면서 러닝머신을 해야겠다.
러닝머신을 산지도 벌써 일년 2개월이 지났다. 이제 한번만 더 돈을 내면 완전히 내것이 되는 그 러닝머신, 그걸 살 때만 해도 난 홀쪽해진 스스로를 상상하며 즐거워했었다. 러닝머신을 빨래걸이로만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난 적어도 일주에 4번 이상은 3-5킬로를 달렸다. 하지만 체중상으로만 본다면 러닝머신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작년에 비해 오히려 체중이 늘어났으니 말이다. 친구의 조언대로 러닝머신에 더해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다. 한때 일분에 60개 이상을 윗몸일으키기를 해 체력장에서 만점을 받았던 나, 그때 실력은 이미 죽었고, 60개를 하려면 2-3분이 걸린다. 게다가 바닥이 돗자리다보니 엉덩이가 까졌는지 방석이 없이 그냥 앉으면 아플 지경이다.
20대 이후, 난 한번도 내 몸매에 만족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체중은 계속 늘어만 갔다. 그러니까 늘 현재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그 시절이 봄날이었음을 깨닫곤 했다. “언제가 산달이냐”라는 말을 흔히 듣는 요즘엔 3년 전만 같았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3년 전에는 내가 가장 날씬했던 96년 가을을 생각하면서 투덜댔었다.
3년 전 그땐 마라톤 하프코스를 완주했었다. 그땐 “내년부턴 풀코스에 도전해야지”라는 야심찬 목표를 꿈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20킬로를 완주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당시 난 신문사에서 개최하는 마라톤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했었다. 대회에 나가려니 몸을 만들게 되고, 그러다보니 최소한 유지는 되었다. 대회에 나가는 사람들의 몸매를 보건대, 마라톤만큼 살이 빠지는 운동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2002년 외국에 연수를 갈지도 몰라 마라톤 대회 신청을 하나도 안했고-연수는 결국 취소되었다-그 바람에 그해에 열린 대회에 한번도 나갈 수가 없었다. 편한 걸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성, 난 갑자기 고독과 맞서 싸워야 하는 마라톤이 싫어졌고 그 후부터는 6월에 열리는 한겨레 마라톤을 제외하고는 웬만해선 나가지 않는다. 내가 그때보다 살이 찐 건 당연한 귀결이다.
내가 젊었을 때 살이 찐 애들이 주위에 있었다. 난 맘 속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저런 몸매를 하고 어떻게 웃을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걸을 때 배가 가장 먼저 나가는 그들, 하지만 지금의 난 그때 내가 비웃던 그들과 비슷한 몸매가 되어 버렸다. 내게 하나라도 더 먹이지 못해서 안달이시던 어머님도 언제부터인가 날 ‘백돼지’(피부가 하얀 돼지라는 뜻)라고 놀리고, 내 영원한 지지자 할머니도 날 뚱뚱하다고 걱정한다. 체중이 반에서 가장 덜나갔던 중, 고교 시절을 바라는 건 너무하겠지만, 스스로 불만족스러웠던 30대 초반의 몸매로라도 돌아가고 싶다. ‘살이 찌는 건 노화의 한 징표’라고 하지만, 자신을 늙었다고 생각지 않는 나로서는 이게 노화의 증거라는 걸 믿고 싶지는 않다.
사람에 따라 살이 안찐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들은 살이 찌려고 노력해도 살이 안찐다고 투덜댄다. 그들의 고민도 나름대로 심각하긴 하겠지만, 살을 빼는 것은 그보다 몇배나 더 힘든 작업이다. 이번주만 해도 5킬로씩 다섯 번을 뛰었건만 내 배는 한치도 줄어들지 않았다. 다른 방법도 마땅히 없고, 뛴 후에 몰려오는 뿌듯함을 느끼기 위해 뛰긴 하지만, 러닝머신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된다. 이렇게 살이 찔 줄 알았다면 내 주위 친구들에게 뚱뚱하다고 놀리지나 말 것을. 그때 내가 놀렸던 친구보다 내가 더 체중이 많이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난 정말 죽고만 싶었다.
언젠가 ‘내 배를 사랑하겠다’고 쓴 적이 있지만, 난 그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내 배를 사랑해 본 적은 없다. 이 흉측한 배를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겠는가. 사람에게 기회가 자주 오는 건 아니다. 더 늦으면 내 살들은 나의 일부가 되어 버리니까. 오늘부터 살빼기 40일 작전에 들어간다. 술을 줄이고 어제처럼 삼겹살을 38점이나 먹는 짓은 이제 그만하련다. 러닝머신에서 뛰는 거리를 7킬로로 늘리고, 맥주는 어떠한 경우에도 먹지 않겠다. 밥은 최대한 천천히 먹으면서 남기는 걸 유도하며, 술을 먹고 들어와서 라면을 먹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40일이 지난 추석 때, 날씬한 몸으로 아버님께 절을 하리라. 오늘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