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주 모 방송에 나가서 했던 (헛)소리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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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목포로 향하던 아시아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그당시 헬리콥터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인을 줄에 매달아 끌어올리는 광경이 TV 화면에 비추어졌다. 원피스가 치켜올라간 선정적인 자세라서 그런지 TV는 그 장면을 여러번 방영했고, 다음날 신문들도 여인의 사진을 1면에 실었다. 그 와중에도 선정성을 챙기는 우리 언론들의 태도가 놀라웠지만, 더 놀란 것은 그녀가 척추 손상 환자였다는 거다. 척추를 다친 환자라면 마땅히 딱딱한 들것에 실어 척추의 모양을 보존해야 하건만, 줄에 매달아 구조하는 건 무슨 해괴한 짓인가?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 여인은 결국 휠체어 신세를 평생 져야 했단다. 초기에 처치가 잘 되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응급처치가 완벽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잘못되면 살 수 있던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치명적인 손상을 야기시킬 수 있다. 뇌는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5분 이상 살지 못하므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다. ABC라는 말이 있다. A는 airway, 즉 기도, B는 breathing(호흡), C는 circulation(순환)을 의미하는데, 응급상황에 닥쳤을 때 이 세가지만 잘 해주면 특별히 지장은 없다. 즉, 기도가 막히지 않아야 하고, 호흡을 통해 산소가 공급되고 혈액량이 모자라지 않는다면 죽는 일은 없다는 거다. 이걸 중심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응급상황과 그 부작용에 대해 써본다.
1. 인공호흡
영화나 TV에 많이 나와서 그런지 사람들은 누가 정신만 잃으면 인공호흡을 하려고 한다. 특히 젊은 여자가 기절이라도 하면 주위 남자들이 인공호흡을 하겠다고 우르르 달려드는 모습을 난 여러 번 봤다. 심지어 어떤 남자는 자기 여자친구를 억지로 바다 깊은 곳으로 끌고나가 물을 먹인 후 여자가 의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호흡을 시도했다는 제보도 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슬퍼진다. 인공호흡이라는 훌륭한 방법이 왜 이런 식으로 악용되어야 할까. 인공호흡이란 자기 호흡이 없는 사람에 한해서 시행되어야 한다. 코에 손을 대 봐서 바람이 느껴지면 자기 호흡이 있다는 얘기며, 인공호흡은 필요가 없다. 인공호흡이 키스를 못해본 남자의 한을 풀어주는 용도로 쓰이는 바람에 말라가시에서는 인공호흡 자체를 아예 법으로 금지시켰고, 그 바람에 정말 살릴 수 있었던 환자 두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런 사태가 오지 않도록 좀 자제할 일이다. 키스를 하고 싶으면 분위기를 만든 뒤 당당히 요구할 일이다.
또하나 악용되는 건 심장마사지다. 심장이 안뛰는 사람의 가슴을 두 손으로 압박해 심장을 뛰게 만드는 건데, 이것 역시 남자들에 의해 여자의 가슴을 만지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인공호흡이 자기 호흡이 없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처럼, 심장 마사지 역시 심장이 안뛰는 환자에 한해서만 시행해야 한다. 환자의 목에 있는 경동맥을 만져 동맥이 뛰는가를 확인한 다음 맥박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다. 심장이 잘 뛰는데 왜 가슴을 압박한단 말인가? 작년 한해 우리나라에서는 심장 마사지를 빙자한 성희롱이 전체 성희롱의 9%를 차지했다는 보고도 있는만큼, 남성들의 각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가슴을 압박한 건 그럴 수 있다 치자. 전기충격은 더 큰 문제다. 드라마 <진실>을 비롯해 TV에서 심장이 멈춘 환자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장면이 여러번 방영된 탓에 기절만 하면 전기충격을 가하는 사람도 보고되어 있다. 쓰러진 틈을 이용해 만져보겠다는 음흉한 마음이 없는 건 높이 쳐주겠지만, 그로 인해 멀쩡한 환자가 심한 내상을 입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반드시 심장이 뛰는지를 확인한 후, 의사의 지시를 받아서 시행해야 한다. 전기충격이란 게 만능은 아니며, 그로 인해 소생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까맣게 될 때까지 전기로 태우다 물의를 빚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니 말이다.
2. 이물질을 삼키면
아이들이 뭔가를 갖고 놀다가 삼켜 버리는 일은 비교적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일어나면 초응급 상황이 된다. 그때는 어떡해야 할까. 책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애를 무릎에 눕히고 등을 두드리거나, 뒤에서 껴안고 복부를 압박하면 빠지는 수가 있다. 의식이 없다면 입을 벌리고 손가락이나 젓가락으로 이물질을 빼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반드시 의사의 진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른 법, 이비인후과를 하는 친구에게 문의를 했다.
-이물질이 아이의 기도를 막았을 때, 책대로 하면 빠지나?
=한번도 안해봐서 모르겠다. 그게 드물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가?
=아무나 해도 될걸?
-바둑알 같은 게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애들 기도가 작기 때문에 들어갈 리가 없다. 땅콩도 안들어갈 거다.
-그럼 기도가 막혀서 호흡곤란이 되는 일은 없나
=매우 드물다. 이물질이 막는 것보다 기관지가 수축하거나 경련이 일어나서 막히는 수가 있지만, 대부분 다 풀린다. 그리고 더 조그만 것들이 들어가 한두달 후에 흡입성 폐렴으로 나타나는 수가 있다.
-식도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나
=식도에서 다 걸린다. 전신마취를 해야하고, 식도경으로 빼내면 된다.
의사의 말을 듣고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 평소 병원의 위치를 잘 알아놓은 다음 애가 뭘 삼켰다 하면 병원으로 냅다 뛰는 게 좋을 것 같다.
3. 방광
더운 여름철에는 아무래도 시원한 맥주를 많이 먹게 마련이다. 맥주를 먹으면 별 거 아닌 일에도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데, 맥주로 인해 방광이 꽉 찬 상태에서 방광을 걷어차이게 되면 방광이 그대로 터질 수가 있다. 술을 먹으면 되도록 싸우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부득이하게 싸울 때는 얼굴 커버를 포기하고 방광을 보호하는 게 좋다. 얼굴은 아무리 맞아도 터지지 않으니까.
4. 개
개한테 물리면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다. 개가 광견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람을 문 개는 그대로 달아나 버린다. 물론 요즘같은 시대에 개가 광견병에 걸렸을 확률은 1%도 안되지만, 그게 자신에게 닥쳤다면 무섭지 않겠는가. 그럴 때는 일단 비눗물로 씻고 지혈한 후, 국립보건원에 가서 광견병 백신을 달라고 해야 한다. 물론 잘 안준다. 개가 광견병에 걸렸다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할거다. 왜? 백신 한병에 100만원이 넘으며, 보유 개수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견병이란 일단 발병하면 끝인데, 개를 찾아다니다 시간을 허송세월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 앞에서 드러눕는 걸 권하는 바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갈등이 원만한 공적 절차를 거쳐 해결되는 곳이 아니며, 큰 목소리와 버티기 등의 실력행사가 아직도 통한다. 이틀만 드러누워 있으면 십중팔구 약을 탈 수 있을거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거품이 나는 약을 입에 넣어주면 더 빨리 얻을 수도 있다. 일단 자신이 살고봐야 할 게 아닌가.
5. 술먹고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누가 술을 먹고 길바닥에서 쓰러져 잔다. 매우 평온해 보이지만, 잘못하면 위험에 빠질 수가 있다. 겨울철에는 그대로 동사할 수가 있다지만 여름철에는 왜? 술을 먹고 오버이트를 하다가 그게 기도로 들어갈 수가 있으니까. 누운 자세라면 더더욱 기도로 들어가기 좋다. 그러니 술먹고 누워 자는 사람을 보면 옆으로 뉘여 줄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잠에서 깨면 지갑을 터는 사람으로 오인받을 수 있고, 이미 털린 경우라면 택시비를 달라고 보챌 수도 있으니 옆으로 뉘워준 다음에 잽싸게 갈길을 가라. ‘내가 오늘 사람 하나 살렸다’라는 자부심을 품고서.
이것 외에도 많은 응급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침착함을 잃지 않는 일이다. 혀가 기도를 막지 않도록 턱을 들어올린다든지, 일사병에 쓰러진 사람이라면 물을 갖다준다든지 평소 알던 상식에 맞게 처치를 하면서 119에 전화를 하라. 밤이건 낮이건 당직을 서는 의사가 다급하고도 장황하게 설명을 해줄 것이다. 그대로 따르기만 한다면 당신은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 오즈마님의 지적에 따라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통계는 대충 그럴 것이다고 생각해서 제가 지어낸 '구라'입니다. 성희롱 차원의 가슴 마사지가 9%라느니 하는 것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