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라딘의 특징 중 하나는 어머니와 아들간에 갈등이 있으면 무조건 어머니 편을 든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내가 제3자 해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당사자일 때, 그래서 나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고자 했을 때 다들 어머님 편만 들면 좀 서운하다. 어머니가 삐지셨다. 이번만큼은 내 편을 들어줄 것으로 믿고, 전말을 써본다.
1) 어머니의 특징
전에도 여러번 말했지만 어머니는 바쁘다. 아침 8시 전에 어디론가 나가셔서 밤 7시쯤 돌아오신다. 밖에 계실 때는 친구분과 얘기를 하시느라, 집에 계실 때는 친구분과 전화를 하시느라 내가 엄마와 대화할 틈이 없을 정도다. 어머님이 휴대폰을 받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그래서 엄마 친구들은 늘 "전화가 안된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그걸 잘 아는 엄마는 중요한 전화 같은 건 내 번호를 가르쳐줘 버린다. 예컨대 경품 같은 걸 응모했을 때라든지, 바지 수선을 맡겼을 때도 내게로 전화가 온다. 내가 전화를 받으면 그들은 흠짓 놀란다.
"김선자 씨 휴대폰 아니어요?"
나도 엄마한테 꼭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전화를 받는 비율이 10%도 안되니 당연한 일이다.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어 두시간쯤 전화를 건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2) 냉장고
우리집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문짝에 달린 선반이 떨어져 버렸다. 거기다 뭘 잔뜩 넣어두신 것도 이유가 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내가 냉장고 문을 워낙 과격하게 열었던 것. 문을 열자마자 굉음을 내면서 선반의 물건들이 쏟아졌으니 사실상 내 책임이다. 하지만 비겁한 나는 그게 저절로 떨어진 것처럼 엄마에게 보고했고, 엄마는 새 선반을 AS 센터에다 의뢰했다 (이 대목은 내가 나빴다).
엊그제, AS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부품이 나왔으니 찾아가라고. 이 더운 날 엄마가 선반을 들고 버스를 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던 나는 내가 일찍 퇴근해 그걸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엄마가 거길 가면 어쩌지? AS 센터에서 "다른 전화가 안되서 이 전화로 했다"고 한 걸 보아 엄마한테도 연락이 갔을지 모르고, "언제쯤 찾으러 오라"고 했으니 전화가 안왔더라도 엄마가 거기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난 세시부터 전화를 걸었다. 안받는다. 또 했다. 안받는다. 정말이지 날씨도 더운데 화가 안날 수가 없었다.
일이분 간격으로 두시간 동안 그랬으니 백통은 더 했나보다. 다섯시를 넘긴 시점에서 엄마가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 소리에 놀라 나도 모르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다시 했다. 갑자기 화가 난 나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냐"고 언성을 높였고, 할말도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집에 오신 엄마는 "친구들이 아드님이 화나셨나봐요라고 해서 창피했다"고 하시면서 "친구들과 얘기하느라 못들었는데, 내가 아들 무서워서 친구도 못만나냐?"고 하신다. 난 친구랑 계신줄 몰랐다고, 그 대목은 죄송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앞으로는 전화 절대로 안할 테니 편하게 노세요"
그래서 엄마는 삐졌다. 눈치를 보니 다음날 아침에도 화가 안풀리셨다. 그래서 해명을 했다.
"내가 전화를 할까봐 엄마가 놀 걸 제대로 못노실까봐 전화 안한다는 거예요. 엄마가 전화 오나 안오나 신경쓰고 있으면 안되잖아요.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를 할 때마다 엄마가 미워지니, 전화를 안드리는 게 더 좋지 않아요?"
1%의 비아냥도 없는 진심이었지만, 엄마는 더더욱 삐지셨다. "니가 그럴 수가 있냐???" 어제 아침에는 심지어 이런 말씀도 하신다.
"우리 아들이 전화를 안하니까 내가 재미가 없다"
내가 편을 들어달라는 건 바로 이대목이다. 전화를 죽어도 안받으시면서, 내가 전화하는 게 재미있다고? 그렇게 믿는 건 아니지만, 엄마는 혹시 내 전화를 일부러 안받는 재미로 인생을 사신단 말인가.
난 앞으로도 엄마에게 휴대폰을 걸지 않을 거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전화를 걸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내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전화를 안받는 엄마를 미워하게 되니까. 이런 마음을 먹는 게 과연 나쁜 걸까? 엄마가 내 고운 마음을 이해하시고 삐진 걸 푸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