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7월 27일(화)
누구랑: 모교 사람들과
마신 양: 소주1병-->양주-->소주1병, 12시 귀가
좋았던 점: 지도교수가 나 왔다고 흐뭇해했다
나빴던 점: 파산함
1. 계산
모교에서 연락이 왔다. 스페인 학회를 다녀 왔는데, 오랜만에 술이나 같이 하자고. 난 원래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잔인하게 그 약속을 취소하고 모교로 갔다. 다른 학교에 가있는 내 친구 P와 또다른 학교에 있는 H가 와서, 교실 졸업생이 세명이나 온 거라, 선생님은 무지하게 좋아하셨다.
1차로 삼겹살을 먹었다. P가 잽싸게 계산을 했다. 왜? 1차가 제일 쌀 것 같으니까. 이번달엔 하두 카드로 긁어댄 터라 어떻게 돈을 안써볼까 했지만 그게 잘 안됐다. 믿었던 H가 "친구랑 약속이 있다"며 도망쳐 버린 것. 낼까말까를 열댓번쯤 망설이다 눈 딱 감고 긋기로 했다. 2차는 우리 단골인 양주를 파는 노래방에 갔는데, 양주 1병 값만도 7만원인데 맥주 몇병에 안주까지 세 개를 시켰다. 먼저 계산을 해 부담이 없어서 그런지 P는 계속 양주를 따르면서 "오늘 한번 마셔 봅시다!"를 외쳤다. 얄미운 놈... 결국 우리는 양주 한병을 더 시켜야 했고, 하두 긁어서 마그네틱이 닳은 내 카드는 힘겹게 전표를 뽑아냈다. 갑자기 다음 달이 무섭다. 내 결제액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2. 일본 알레르기
난 이상한 습성이 있다. 일본노래나 일본말을 들으면 밥을 못먹는 것. 일본 것을 먹는 건 더더욱 못한다. 생각 자체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 어릴 적부터 그랬다. 그러니 일본에서 학회가 있으면 절대 안갈 수밖에. 우리 누나도 그런 걸로 보아, 독립운동을 하던 조상의 넋이 유전된 것 같기도 하다.
1차로 간 삼겹살집에는 젊은 애들이 40명쯤 앉아서 고기를 먹고 있었다. 젊은이들답게 무지하게 떠들어댔다. 그거야 그럴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들이 일본 사람이라는 것. 괴성을 지르고 웃고 소리를 질러대는데, 그 좋아하는 삼겹살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귀를 막고 먹어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다행히 온지 40분쯤 지나서 걔네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난 그다음부터 삼겹살을 씹지도 않고 입에다 넣었다. 열명이서 18인분을 먹었는데 4인분 정도는 내가 먹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이 안갔다면 아마 한점도 못먹고 허기진 채 노래방을 가야 했을 터, 일본 알레르기는 영영 고칠 수 없는 것일까?
3. 노래방에서
옛날엔 최신곡을 부르곤 했지만, 어제 분위기는 완전 복고풍이었다. 90년대는 고사하고 80년대 노래가 주를 이뤘다. 젊은 여자애들은 '뮤지컬'이나 제목을 모르겠는 자우림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내가 처음 고른 노래는 소방차의 <하얀바람>이었다. 다들 놀랐다 (왜 놀랐을까?)
"또분다 분다 하얀바람이/난몰라 참 정신없이 말을했지만/그대 코끝으로 웃는 것같아..."
중간 간주 중에 팬 서비스 차원에서 덤블링을 했다. 그런데 하다가 그만 자빠져 버렸다. 예전에는 한손으로도 멋드러지게 덤블링을 했었는데, 산처럼 나온 배가 덤블링을 감당하지 못하게 하나보다. 젠장!
지도교수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P와 나는 색다른 이벤트를 준비했다. P랑 내가 무대에 오른다. P가 내 어깨에 손을 짚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거치른 벌판으로..."를 하는 거다. 듣기엔 그럴 듯 했지만, 노래방에선 <젊은 그대>의 전주가 나와버려 김이 샜다. 두 번째 이벤트. 간주 중에 내가 빈 양주병을 손에 든다. 그리고는 귀에 대고 말한다.
"친구, 내가 좀 그랬지? 양주 어때? 지금" 그러면서 양주병을 내미는 것. 생각할 때는 웃겼는데 막상 하니까 남들이 잘 못알아듣는다. 으음, 역시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니까.
사실 난 노래방이 싫다. 나뿐 아니라 어제 참석한 사람들 모두 싫어한다. 그럼에도 줄기차게 거길 가는 이유는 지도교수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른 팀들은 정말 즐겁게 노래를 하지만, 우린 조용히 앉아서 탬버린과 손뼉을 칠 뿐, 분위기가 죽어 있다.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니까. 잘 노는 애도 없지만, 있어도 그런 분위기에서는 쑥스러워서 잘 놀지 못한다. 그래서 전혀 놀 줄 모르는 나와 P가 재롱을 피워야 하는 처지. 이 나이에 그러긴 정말 싫지만, 어쩌겠는가. 되지도 않는 춤을 추고,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를 부르느라 소리만 질러댄 저녁, 그래도 선생님이 즐거우셨다니 다행이다. 선생님을 보낸 뒤 P와 둘이서 신촌 순대집에 앉아 소주 한병씩을 먹고 들어갔다. 피곤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