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 당산동에 가면 서민 씨의 생가가 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그 공간이 서민 씨네 네 식구가 살았던 곳이다.

여러 권의 영양가없던 책만 쓰던 서민 씨가 각광을 받은 건 2011년 가을에 출간한 <현대기생충백서> 덕분이었다. 출판사 대표 메피스토의 말이다.

"처음 읽을 때부터 물건이다 싶었습니다. 뭐랄까, 우리로 하여금 기생충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거든요. 제가 원래 선인세 같은 건 잘 안주는데, 그 책을 보자마자 선뜻 1천만원을 건네 줬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2천만부 가량이 팔린 그 책은 서민 씨를 국제적 스타로 만들었다.

"기생충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서민 씨는 그 책이 대단한 아이디어의 산물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교양과목 때 학생들한테 가르쳤던 내용을 옮겼을 뿐이어요. 근데 그게 그렇게 잘팔릴 줄은 몰랐어요. 그 덕분에 이십년이 넘도록 전세금을 팍팍 올려주면서 살 수 있었죠."



서민씨가 주로 쓰던 컴퓨터도 역시 평범했다.

"중고로 샀어요. 12만원인가 주고요. 인터넷이 잘되면 글을 쓰는 데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일부로 사양을 낮게 잡았어요. 물론 모니터는 좋은 거지만요."

서민 씨는 이 컴퓨터로 하루 2시간씩 꼬박꼬박 글을 썼다.

"술을 마시고 온 날엔 그 다음날에 4시간을 썼어요. 언젠가는 일주일 내내 술을 마셔, 일요일에 14시간을 쓴 적도 있어요."


서민 씨의 방에서 눈에 띄는 건 모자 컬렉션이다.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모자만 100개에 달하고, 매일매일 모자를 바꿔 썼다고 한다.

"그냥 젊게 보이려고 쓴 거예요. 그 덕분에 예쁜 아내를 만났죠 하하."

서민 씨의 아내는 책을 안쓰고 농땡이만 피우던 서민 씨를 채찍으로 때려가며 책을 쓰게 한 걸로 유명하다. 방에 가둬둔 채 하루 분량을 다 쓸 때까지 풀어주지 않을 정도였다.

"책은 안쓰고 어찌나 요리조리 빠져나가는지, 가만 놔두면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옥션에 들어가 채찍 두벌을 구입했죠."

아내의 엄지손가락에 굳은 살이 박힌 걸 보면 채찍질을 얼마나 했을지 짐작이 간다.


서민 씨는 글이 안써질 때면 이 슬리퍼를 신고 산책을 했다. 
 



서민 씨 방에 놓인 책장. 책이 생각보다 적은 건 살던 아파트에서 도서관을 만든다고 책 기증을 부탁해서였다.

"그때 한 500권 이상 기증했죠 아마? 다른 분들도 제법 책을 기증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근데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서관이 지어지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제가 속은 거 같아요."


서민 씨가 글을 쓸 때마다 입었던 반바지. 이 바지를 입어야 글이 잘 써졌다고 한다.


이름처럼 서민적인 풍모, 재벌2세이면서도 소박한 삶을 살았던 서민 씨는 현재 군포에서 테니스장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그때의 선풍기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을 거다. 힘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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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8-14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태우스님의 이런 글은 우울증 특효약이라는거 아세요?
컴퓨터 주위하며, 모자로 채워진 책장, 하나의 행위 예술 작품으로 던져있는 입던 바지...저도 매우 익숙한 풍경입니다 ㅋㅋ
저 선풍기는 정말 진품명품에 나가야할 선풍기 아닌가요? 저희 친정에 있는, 제 나이와 똑같은 나이의 선풍기보다는 쪼금 연식이 덜 한것 같지만요. 정말 소박한 삶을 살았던 재벌2세, 맞는 것 같아요.

마태우스 2011-08-15 13:49   좋아요 0 | URL
호호 님의 기분 업에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결혼해서 좋은 건, 마음껏 어질르면서 살 수 있다는 거죠
저 선풍기는 돌아갈 때 시끄러운 소리가 난답니다. 그래도 뭐, 시원해요^^

다락방 2011-08-1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마태우스님, 이 페이퍼 완전 재밌어요! ㅎㅎ 선풍기 진짜 오래된 선풍기네요. 정이 많이 들었겠어요. 후훗. 저 안그래도 마태우스님 리뷰 읽고 [걸작의 공간] 구입했는데(비싸더군요!!) 다 읽고나면 저도 이런 페이퍼 하나 써야겠어요. 히히.

마태우스 2011-08-15 13:50   좋아요 0 | URL
재밌다고 해주셔서 감사. 다락방님의 걸작의 공간이 궁금해요! 저 선풍기는 친정에서 쓰던 걸 훔쳐온 거라 정보다는 뿌듯한 마음이 더 크답니다

poptrash 2011-08-15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거 짱이에요. 더 길게 써주세요 ㅋㅋ

마태우스 2011-08-15 13:50   좋아요 0 | URL
눈치보면서 글쓰느라 길게 못썼어요. 다음번에 쓰는 3류소설은 장편으로 쓰겠습니다^^

moonnight 2011-08-15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읽다가 3류소설 카테고리라는 걸 알았어요. ^^; 사진 크게 해서 마태님 책장에 어떤 책이 있나 눈을 부릅뜨고 살피기도 하고. 너무 재미있어요. ^^

마태우스 2011-08-15 13:51   좋아요 0 | URL
호호 우리같은 사람들에겐 다른 사람 책장엔 뭐가 있는지 보는 게 재미죠. 최근 책은 아래쪽에 있는데 제가 포커스를 위쪽으로 했군요.

자하(紫霞) 2011-08-15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태우스님 서재 몰래몰래와서 눈팅했는데 지금 너무 웃겨서 스마트폰으로 로긴해서 댓글달고 있어요 ㅋ

마태우스 2011-08-15 13:5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베리베리님. 몰래오신 분이 바로 님이시군요!! 재밌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stella.K 2011-08-1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오랫만에 보는 마태님의 3류소설이군요.
마지막 멘트는 정말...!ㅋㅋㅋㅋㅋㅋㅋ

마태우스 2011-08-15 13:5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너무 오랜만에 쓰죠? 가끔 구글 검색하다가 제가 쓴 3류소설을 만날 때가 있어요. 이런 말하면 좀 바보같지만, 어떻게 저런 훌륭한 작품을 썼을까, 감탄한답니다^%^

비로그인 2011-08-15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정말 재미있네요!

마태우스 2011-08-15 13:53   좋아요 0 | URL
아유 재밌다고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깊이로는 님한테 안되니까 이런 편법을 쓰는 거랍니다^^

blanca 2011-08-15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진짜인 줄 알고 ㅋㅋ 마태님이 재벌의 아들이었단 말인가? 이랬어요. 완전 단순하죠. 무언가 조금 이상하다,고 계속 갸우뚱거리기는 했지만... 완전 재미있어요. 정말!! 이천 부라니요 ! ㅋㅋㅋ 앞으로 이 부분은 가능하실 것도 같은데요. 저 선풍기 정말 인상적이네요.

순오기 2011-08-15 23:10   좋아요 0 | URL
이천부가 아니고 이천'만'부에요.^^

마태우스 2011-08-16 11:2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말씀대로 이천만부입니다 -.- 이천부 정도는 이전 책들도 다 달성한 거라구요!! 선풍기가 고색창연할수록 글이 잘써지는 법이죠 호홋.

2011-08-15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6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8-1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태우스님의 걸작의 공간도 멋지군요.
특히 모자와 선풍기는 대단해요!!
마음산책에서 이 페이퍼 보시면 감동하실 듯해요.^^

마태우스 2011-08-16 11:24   좋아요 0 | URL
아..네... 부끄럽습니다. 걸작의 공간 읽다가 시상이 떠올랐답니다. 선풍기가 고색창연하죠^^

2011-08-18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2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1-09-02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퓨터 위의 밥그릇, 모니터 속의 알라딘 3단 파우치 증정 이벤트 창까지...구석구석 찾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마태우스 2011-09-16 22: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컴 위에 있는 건 사실 밥그릇이 아니라요 휘톤치드라고, 아내가 설치해 준 거예요^^

무스탕 2011-09-1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포면 울동네인데 어디에욧-! 내 당장 갈랍니다. 가서 1년 선불내고 회원가입하고 사장님 직강 받을거에욧-!! ^^
(선풍기 뒤에 있는거 도란쓰(라고 해야 우린 쉽게 알아먹죠.ㅎㅎ) 맞요?)

마태우스 2011-09-16 22:20   좋아요 0 | URL
앗 님 군포 사시는군요. 사실 아는 분이 군포에 땅이 있었데 거기 테니스장 짓는 게 꿈이었답니다. 물론 지금은 물건너갔지만요. 그게 그린벨트 해제되는 바람에 건물을 짓는다네요.

CREBBP 2014-01-2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온도계의 철학 리뷰 찾아보다가, 흘러 흘러 들어왔군요.
기생충의 철학도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