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2급 방화관리사 자격증을 따고 난 뒤부터는 어딜 가도 비상구의 위치나 소화기가 있는 곳 등을 눈여겨 보게 된다. 난 자격증이 필요해서 교육을 받았지만, 교육 내용 중 너무나도 현실에서 유용한 것들이 많아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아무리 안전에 만전을 기해도, 세상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확-------- 하고 저질러 버린다면 말릴 길이 없다. 사회복지가 엉망인 우리 사회엔 세상을 비관한 사람이 많다는 것도 기억하자.
내가 어릴 적엔 소화기의 안전핀이 뽑히지 않으면 소화기를 불난 곳에 던져도 된다고 배웠지만, 지금은 그런 소화기가 나오지 않는단다. 아담한 크기와는 달리 소화기는 매우 좋은 화재진압 기구로, 그거 하나만 있으면 네군대 정도의 불을 끌 수가 있단다. 대구 지하철에서 그 남자가 불을 질렀을 때, 주위 사람들 중 누구 하나라도 방화관리사 자격증이 있었다면, 그래서 소화기를 가져와 불을 껐다면 100명이 넘게 죽는 대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게다.
위급 상황에서 사람들은 맨 먼저 가는 사람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때 사람들은 앞 사람을 따라 지하에서 위로, 또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 불이 나면 불에 타죽는 것보다 연기에 질식해서 죽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연기는 수평으로는 빨리 못가도 위로는 금방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무조건 지상으로 나가려 하기보다, 지하철 선로를 따라서 천천히 걸었다면 십분도 안되어 다음 역에 도착했을게다. 어차피 전철은 운행이 중단된 상태였으니 말이다.
차량 하나에 불이 나 있는데, 또다른 전철이 들어왔었다. 그 전철의 승무원은 이런 말을 했었다. "차량 화재로 전철 운행이 지연되고 있사오니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한 전동차 내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철에 불이 붙은 것이 그에게는 운행을 지연시키는 사소한 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걸까. 6. 25 때 서울은 안전하다면서 잽싸게 도망간 이승만처럼, 그는 그 말을 남긴 채 열쇠를 빼가지고 사라졌는데, 그때 그가 판단을 잘 내렸다면 그토록 많은 인명이 희생되지 않았을거다.
46명의 어린 학생들이 숨진 인천 호프집 화재. 그 화재는 지하에서 근무하던 아르바이트생들의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신나와 휘발유 중 어느 게 더 불이 잘 붙는가가 궁금했고, 휘발유에 절인 스티로폴은 결국 호프집 전체를 태웠다. 급하면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되겠지만, 쇠창살이 설치된 그 창문으로는 누구 하나 나갈 수 없었다. 호프집 문으로 애들을 내보냈다면? 하지만 하루 매상을 날리고 싶지 않았던 주인은 문을 닫아버렸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숨져갔다. 백화점이 위험하다는 보고에도 5억원에 달하는 하루 매출을 날리고 싶지 않았던 이준 회장은 위험징후를 무시했고, 그의 고집은 결국 한국 재해사상 최악의 참사를 빚었다.
아파트의 옥상문은 대개 잠겨있다. 불이 나면 엘리베이터가 중단되며, 고층에 사는 주민들은 천상 옥상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잠궈놓는 걸까. 경찰에서 잠궈두라고 하니까. 괴기영화에도 나오는 것처럼 옥상은 악의 온상이다. 거기서 청소년들은 마약을 하고, 삶을 비관한 사람들은 옥상에서 투신한다. 그게 귀찮아서 옥상문을 잠군 결과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했다. 성남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났을 때, 어른 하나가 애들 아홉명을 인솔해 옥상까지 무사히 갔다. 하지만 그는 옥상문을 열지 못했고, 아이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죽었다. 왜 문을 잠궜냐고 묻자 경비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은 잠그라고 하고, 소방관은 열어놓으라고 한다. 하지만 소방관은 며칠 전에 왔다갔으니 당분간 안오겠다 싶었다"
이 멘트가 TV 뉴스에 나오자 경찰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상식적이라면 '소방관 측과 잘 협조해서 생산적인 결론을 내자'가 되어야 할 테지만, 우리 경찰은 역시 달랐다. 높은 분은 이렇게 말했단다.
"이제부터 소방관 애들 비리를 잡아내라. 아무리 사소한 것, 하다못해 담배 하나 얻어 핀 거라도 모조리 적발해서 잡아들여라!"
그래서 우리나라 아파트의 옥상문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위험으로 가득찬 사회니만큼 어딜 다닐 때 방화관리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과 다니는 게 좋다. 그런 사람이 주위에 없다면? 별 수 없다.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챙기는 수밖에. 어느 곳에 가든지 비상구와 소화기의 위치를 살펴보자. 그리고 화재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일분만 상상해보자.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만의 하나 그런 일이 있다면 당신은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