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지난주인가, 친구들 모임에 다른 약속이 있어서 나가지 못했다. 미녀 때문에 친구를 버렸다는 비난을 듣긴 했지만, 사실 안나가서 다행이다 싶다. 그들은 또 단란한 곳에 갔으며, 지금쯤은 총액이 얼마니 넌 얼마를 내라, 이런 메일이 오가고 있을 거니까.
취미라는 건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취미가 반사회적인 것이 아닌 한 존중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친구간이라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예컨대 골프를 치지 않는 나를 필드로 내몰 수는 없는 일이며, 술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강제로 술을 먹인다면 친구라 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에 있어서는 그런 게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젊은 시절부터 난 단란한 곳을 싫어했다. 그땐 여권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비싼 가격과 시끄럽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싫어했던 것 같다. 잠시나마 단란한 곳을 좋아할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난 그런 곳에 가는 게 너무도 싫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수다였지, 여자를 끼고 노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 데 가면 난 부지런히 술만 축내다 결국 쓰러져 자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애들이 그런 곳을 좋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 집에 가버리거나, 내가 원하는 곳에 가자고 주장하는 등 나름대로 저항을 안해본 건 아니지만, 친구들은 언제나 요지부동이었다.
친구들이 돈이 많아서 단란하게 노는 비용을 모두 내준다면 얘기가 다른다. 그러나 그런 것도 아니다. 사업을 하다가 잘 안되서 그만두려고 하는 친구, 검사라서 늘 돈이 없다고 징징거리는 친구, 잘나가다가 순간의 실수로 망하는 바람에 이사갈 비용조차 없는 친구, 회사원인 친구.... 이런 사람들에게 하룻밤, 아니 겨우 두어시간을 노는 댓가로 지불되는 술값은 너무도 크다. 다들 애가 한둘은 있어, 교육비로 쓰는 돈도 만만치 않을 텐데. 미국서 친구가 놀러왔던 5월에 우리는 그런 곳을 너무 자주 갔고, 그래서 6월에는 웬만한 사람의 월급을 오버하는 돈을 친구 계좌로 부쳐야 했다. 그중 한번은 단란한 곳을 나와서 3차로 또 단란한 곳을 가기까지 했으니, 정도가 심각하다. 그쯤 했으면 반성할 만도 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단란한 곳 타령이라니 정말 구제불능이지 않는가.
그래서 난 그들로부터 전화가 오면 무섭기 짝이없다. 2차로 어디 갈지 뻔하니까, 그리고 그 돈을 보내려면 허리가 휠 것을 아니까. 이런 경우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다수를 바꿀 수는 없으니, 언제까지나 불만스런 얼굴로 그들을 따라 음침한 곳으로 따라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1차만 하고 그냥 집에 가버려야 하나. 나의 선택은 물론 후자지만, 그 경우 그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단란한 곳에 안가기로 한다해도, 나나 그 친구들이나 불편하기 짝이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끼리는 이미 만나서 할 얘기를 상실해, 여자가 없이는 놀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번 모임은 용케 피했지만, 다음번마저 안가면 애들이 눈치를 챌거다. 내가 일부러 안나간다는 것을. 이렇게 전화받는 것에 부담을 느낄 정도라면, 내가 일방적으로 희생해 가면서 계속 우정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그들과 난 헤어지기에 너무 오래 사귀었고, 지금까지 같이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남은 여생을 호형호제로 지내야 한다. 그게 문제다. 그들과 헤어지지 못하는 이상, 내 선택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 생각만 하면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 세상 단란한 곳들이 전부다 문을 닫는다면 좋겠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