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휴대폰을 갖고 싶어하셨다. 사드리겠다고 말씀드리자 "내가 무슨 필요가 있냐"고 펄쩍 뛰시지만, 내 휴대폰을 물끄러미 보고 계신 걸 보면 틀림없이 그랬다. 할머니를 설득했다. "휴대폰은 우리가 편하려고 사는 거지, 할머니를 위한 게 아니어요. 할머니 밖에 계실 때 우리가 할머니랑 연락을 어떻게 해요?"
그 설득이 먹혀서 할머니는 내 제안을 수락하셨고, 난 KTF에서 나온, 기본료가 아주 싼 '효도 휴대폰'을 사드렸다. 엘모 회사에서 나온, 그리 좋지 않은 전화기건만, 할머니는 그 전화기를 아주 이뻐하셨고, 주머니를 만들어 싸가지고 다니실 정도였다.

하지만 거진 2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는 전화기 사용법을 모르신다. 내 전화를 1번, 엄마 전화를 2번에 저장해 드렸건만, 내게 휴대폰으로 전화건 적이 아직 한번도 없다. 오늘도 그러신다. "민아, 통화 누르고 번호 누르는 거지? 엥? 어째 안걸린다?"
할머니는 이 질문을 100번도 더 하셨다. 그때마다 난 "그게 아니구, 번호를 먼저 누르고 통화를 누르셔야 되요!"라고 대답을 했다. '번호-->통화'가 맞는데, 그 100번의 질문이 왜 모두 '통화 누르고 번호 누르는 거냐?'일까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전화를 잘 받으시는 것도 아니다. 같이 있을 때 테스트 차원에서 거는 건 받으시지만, 실전에서 할머니는 단 한번도 내 전화를 받은 적이 없으시다. 귀가 어두운 탓이기도 하고-할머니는 보청기를 끼신다-그 전화기의 벨소리가 음량을 최대한 높여도 그리 크지 않은 탓도 있다. 게다가 엘모 회사의 전화기라 그런지 폴더를 열면 바로 수신이 되는 게 아니라, 귀찮게시리 통화 버튼을 눌러야 수신이 된다. 그래서 할머니는 늘 물으신다. "받는 건 그냥 받으면 되냐?"
난 늘 같은 대답을 한다. "아니죠, 통화 버튼을 눌러야죠"
살아생전 뭔가를 배우는 걸 좋아하셨던 할머니인데, 그래서 내가 손도 못대는 기계들을 하등 도움이 안되는 설명서를 보시면서 조립하셨던 할머니인데, 이젠 너무 나이가 드셔 버렸나보다. 십년만 젊으셨다면 문자 메시지도 보기좋게 날리셨을 텐데 말이다.

결국 할머니가 하시는 건 충전밖에 없다. 전화를 거의 안쓰시면서도 맨날 충전은 full로 해 놓으시는 우리 할머니. 내게 날라오는 전화요금은 언제나 기본료에서 몇십원-몇백원이 아니라-이 더 나올 뿐이다. 내가 요금을 내니까 일부러 안쓰시기도 하겠지만, 사용법을 모르는 탓도 있을 거다. 기본료가 자동이체되는 것이 나로선 아까울 수밖에. 그래서 "그냥 해지하는 게 어떠냐"고 말씀드리고픈 마음이 생길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할머니는 그 휴대폰을 너무나 사랑하니까. 난 할머니께 전화기를 사드린 게 아니라, 장식품을 하나 사드린 거라고 생각하자. 평생 할머니한테 받은 걸 생각하면 일년에 십여만원 내는 게 뭐가 아깝겠는가.

오늘 보니 할머니가 머리 파마를 하셨다. 젊어 보인다고 했더니 밝게 웃으신다. 하지만 할머니의 피부는 너무도 쪼글쪼글하고, 나랑 다니면 "어머님이냐"는 소리를 들었던 예전 모습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별을 하고, 이별 후에는 잘해드릴 방법이 없으니 살아생전 후회없이 잘해드려야 한다. 하지만 난 오늘도 할머니한테 별것도 아닌 이유로-전에 선본 여자랑 왜 결혼을 안하냐고 하기에..-큰소리-'얼굴이 TV만한데 어떻게 결혼을 해!'라며-를 냈다. 지금은 후회를 하지만, 또 그런 상황이 닥치면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맘은 잘해드리고 싶지만, 실제로는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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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4-07-05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지금 말씀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말씀이 통하는 멋진 할머니와 선한 마태우스님~~^^

starrysky 2004-07-05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할아버지도 선물해 드린 휴대폰을 절대 안 들고 다니셔서 그야말로 무용지물입니다. 그런 쪼그만 기계 나부랭이 들고 다니는 게 영 귀찮으신가 봐요. 엄마랑 저랑 아무리 "제발 좀 들고 다니세요. 걱정되잖아요. 앵앵앵앵" 해도 소용없습니다. -_-
그리고 할머님한테 왜 큰소리는 내고 그러세요!!! 전 즈이 할머니의 어마어마한 잔소리에도 늘 생글생글 웃으며 느무느무 잘합니다. (순전히 제 생각일 뿐이고 또 실제로는 동생들이 저보다 훨씬 더 잘하기 때문에 별로 빛은 못 보지만..) 어쨌든, 절 좀 본받으세욧!

하얀마녀 2004-07-05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훌쩍 ㅠ.,ㅠ

tarsta 2004-07-05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저는 조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거든요. 할머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에.. 그나저나 이시간에도 사람이 많이 계시군요.:)

마냐 2004-07-05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벤지만 사랑하는게 아니라, 어머니도 할머니도 무진장 챙기십니다. 아닌척 하시면서도 말임다....그분들에게야 효도의 최고봉이 따로 있겠지만...^^;;;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panda78 2004-07-05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마태님은 어찌나 마음이 따뜻하신지..
그런데요, ㅋㅋ 정말 얼굴이 TV만 했어요? ^^;;

호랑녀 2004-07-05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도의 최고봉이 따로 있겠지만...
이 말이 딱입니다요, 마냐님 ㅋㅋ
우리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이렇게 따뜻하게 느꼈음 좋겠네요. 저는 그러지 못했지만요.

미완성 2004-07-05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답습니다............

바람꽃 2004-07-0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
정말 그리운 호칭입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 모습이 비슷비슷해지나 봅니다.
키 작고 동그란 얼굴에 쪼쪼글한 모습들이.
문득문득 할머니가 정말 보고 싶습니다.

*^^*에너 2004-07-0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시님의 글에서 따뜻함이 느껴져요. *^^*
병원에 계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지네요. ㅡㅡ

stella.K 2004-07-0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마태님이 사주셨다는 휴대폰 애지중지 하셔서 주머니 만들어 차고 다니시는 할머니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네요. 저의 돌아가신 친할머니는 한번 일러드리는 건 좀체로 잊지 않으시는 깐깐한 분이셨죠. 그에 비해 외할머니는 마태님 할머님 같으셨어요. 잘 잊으셨죠. 그 할머니 지금은 미국에서 몸이 많이 안 좋으세요. 아마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정말 예전같이 건강하셔서 100번이라도 같은 걸 물어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할머님한테 잘 해드리세요. 지금도 물론 잘 하시겠지만요.^^

ceylontea 2004-07-0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할머니 계셔서 너무 좋으시겠어요...
저는 친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는 기억에도 없고.. 외할머니는 저 초등학교 다닐 때 돌아가셨답니다.. 너무 부러워요.. 지금도 잘해드리고 계씨지만.. 앞으로도 쭉..잘해드리세요. ^^

2004-07-05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YLA 2004-07-05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마음이 따뜻해서 감동먹었어요..ㅠ_ㅡ 죽음이 슬픈건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줄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던데..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기가 힘든거 같아요.짜증내고 신경질 내는 나의 모습에. 한번씩 놀라기도..;;

부리 2004-07-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없어서... 답글은 나중에 달겠습니다. 근데 마태를 너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 한마디 안할 수 없네요. 그인간 어제 테니스 치고 땀 왕창 흘려놓고선 목욕도 안하고 잔 놈입니다. 이거 진짭니다! 밤에 샤워 안한 걸 알아차리고 이러더군요. "어쩐지 머리가 가렵더라"

stella.K 2004-07-05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봤더니 마태님 지저분한 분이셨군요. 부리님 말씀대로 너무 좋아하면 안 되겠군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흐흐.

플라시보 2004-07-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할머님 사랑에 잔잔한 감동을 받다가 부리님의 테니스와 샤워 운운하는 얘길 들으니 하핫. 한 사람을 가지고 두가지 버전의 상상을 하게 되는군요^^ (여기서부터 부리님에게는 안보임 : 님. 부리의 모가지를 트심이 님의 인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2004-07-06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월의꿈 2004-07-07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입니다. 저도 할머니가 정정하시죠.
항상 잘해드리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사람이기도 하지만, 같은집에 살아서 소중함을 몰라서일까.. 아니면 한창 머리가 크는 나이이니 만큼 더욱 할머니의 생각을 제가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이 일어서일지도 모르겠어요...
다시한번 할머니께 잘해드리자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