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을 쓰고 있으면 컴퓨터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진다. 내가 잘못 쓴 말을 자기 맘대로 고쳐 버릴 때가 그렇다. 뭐, 그거야 좋은 기능일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원래 쓰려던 표현을 바꿔 버리는 거다. 예컨대 '비참하게시리' 라는 말을 쓰려고 하면, '비참하게끔'으로 바꾸어 버린다. '시리'와 '끔'이 어떻게 같은 뜻이라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다시 원래대로 고치려고 하면 계속 고집을 부린다. 지금이야 "시키면 시킨대로 해!"라는 게 통하지만, 녀석의 고집이 더 세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한글97이라 그런가?
난 워드를 400타쯤 친다. 그리 빨리 치는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먹고 살 만하다. 하지만 더 빨리 치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녀'라는 말을 쓰려다 순간적으로 잘못되면 '그년'이 되어 버린다. 우리 사회에서 '그년'은 '그놈'과는 차원이 다른 말이다. 내가 들은 얘기로 이런 게 있다. 채팅을 하는데, 여자 하나와 남자 셋이 있었단다. 근데 얘가 워낙 배가 고파서, "저녁 먹었어요?"라고 썼는데 그게 잘못되어 "저년 먹었어요"라고 되어 버렸단다. 물론 그는 강퇴당했다... 이름에 '조'와 '시옷'이 이어지는 경우도 조심해야 한다. 조순형이라는 이름을 빨리 치려다 '시옷'을 좀 세게 누르면 '좃순형'이 되니까.
구어체로 쓰다가 실수를 하는 수도 있다. 인터넷에선 "마태우습니다" "유멉니다"라는 구어체의 말을 자연스럽게 쓰지 않는가. 하지만 그것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조크'란 단어 때문이다. 어설픈 유머를 구사한 뒤 "조큽니다"라고 썼더니 아무래도 찝찝하다. 그래서 '조크입니다'로 바꿨다. 미리 헤아려 바꾼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그 서재 주인장이 여자분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