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나쁘면 사는 게 좀 불편하다. 렌즈나 라식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 눈으로 보는것만큼 좋지는 않을게다. 귀가 안들리는 것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나이가 드신 우리 할머니가 귀가 잘 안들리니 주위 사람까지 답답할 지경이다. 촉각이 없다면? 못 같은 데 찔리거나 불에 데도 반응이 느릴 테니, 여기저기 다치기 십상이다. 인간의 감각은 그러니까 모두 다 사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들이다.

하지만 후각은 예외다. 냄새를 아주 잘 맡는다면 유리한 점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한 게 더 많다. 횟집에 가면 생선 비린내가 나서 싫고, 삼겹살을 먹으면 냄새가 옷에 베어 싫다. 냄새가 없는 음식이 없으니 먹는 데 까다롭게 되고, 땀냄새처럼 사람의 체취도 유독 잘 맡으니 사람과 사귀는 데도 까탈스럽기 쉽다. 고교 때 알러지성 비염에 걸린 이래, 난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 며칠 전처럼 아주 독한 방귀를 뀌면 모를까, 웬만한 냄새는 느껴지지도 않는다. 내가 테니스를 치고 샤워를 안한 채 잘 수 있는 것도 코가 무뎌서일 것이다. 그러니 닭, 돼지, 소, 해물탕 등 못먹는 게 없고, 그래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살만 찐다. 하지만 불편한 것도 있다. 실험에 쓰는 각종 시약의 냄새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건 큰 약점이다. 포르말린 냄새를 못맡을 정도라, 식염수를 부어야 할 것을 포르말린을 붓는, 믿기 어려운 실수를 한 적도 있다.

우리 집에는 홍혜걸이 선전하는 헬리코박터 윌이 두 개씩 배달되는데, 비싸서 그런지 엄마는 그걸 끔찍이 아낀다. 예전에 우리 집에 삼촌이 왔기에 내가 윌을 하나 갔다 줬더니, 엄마가 황급히 달려나와 그걸 뺐는다. "이건 민이 거거든. 넌 우유 먹어!" 병 밑에 한방울만 남아도 핥아서 다 먹으라고 호통을 치는 정도니, 그럴 법도 하다.

오늘 아침, 간만에 밥을 먹었더니 엄마가 윌 하나를 내민다. 좀 먹다보니 덩어리가 져있다. "엄마, 왜 덩어리가 있지?"
엄마의 말씀, "원래 그래!"
그래서 한모금을 더 먹다가, 아무래도 이상해 엄마한테 가져갔다. 엄마는 냄새를 맡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날짜를 확인한다. "2003년 10월 24일???? 아이고, 내 아들 큰일났네!!!"
그러더니 내게 책임을 돌리려 하신다. "냄새가 이렇게 나는데 너 몰랐냐?"
냄새를 못맡는데 뭘 어떻게 하겠는가. 엄마는 그로부터 한 십분간 속이 상하셨고, 난 이렇게 엄마를 위로했다.
"설사 몇 번 하고 배좀 아프면 되죠. 너무 걱정 마세요. 죽기야 하겠어요?"
냄새에 둔감한 게 유리할 때가 많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처지는 후각을 치밀한 준비로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는 날짜를 반드시 확인할 생각이다. 배가 슬슬 아파온다. 윌 때문일까, 아니면 심리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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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5-2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건강하셔야 서재평정도 이루실 것 아닙니까.^^ 의기소침한 님에게 기쁜 소식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아까 방금 제 즐겨찾기 숫자가 하나 줄었습니다. -.-

진/우맘 2004-05-2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쓰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하는데도....쩝, 영 둔감해 지지가 않는.

작은위로 2004-05-25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윌때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2003년꺼라니요!!
정말 냄새를 잘 맡지 못하면 힘든거군요. 힘내세요..
다음부터는 꼭! 날짜 확인하시구요!

마태우스 2004-05-2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위로님/큰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진우맘님/님이 잘되는 게 전 좋습니다. 그런데 한명 줄어든 게 저라고 의심하시는 건 아니죠? 제가 말로만 그렇지, 님을 얼마나 좋아한다구요^^

메시지 2004-05-25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오늘 덩어리진 우유를 마셨는데... 비몽사몽간이라 냄새도 못맡고 벌컥 마셨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병원으로 가라고 의료보험증을 찾으려는 아내에게 괜찮다며 출근했죠. 그리고는 잊고 있었는데 마태우스님 글을 보니까 다시 생각이 나고, 괜히 속이 미슥미슥... 책임지셔요.

파란여우 2004-05-2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비염처방전좀 내려 주세요. 닥터 마태님~

플라시보 2004-05-2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히려 냄새에 민감한 편이라서 괴롭습니다. 뭐든 냄새가 아주 약간만 나도 잘 못먹고 지내는 환경에서도 조금만 냄새가 나면 (심지어 제 방에 다른 사람이 왔다가 가면 그 체취 때문에 골이 빠개질 지경) 못견딥니다. 그래서 늘 방향제랑 함께 살죠. 그나마 그 냄새가 맡을 만 하니까요. 다른 냄새들은 정말 참을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어떨때는 님처럼 무딘 코가 부럽습니다.

머털이 2004-05-25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참, 이 아이디는 예전 독일 축구선수 아닌가요?) 그 정도로 냄새를 못 맡으면 맛도 잘 못 느낄 것 같은데요. 맛있다! 하고 느껴본 적 있으세요?

진/우맘 2004-05-2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구선수이기도 하지만, <마침내 태어난 우리들의 수퍼스타>의 약자입니다.
그리고, 마태님 입에는 맛 없는 게 없습니다.
----공식 대변인 진/우맘.^^

sweetmagic 2004-05-2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전 무슨 냄새건 향나는 건 다 좋습니다. 후각에도 민감하구요...향수도 미니어처빼고 50개는 되구요. 오죽하면 아로마 오일까지 사다모으다 이젠 아로마테라피까지 배운다니깐요...(파란 여우님 비염에 좋은 오일 많은데 ㅋㅋㅋ) 아로마테라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께서 제 후각은 철학적이다라고까지 얘기하시던걸요....딱, 한가지 정신 똑 바로 차려야 할 건 제가 좋아라 하는 향수를 뿌린 남자, 게다가 그 체취가 그 향수와 딱 맞아 버리면,,, 그 거부할수 없는 매력에..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고 싶어집니다. 으흑.....
다행히 자기 체취에 잘 맞는 향수를 쓰는 남자도 별로 없고제가 좋아하는 향수에 어울리는 체취를 가진 사람도 별로 없더군요...아까워....

*^^*에너 2004-05-25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는 민감하고 눈은 둔감합니다.
시력이 엄청 나빠서리 밤에 안경없이 다니다 구른 적도 있습니다.
코와 눈이 적당하게 이루어졌으면 조으련만....

갈대 2004-05-25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눈도 나쁘고 후각도 둔감합니다.
촉각은 예민한 듯...--;

마태우스 2004-05-25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촉각이 예민하면...좋은 점도 있답니다^^ <--너무 야한가?
*^^*에너님/코가 예민하면 날씬하기 마련입니다. 님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sweetmagic님/님은 후각이 예민하실 것으로 원래부터 생각했습니다. 설마, 진짜로 주저앉은 적은 없지요?>
진우맘님/아닙니다! 저 과일 못먹습니다!
메시지님/저도 배가 좀 아픈데, 병원에서 뵈요!
플라시보님/역시 미인은 다 후각이 예민하다니까!
머털이님/좋은 질문입니다. 제가사실 맛도 잘 못느낍니다. 뭐든지 양으로 먹지요^^

마태우스 2004-05-25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님에게만 따로 공간을 마련한 것은 님에 대한 예우입니다.(사실은 까먹어서...)
비염 진단을 내리면 좋은 게 아닙니다. 어차피 치료가 안되기 때문에...요즘 비염 환자가 너무너무 많고, 이비인후과가 그래서 잘됩니다.

아영엄마 2004-05-2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아끼셨으면 일곱달을 묵히셨을까! 그런데 먹을거는 아끼면 똥된다는 믿을만한 명언이 있다죠 아마~ 탈은 안 나셔야 하는데...

sweetmagic 2004-05-25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마태우스 님 오늘 똥 드셨네요~~~ ㅋㅋㅋ

sooninara 2004-05-2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내 방귀냄새는 안나는데..남편 방귀 냄새는 귀신 같이 맡을까요????
울아들도 비염이 심한데..걱정입니다..

LAYLA 2004-05-25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스윗매직님 넘 멋지신걸요_ 철학적 후각의 소유자라니♡ ㅎㅎ 마태우스님이 갑자기 홍혜걸이라고 해서 무슨 뮤지컬 배우인줄 알앗다는...- _ -;;; 의학잡지 기자님 맞으시죠? 자막에서 읽은 기억이 ㅎㅎ

연우주 2004-05-26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비염이 있으셨군요.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