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5월 17일(월)
누구와?: 지도학생들과
마신 양: 엄청 먹고 필름 끊겼다...
부제: 바지
낮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민아, 너 바지 하나 사줄까?"
내 대답, "아네요, 엄마. 지금 입는 거 가지고 몇 달은 더 버틸 수 있어요"
엄마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일과가 끝나고 지도학생들을 만나러 갔다. 스승의 날이라 선물을 준비했단다. 그러지 말라고, 그냥 밥이나 먹자고 해도 영 말을 안듣는다. 작년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XO라는 라벨이 붙은, 이름은 잘 모르겠는 양주를 선물한다. 큼지막한 꽃다발까지. 이 녀석들을 위해서라도 몇 년간은 잘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1차에선 고기 15인분에 소주를 먹고, 2차로 맛있는 중국집에 갔다 (우리가 인간일까?). 요리를 시켜놓고 양주를 마셨다. 조금 마시니 기분이 좋아져, 폭탄주를 돌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배운 도미노 폭탄주. 3차로 맥주집에 가서 또다시 폭탄주를 마셨는데, 거기서부턴 기억이 전혀 안난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왔을 때 정신이 들었는데, 희한하게도 가방과 꽃다발은 손에 잘 들고 있다.
술이 덜깨 몸을 잘 가누지 못하겠는데 엄마가 날 부르신다.
"민아! 바지 샀으니까 입어봐!"
기어이 사셨구나. 난 대충 바지를 입고 호크를 채웠다. 숨이 좀 막혀왔다.
"엄마, 좀 작은데? 큰걸로 바꾸면 안돼요?"
엄마의 말씀, "이게 88인데 작단 말야? 아이고! 술을 그리 쳐먹더니 돼지가 됐구나!"
아침에도 난 엄마한테 시달렸다.
'비만 크리닉 가야지, 너 큰일났다"
"니 배가 보통 배가 아니여. 체지방 측정하는 곳이 있다는데, 같이가자"
"뚱뚱하면 일찍 죽는다. 그 바지가 맞도록 살을 빼라"
피, 누가 배나온 거 모르나? 그리고 내가 살빼기 싫어서 안빼나? 언제나 그생각 뿐인데, 그래서 러닝머신도 그리 열심히 하는데. 뚱뚱한 것에 대한 자각이 있는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지를 사는 걸 언제부터 꺼렸는지 모르겠다. 사면 좋지만, 허리 사이즈를 말하는 게 괴로워서 사기가 싫었다. 옷가게에 가서 조그맣게 속삭였다. "34 주세요---"
흠짓 놀라 날 쳐다보는 점원, 옷을 찾으러 들어갔다 나오면서 큰소리로 외친다.
"삼십사 찾으신 분!!"
아니 삼십사가 뭐 자랑이라고 큰소리로 떠드는가. 그 안에 있던 사람은 물론, 지나가던 사람들도 날 쳐다본다. '인간이냐?'는 표정으로. 그 점원은 내가 귓속말로 속삭인 속내를 왜 몰라주는 걸까. 그러니 내가 바지사는 게 싫지...
러닝머신을 한지 일년이 다되어가는데, 살은 빠질 줄 모르고 점점 늘어만 간다. 얼마전에 만난 친구 부인들이 날더러 놀랐단다. 몸이 너무 났다나? 러닝머신만 믿다가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나도 엊그제 TV에 나온 것처럼 위를 잘라내야 할지도...아,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