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오버 더 플라시보'는 가능한가
부제: 한 서재폐인의 플라시보님에 대한 오마쥬
언젠가 가졌던 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그 사람이 방문자 1만명도 가장 먼저 넘었지 아마"
"그 사람이 즐겨찾기 숫자가 가장 많을걸?"
여기서 말하는 '그'는 플라시보님이다. 알라딘에 둥지를 틀고나서 일관되게 바란 것은 내 서재가 플라시보님의 그것에 비해 잘나가는 서재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제법 사람이 많이 찾는 서재가 되었으니 초창기의 꿈은 이룬 셈이지만, 플라시보님이 있는 한 난 완전한 평정을 한 게 아니었다. 그는 글을 너무 잘 썼다. 물 흐르듯 읽히는 것으로 보아, 쓸 때도 일필휘지로 썼음이 분명한 그 글들을 읽으며 난 언제나 전율했다. "왜 플라시보님한테는 저렇게 글로 쓸만한 소재가 자꾸 생기는 거야?"라고 탄식하기도 했지만, 난 안다. 그가 유독 다이나믹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이든 그의 손에 들어가면 멋진 글로 탄생한다는 걸. 그러니까 그의 뛰어난 점은 일상에서 소재를 발굴하고, 그것을 멋지게 포장해어 글로 올린다는 것일게다.
언제부터인가 난 매일같이 www.aladin.co.kr/rank 에 들어가 그와 나의 성적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하루 방문객 숫자다.
날짜 5/11 5/12 5/13 5/14 5/15 5/16
나 151 129 141 137 98 78
플라시보 139 131 145 138 119 85
즐겨찾기는 다음과 같다.
날짜 5/1 5/8 5/12 5/15
나 232 244 250 252
플라시보 250 254 256 262
방문객이나 즐겨찾기 숫자나, 난 아직도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 5/11 이후 내가 계속 뒤지는 건, 알라딘 초기화면에서 내 서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순전 그 덕분이다). 글솜씨로만 겨뤄도 충분히 힘든 판에, 그는 여자에, 미모다. 인터넷상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2.5배 정도 유리하다는 카이레의 법칙을 감안하면, 내가 이정도 싸우는 것도 기적이라고 할만하다. 게다가 그는 이따금씩 자신의 사진을 올려 나와의 격차를 벌인다. 최근만 해도 화장실에서 찍은 멋진 사진을 올렸는데, 그날 방문객 숫자는 160을 가뿐히 넘겼다. 그 글에는 코멘트가 무려 15개나 달렸는데, 대표적인 거 하나만 소개한다.
[매모: 오오오... 아르테미스가 초승달에 자기모습 비추어 단장하는듯 합니다.]
내가 넘고자 하는 상대는 이런 사람이다. 그러니 어찌 겁나지 않겠는가. 인터넷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나지만, 이번 싸움은 가장 어려운 것이 될 법하다.

그의 글은 거침이 없다. 자기검열을 해서 최대한 좋은 이미지로만 남으려고 하는 나로서는 그의 글이 이해가 안갈 때가 많다. 다음은 그가 썼던 <이런 변이 있나>의 한 대목이다.
[내가 최대한 내 몸에서 최대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기능이 있다면 바로 잘 먹고 잘 싼다는 것이다. 일단 나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녹차 한잔 들이킨 다음...화장실로 직행한다. 그리고...거대한 변을 생산해 낸다]
이것뿐이 아니다. '화장실'을 넣고 검색을 하면, 총 21편의 페이퍼가 발견되는데, 이것은 2위인 검은비의 '11편'보다 열편이나 많은 숫자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이런 면을 매력으로 생각하나보다. 그의 팬인 곰두리님의 말이다. "전 그녀의 박력이 좋습니다. 읽다보면 속이 후련해지거든요"
나도 한번 그렇게 해볼까 하고 '팬티의 추억'이란 되지도 않는 글을 올렸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대표적인 반응이다.
[*^^*제너: 으...드러!]
역시 아무거나 따라하면 안되는 법이다.
일상의 일들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뿐 아니라, 'So Good'과 'So beautiful'이란 코너에서는 팬시하고 이쁜 물건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전구 모양의 귀걸이, 봉랍세트 등 거기 소개되는 갖은 물건들은 전시와 동시에 판매량이 급증해 '플라시보 효과'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 그는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음식 조리법을 소개하는데, 독창적이면서도 맛이 있어 인기가 높다. 얼마전 소개된 와인 샤베트는 어찌나 인기가 높았는지, 매장의 와인이 동이 날 지경이었단다.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정도로 리뷰도 잘 쓰지만, 내가 보는 그의 주특기는 영화다. 영화의 핵심을 짚어내며 제대로 된 비평을 해대는 걸 보면, 영화판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러니까 그의 서재는 각종 문화영역이 모두 망라되어 있는 종합문화박물관이다.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인기가 높은 것처럼, 그의 서재가 베스트서재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술일기와 시덥지않은 팬티 얘기만으로 '오버 더 플라시보'를 한다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그래서 난 캐치프레이즈를 바꿨다. '오버 더 플라시보'가 아닌, '언더 더 플라시보'로. 그를 넘어서려고 무리하기보다, 그의 그늘 안에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히기로 했다. 혹시 그를 넘어서려고 흑심을 품는 분이 아직도 있다면, 당장 포기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분들을 설득한 뒤 같이 손을 잡고 이런 노래를 부르리라.
"위 아 더 플라시보!"
늘 좋은 글로 알라딘을 빛내주시는 플라시보님께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