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싸웠다.
지난 토요일 밤이니, 이제 이틀이 지났다.
"부부싸움을 하면 남자가 비는 게 맞다"고 강의 때마다 얘기했던 나지만,
막상 내 문제가 되니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거기다 시댁 문제인지라 내가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제 아침엔 7시도 되기 전에 학교로 가버렸다.
어차피 할일도 많은데 잘됐다 싶었다.
문제는 식사였다.
집에 있었다면 아내가 차려주는 정성어린 밥을 먹을텐데,
난 오후 한시가 넘어 학교앞의 허름한 식당에서
내장탕에 소주 한병을 비웠다.
다시금 들어가 일을 했고, 영등포역에 내렸을 때가 8시 10분 경이었다.
집에 가기가 싫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하녀>를 혼자 봤고,
11시 조금 전에 편의점에서 땅콩샌드 두개를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아내는, 당연한 얘기지만, 여전히 화가 나 있었고
애들 둘만 날 반겼다.
땅콩샌드 두개를 뜯어먹으며 아내가 평소 차려주던 밥을 떠올렸다.
오늘 낮은 우리과 식구들과 같이 먹었다.
"제가 어제 부실하게 먹어서 배가 고프네요. 하하" 이래가면서.
택시를 타고 나가서 푸짐한 점심을 먹었더니 살 것 같았다.
문제는 저녁. 8시 반쯤 퇴근을 했는데, 그때 난 저녁을 먹지 않은 상태였다.
혹시나 아내가 "싸울 땐 싸우더라도 저녁은 먹어라"라며
맛있는 저녁을 차려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집에 가니 아내는 통화중이었고, 먹을만한 건 없었다.
마감을 몇시간 안남긴 경향신문 글을 쓰다가,
도저히 배가 고파 안되겠다 싶어서 지갑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에서 왕뚜껑과 참치캔, 소주, 햇반 한개를 샀다.
"6600원입니다."
어이가 없었다. 뭐가 이렇게 비싸담?
진수성찬을 먹겠단 것도 아니고, 라면에 밥말아먹는 건데 말이다.
라면을 먹으며 소주 한병을 참치와 더불어 까고 있는데
둘째 녀석이 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녀석 같으니.
그 녀석에게 참치캔을 반이나 빼앗겼다.
그래도 6천원이 넘는 식사를 했는데, 왜 이렇게 배가 고픈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건 아내와 냉전 중이기 때문일게다.
지금이라도 "여봉~~" 하면서 잘못을 구하고 싶지만,
내 자존심이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강의 때마다 "자존심이 밥먹여 주냐"고 하던 생각이 난다.
맞다. 자존심은 절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굶기는 게 바로 자존심일지니.
내일은 또 어떻게 지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아내에게 빌지 않는다면 내일 저녁도 차려주지 않을테고,
난 아내가 해주는 것보다 훨씬 못한 음식을
아내가 쓰는 비용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한다.
남자 여러분, 아내는 요술장이입니다.
아내에게 잘합시다.
근데...지금 내가 이 말을 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밥과 햇반과 참치, 그리고 소주 한병을 깠지만
여전히 난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