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이사를 가게 됐다. 짐이라곤 옷과 책밖에 없는데, 역시나 천권이 넘는 책을 옮기는 게 좀 힘이 들었다. 책을 소장하고픈 욕심만 버린다면 이사를 몇 번 간들 뭐 그리 대수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난 책을 꽂아놓고 보는 걸 즐기는 놈인지라 묵묵히 책을 끈으로 묶어야 했다.
책을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저자를 가나다순으로 하는 방법도 있겠고, 출판사 가나다순으로 분류한 서점도 본 적이 있다. 내가 기존에 쓴 방법은 주제별 묶음이었는데, 책장이 워낙 부족해 이중삼중으로 겹쳐놓다보니 원하는 책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이번에 이사를 가는 김에 책장을 새로 맞췄고, 새 책장을 보면 다 그렇듯이 책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지 하는 야심찬 꿈을 꿨다. 저자를 한국과 외국으로 나누어 가나다순으로 꽂아볼까 하다가, 막상 책을 꽂을 때는 에라 모르겠다 하던대로 하자는 마음이 들어 다시금 주제별로 넣기 시작했다.
주제별 분류의 단점은 분류가 애매한 책이 나온다는 거다. 예컨대 바르뜨가 쓴 '사랑의 단상'은 철학책일까 에세이일까? 카뮈가 쓴 <시지프 신화>는? <가우디 임팩트>는 건축 책인가 추리 책인가? 또한 독립된 주제로 하기에 권수가 턱없이 적은 것도 있어서, 교육 관련 책은 열권도 안되어 독립된 섹션으로 하기 무엇하고, 신화 관련 책은 이윤기 씨와 김상봉 씨의 책을 합쳐봤자 다섯권이 안되는데-아, 카뮈 책을 신화 분야에 꽂으면 되겠구나! 글을 쓰면서 이게 생각나다니!-이런 것들을 '기타'로 분류해 한군데 꽂으면 너무 안일한 것 같고. 그래서 스포츠 책인 <피버피치>와 <MLB 카툰>과 만화책인 <아기공룡 둘리>가 같은 데 꽂히고, <창가의 토토>와 <공산당 선언>, 그리고 <숙명의 트라이앵글>이 한 섹션에 놓이게 되었다. 새로 책장을 사봤자 책을 꽂기 역부족인 건 마찬가지라 어쩔 수 없이 이중주차를 했는데, 분류의 애매함까지 더해졌으니 특정 책을 찾는 건 새 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매년 100권씩 책을 산다면, 그리고 내가 책을 소장하고픈 욕심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면, 20년이 지난 후 난 삼천권의 책을 거느리게 된다. 천권을 움직이는 데 든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삼천이란 숫자는 생각만으로도 힘이 빠지는 숫자다. 이사는 불가능할 것이며 특정 책을 찾는 건 아예 불가능하겠지. 이제부터 노력을 해야겠다. 책을 꽂아놓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다른 이에게 주는 것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얼마나 수양을 쌓아야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 내 나이 한참 전에도 책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옮길 때 트럭에다 책 2만권을 실었다고 한다.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중권 씨는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에 다 손때가 묻은 걸 보고 김대중 씨를 존경하게 되었다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일년에 100권이 고작인 나로서는 2만이란 숫자가 명왕성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