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소심하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굉장히 신경쓰고, 되도록 좋은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렇다는 거지, 찌질함이 만천하에 입증된 사람들에게까지 이미지를 관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난 참 무던하고, 그 무던함은 삶을 편하게 해준다.

오늘 쓴 리뷰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찌질한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썼더라면 <영화, 감독을 말하다>의 리뷰를 쓰는 게 아주 힘들었을 거다. 우선 난 이 책을 서평단을 신청해서 출판사로부터 받거나 저자와의 친분을 이용해 공짜로 받은 게 아니라 내가 돈을 주고 샀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영수증을 들이밀었을 것이고-지금 보니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카드로 그었구나-이 리뷰는 오직 알라딘에만 올릴 뿐 교봉이나 그래스물넷 같은 곳에 올리지 않을 거라는 서약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세계에 사는 찌질한 분들이 “저자랑 친하니까 주례사 리뷰를 쓴 거 아냐?”고 비난하는 게 무서워 별 다섯 개가 적정한 가치인 이 책의 별점을 깎아 네 개나 네 개 반 정도를 줬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내가 무던하다는 게 얼마나 큰 장점인가? 무던함의 장점은 비단 리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일전에 ‘승욱’이란 분이 자기 블로그에 중복리뷰 관련 글을 올렸을 때, 내가 그걸 무시하자는 글을 이곳에 쓰고 난 뒤 위서가를 비롯한 아해들이 날 열심히 욕한 거에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수 있었다. 안그래도 매주 월, 화, 목, 금 이렇게 4일간 강의를 해야 하는지라 시간도 없는데, 그런 댓글들에 상처받고 화내지 않아도 된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사실 난 글을 쓰고 난 뒤 그곳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는데, 친절한 지인이 캡쳐를 해줘서 승욱이란 분이 다른 이의 블로그에 쓴 댓글을 볼 수 있었다. 승욱이란 분의 중복리뷰 관련글에 누군가 익명으로 그렇게 살지 말라고 점잖게 충고를 해놨는데, 승욱이란 분은 그걸 내가 쓴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자유지만, 승욱이란 분은 친절하게도 다른 이의 블로그에까지 가서 내가 자기를 협박했다고 떠드셨다. 마태우스라고 박사까지 받은 의대교수인데 겁나게 인간적인 척 하지만 실상은 익명으로 협박이나 한다면서. 난 승욱이란 분의 중복리뷰 관련글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분이 사회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글을 썼다는 생각은 한다. 그렇다면 익명으로 충고한 사람이 나라는 확증이 있기 전에는 다른 사람 블로그에 가서 “마태우스가 익명으로 협박하고 다닌다!”는 따위의 소리는 하지 말아야지 않을까? 중복리뷰금지라는 겁나게 큰 정의를 실현하려다보니 기초적인 정의는 눈에 안들어오는 걸까? 승욱님, 다음부터 그런 얘기 하실 거면 ip 추적이라도 먼저 하세요. 제가 무던하니 망정이지 안그랬다면 억울하다고 난리쳤겠어요. 그리고 기초적인 정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외치는 사회정의는 별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답니다. 이상 님에게 아주 무던한 마태우스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