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주 전 날 호되게 앓아눕도록 한 놈의 정체는 바로 바이러스였다. 이건 내가 기생충을 전공해서 하는 소리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기생충과 달리 바이러스란 놈은 하등 쓸모가 없는, 그저 인간에게 해를 끼치자는 목적으로만 존재하는 듯하다. 주제를 컴퓨터 바이러스로 바꿔도 똑같은 말이 성립된다.
요즘 내가 컴퓨터에 뜸한 이유는 집의 컴퓨터가 맛이 갔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두 번을 싸그리 밀어버린-포맷하고 다시금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일-경험을 한 뒤 난 바이러스에 좀 강박적이 되었고, 거의 매일같이 바이러스 검사를 한다. 그것도 부족해 남들이 하라고 권해준 ‘디스크 조각모음’을 일주에 한번 정도 한다. 그런 노력은 어느 정도는 효과를 거뒀겠지만, 바이러스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2주 쯤 전부터 집에 있는 노트북은 수시로 다운이 되어 날 걱정스럽게 만들더니만 갈수록 그 빈도가 높아져 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다시 포맷을 해야겠다. 그때까진 글이 쓰고플 땐 PC방을 이용하는 수밖에.
학교에서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순전 바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일로 날 찾는 이가 갈수록 많아지고, 요즘엔 안하던 연구까지 하니 정말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이 없다. 연구 성과가 좋으면 보람이라도 있지, 그것도 아닌지라 마음이 더 우울하다. 남들처럼 연구비를 따서 하는 것도 아니고 술 마실 돈을 아껴가며 재료를 구입하는데, 결과가 안좋으니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주부터 학교 컴퓨터 바탕화면의 하드디스크를 누르면 이상하게 연결프로그램이 뜨기 시작했다. 즉 바탕화면에 있는 데이터를 찾는 게 훨씬 불편해져 버렸다. 안되겠다 싶어 나랑 친한 의공학 선생에게 부탁을 하니 친히 와서 컴퓨터를 봐주셨다. “아, 이거?” 하며 금방 고쳐주실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씀을 하신다.
“잉? 이런 건 처음 봤는데...”
한시간 반, 그 선생님은 그렇게 오랜 시간 내 방에 머물렀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네이버에서 내 컴퓨터의 증상을 클릭했더니 많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는 것.
[혹, 나와 같은 일을 격고 있는 분이 있을까 싶어. 이렇게 글을 남긴다.
하드디스크나 외장형 디스크, 또는 USB디스크를 내컴퓨터에서 클릭했을때,
연결프로그램이라고 나오는 현상은,
각 드라이브 루트에 있는, autorun.inf 파일때문에 그렇다. (숨김파일로 되어 있다.)
이 파일은 바이러스로 인해서 생겨난 파일이고,
지워도 지워도 다시 생긴다....]
날짜를 보니 올해 3월 30일, 세상에 나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바이러스인 모양이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컴퓨터 바이러스는 세상을 어둡게 할 목적으로 누군가가 만들어 유포하는 거라는데, 왜 그런 사악한 심보를 가진 사람이 생겨났는지 의문스럽다. 결국 선생님은 내 컴퓨터를 고쳐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쓸 수 있게는 해 주셨다.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감지덕지다. 어찌되었건 올해만 해도 벌써 세건-몸에 침입한 놈까지 포함해서-의 바이러스를 경험했다. 내 기억의 한계가 미치는 최근 5년간을 보자면 단연 최다라고 할 만한데, 이제는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연구하고 집에서 글쓰는 소박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데 왜 방해를 놓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