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왜 그러세요?”
아이스크림을 사려다 뭔가에 홀려 있던 난 조교의 말에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저기 좀 봐요.”
난 계산대 앞에 서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미인이지 않아요?”
“그러네요.”
큰 눈에 긴 생머리의 미녀, 난 출퇴근 길마다 병원 매점에 들러 뭔가를 샀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신라면.... 근무조가 틀려 다른 사람이 서 있을 때면 매점을 그냥 통과해 갈길을 갔다. 계산을 할 땐 꼭 옆에 있는 나이든 분에게 했는데, 그건 그녀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지도학생이 내 방으로 찾아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병원매점 가서 뭐 좀 먹죠?”
그는 의아해했다.
“그 먼데까지요? 학교 매점도 있는데.”
“새로 온 아가씨가 미인이거든요.”
내 대답에 그는 상황을 이해했다.
“당장 가요!”
미녀를 본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쁘긴 한데 좀 쌀쌀해 보이는데요.”
내 대답은 이랬다.
“나쁜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미녀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그녀와 딱 한번 말을 해봤다. 아이스크림을 내밀며 “얼마예요?”라고 물었던 것. 가격표에 다 써있는데 말이다. 그녀는 어여쁜 목소리로 “500원이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내 비밀을 들키고야 말았다. 어제, 동료 선생이 모친상을 당했다. 영안실은 대구였다. 다음날 아침 오리엔테이션 때문에 도고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에 안가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이 같이 가자고 꼬셨다. 넘어갔다. 은행에 가서 1200원의 수수료를 내고 돈을 찾았다. 그리고는 병원 매점에 들렀다. 팬티와 양말을 산 뒤 계산대로 가려다 당황했다. 그녀 혼자서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다. 난 쭈뼛쭈뼛 물건을 내밀었다. 양말을 위에 놓은 채로. 그녀는 그걸 하나씩 들고 바코드를 찍었다. 그녀는 이제 알 것이다. 내가 105 사이즈란 걸. 100만 되었어도 얼마나 좋았을까. 어젯밤 꿈에서 내가 물건을 줍다가 바지가 찢어지는 꿈을 꾼 것은, 그리고 꿈에 나온 미녀에게 그 사실을 감추려고 몸을 비비 꼬았던 것은 105임을 들킨 자책감 때문이었으리라. 다음에 보면 이렇게 말할까.
“사실 그때 그 팬티는 지도교수님 심부름이었어요.”
통하든 안통하든 살 좀 빼자. 105는 너무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