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김운찬 옮김 / 부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늘 말하지만 난 맞고 자랐다.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라느라 숨 한번 크게 쉬어 본 적이 없다. 아빠, 하고 다정하게 불러본 기억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없다. 내가 밥을 빨리 먹는 습관을 갖게 된 것도, 말을 더듬었던 것도, 그리고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틱마저도 난 무시무시했던 우리집 분위기 탓으로 돌린다. 아버님 덕에 내가 이만큼 될 수 있었으니 감사하는 마음이 더 많지만, 아버님이 덜 무서운 사람이었다면 유년의 기억이 이토록 황무지는 아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까칠한 가족>을 읽었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쓴 과레스키가 쓴 가족일기란다.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지만 난 이내 그 책에 매료되었고, 낄낄대며 웃은 게 여러 번이다. 그 집은 도대체가 말이 안되는 집이었다. 과레스키 자신은 ‘평범한 가족’이라고 강변하지만, 그 가족의 구성원들은 어쩜 그리도 천방지축인지! 예컨대 여섯 살 난 그 딸은 “서 있느라 피곤했을 거예요”라면서 자전거를 자기 침대에 눕혀 놓고, 말을 잘 들었으니 약속대로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는 아빠 말에 태연히 대답한다.

“나는 벽에다 낙서를 하고 싶어요.”

딸보다는 덜하지만 부인도, 아들도 결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집이 어떻게 잘 굴러갈 수 있을까?


300페이지 가량 읽었을 때 깨달았다. 과레스키의 가족들이 아무리 제멋대로 행동하더라도 내가 살아냈던 우리집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걸. 그건 과레스키가 돈을 많이 버는 작가여서가 아니었다. 가족 내에서의 평등, 내가 파악한 비결은 바로 이거였다. 과레스키는 아버지라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말이 안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다. “나는 집 안에서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버리지 않는다...나는 우리 집의 가장이지만 결정은 다른 사람들이 내린다. 왜냐하면 집 안에서 나는 단지 하나에 불과하니까(54쪽).” 딸이 벽에다 낙서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는 “안돼”라고 말하는 대신 페인트와 붓을 들고 딸의 마음에 드는 벽을 찾아 나서고, 딸이 낙서를 하는 동안 망을 봐준다. 그런 가정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민주주의가 모두에게 행복을 제공하는 건 아니다. 과레스키가 말도 안되는 상황을 수차례 겪어야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가정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먼저 가장이 자신의 행복을 반납해야 하며, 어머니 역시 자식들에게 군림해선 안된다. 자식은 오직 게임만 하려들고, 부모는 오직 자식이 공부 잘하는 것에서만 행복을 찾으려 하는 우리네 가정에서 과레스키같은 민주주의가 과연 가능할지 의문스럽지만, <까칠한 가족>은 우리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내가 이 책에 별 다섯을 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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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3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1-0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들이 나누는 자유분방한 대화(상대방의 비위에 맞추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한, 최대한 냉정한 분석과 예리한 비판, 본질을 잊지 않는, 그러면서도 상대에 대한 애정이 깔린)가 가장 부러웠어요.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 구현되는 가정의 분위기, 그런게 사회로 확대되어야할텐데요. 이런 대화를 못 하고 산 건, 생각해보니 저도 마찬가지네요. 그래서 이들의 대화가 유쾌하고 부러웠지요.^^

짱꿀라 2007-01-0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칠한 가족을 읽으면서 저도 많은 것을 배웠답니다. 혜경님께서 쓰신 리뷰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지만, 오늘 마태우스님의 리뷰를 보고도 많은 것을 느끼고 갑니다. 가족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의사를 주고 받는 그런 가정은 앞으로 만들어 갈 21세기의 모델이 아닌가도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요즘에는 소가족 중심으로 가정이 이루어져 대화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지만, 억압받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그런 가정, 가정의 분위기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chika 2007-01-0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깐요,, 재밌는 민주가족을 이루시길 바래요! (어머님께 효도도 하시고...^^;)

hnine 2007-01-0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계속 제 보관함에서 기다리고 있는 책이랍니다. 마태우스님의 리뷰룰 읽으니 언젠가 꼭 읽어야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 2007-01-0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보관함으로 이동 :)

moonnight 2007-01-0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 책을 몰랐네요. 바로 보관함에 넣을께요. 마태우스님이 가정을 이루신다면 이렇게 즐겁고 유쾌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

H 2007-01-0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마태우스님도 가능할 것 같은...리뷰 읽고 이 책 보관함에 집어 넣습니다. 제목도 그렇게 혜경님의 리플도 그렇고 읽어보고 싶네요.

stella.K 2007-01-03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 리뷰시군요. 저도 중학교 때 <신부님...>읽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에 안 나지만...저 책과 함께 <신부님...> 다시 읽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7-01-0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 저의 아버지는 저랑 잘 놀아주셨지요.
본받아 저도 아들과 딩굴거리며 잘놉니다.
저의 아버지는 매라는 걸 모르는 분입니다. Never..

한국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특별합니다.
단순히 '평등'이라는 관점이상의 뭔가가 있지요.
아들과 놀다보면 느끼게 됩니다. 하하


게으름뱅이_톰 2007-01-0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 보관함, 보관함, 보관함..
저렇게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부모가 되는거, 쉽지 않겠군요.

마노아 2007-01-04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석한 리뷰였어요. 책의 재미와 감동이 다시 밀려와요. ^^

마태우스 2007-01-0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앗 리뷰 선배님이다... 감사합니다. 꾸벅
게으름뱅이님/그럼요... 절대 쉬운 건 아니겠지요... 그래도 저 책을 보고나면 애들의 의견도 존중해주는 부모가 될수 있을거예요.
한사님/대를 이어 좋은 아빠시네요. 님의 자제분들이 다 잘된 뒤안길엔 좋은 아빠가 계셨네요.
스텔라님/신부님보다 이 책이 더 재미있는 것 같사옵니다. 유머 면에서 한수위...
에고이스트님/호호 말씀 감사드려요 근데 전 애를 안낳을 거라서요....아빠 되기가 불가능...
달밤님/사람은요 겉보기랑은 다르답니다. 전 그냥 자유로운 늑대로 살아갈래요. 저 자신을 잘 알걸랑요
다락방님/오오 제 리뷰가 포쓰가 있었나요?
hnine님/보관함은 빨리빨리 비우셔야...^^
치카님/그냥 어머니 곁에서 효도하면 안될까요...??
산타님/웃음과 더불어 교훈도 줄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님이 일기 쓰시는 걸 보면 님도 좋은 가정을 이루고 계신 듯 싶은데요...^^
배혜경님/ 제 리뷰는 사실 님의 리뷰를 어설프게 표절한 것에 지나지 않지요... 님 리뷰 보고나서 기가 죽어 있다가..... 그냥 썼답니다. 죄송합니다.... 님의 리뷰에서 배운 게 더 많았습니다...
속삭이신 ㅎㅈ님/사람은 겪어봐야 안답니다. 전 님이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