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특별한 우울 - 우울증에 걸린 정신과 의사의 치료 일기
린다 개스크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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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열 명 중 여덟 명이 일생에 한 번은 겪는다는 우울증. 수치스러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냥 감내하거나 몰래 병원을 드나들며 외롭게 버텨냅니다.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괴로워합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을까?’ 쉬지 않고 되풀이되는 질문은 고통을 더욱 가중하기만 합니다. 단지 이 우울하고 불안하고 슬프고 축 가라앉는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지만, 벗어나려고 애쓰며 노력하지만 나아지기는커녕 더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슬픔은 우리 모두가 상실을 경험할 때 겪는 정상적인 인간 과정입니다. 우울하고 우울한 느낌은 정상적인 부분이지만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는 슬퍼하고,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그사람과 무슨 일을 했고,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결정적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조금 더 쉽게 느껴집니다.

p23 환자는 우울한 것일수도 있다. 우울은 불행한 감정과는 다르다. 우울은 불행보다 훨씬 더 깊고 큰 절망감으로, 세상을 보는 눈에 색을 덧입히고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어렵게 만든다

 

우울증에 취약한 경우-예를 들어 이전에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거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는 우울증이 재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슬픔과 관련된 우울증은 슬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해결됩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다운된 기분, 수면 문제, 체중 변화 및 에너지 부족, 절망 및 자살 생각과 함께 우리가 인식하는 다른 모든 것들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매주 계속되거나 매우 심각해지면 슬픔이 아니라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질병입니다. 나이, 성별, 학력, 지위 등에 관계없이 누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울증은 당신을 붙잡아서 빠져 나갈 힘을 찾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정신과 의사가 처방한 치료와 약물이 모두 필요합니다.

p282 누가 뭐라고 말하든, 도움의 손길을 청하고 받는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애써 숨겨 문제를 악화시키는 게 아니라, 뭔가 개선하려고 행동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고립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흔히 발생하는 정신 질환에 대한 더 많은 이해가 중요하며, 정신 질환 건강 (및 직업으로서의 정신과)의 오명을 줄이는 것이 도움을 구하고 회복력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우울에 대한 회고이자, 정신과 의사로서 만났던 내담자들의 기록의 모음입니다. 주요 내용은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작가의 경험과 그녀의 어린 시절이 남은 인생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우울을 겪는 이들, 우울을 치료하는 이들 모두에게 힘이 되어줄만한 책입니다.

나는 우울증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더 인간적이고 이해를 잘하는 치료자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도 우울증을 겪는다. 다른 과 의사보다 더 많이 겪는다. 우울증 전문가라고 해서 우울증에 안 걸린다는 법은 없다. 내가 모든 답을 다 아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이다. 처음 온 환자는 무슨 문제인지 말해보라고 하면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한다. 마음 한구석에 감춰진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데 거기에 맞는 말을 생각해내지 못한다. 문제가 무엇에서, 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아직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 P14

불안이 무언가가 일어나리라는 두려움의 징후라면, 우울증은 두려움이 현실이 될 때 나타난다
- P92

인간은 본래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사랑은 양방향일 수도, 외방향일 수도, 폭력적일 수도, 치유적일 수도 있다. 가족에게 사랑받으며 성장한 경험은 어른이 되었을 때 우울을 이길 힘이 되어줄 수 있다. 또 어른이 되었을 때 힘이 되고 사랑해주는 사람의 존재는 힘든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의 해독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실연이나 파경은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전에 겪었던 상실의 아픔을 다시 들쑤실 수도 있다
- P102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나는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모든 결점과 허물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 P117

세상에 단일한 진실이란 없다. 저마다 몇 개의 안경너머로 각자의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을 뿐이다. 남들의 기억과 인식과 가치관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할 이유는 없다. 사람은 자기 필요에 맞는 진실을 만들어간다. 좋건 나쁘건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스토리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일기를 쓰면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만들어간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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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정신과 의사 - 뇌부자들 김지용의 은밀하고 솔직한 진짜 정신과 이야기
김지용 지음 / 심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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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하면 흔히 정신분열병, 우울증 등 중증 질환을 떠올립니다. 그 때문에 심리적인 병원 문턱이 아주 높습니다. 정신과 환자라는 낙인이 두렵기 때문이죠

또 다른 흔한 믿음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본들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정신적인 문제는 자기 마음먹기 나름인데 내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를 만난 본 들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나중에 마음만 고쳐먹으면 되니 의사에게 갈 필요 없다고 하여 이래저래 정신과 의사는 필요 없게 됩니다.

환자들이 정신과에 올 때 부담스러운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기록에 남는다’라는 편견입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수십 가지의 경우가 있습니다.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 처방을 받으러 갈 수도 있고, 스트레스 상담을 받으러 갈 수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 망상이나 환청 때문에 입원하러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라는 말에는 이와 같은 다양한 사정과 맥락들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 소위 정신병이라 생각하는 정신증(psychosis)을 연상시켜 정신과에 대한 긴장과 불편함을 더해줄 뿐입니다.

p103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힘들어도 좋다. 흥미를 느끼고, 사람들을 돕는 일이란 보람도 느끼며, 괜찮다 할 수 있는 수입까지 따라오는데, 어찌 힘들기만 할까? 좋은 직업을 택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그 빈도가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보다 잦다.

정신과 의사는 말 그대로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에 대한 훈련을 받고, 그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여 이를 사용하는 방법을 체득하였다는 자격을 취득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수련 기간 중 정신과의사는 환자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p252 미래를 걱정하며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생각한다.

적당함을 지나친 이런 과도하고 불필요한 생각은 뇌에 과부하를 일으켜 다양한 증상을 만든다. 마음챙김은 마치 컴퓨터의 필요 없는 프로그램들을 정리하듯 생각의 양을 줄여 뇌가 안정을 찾도록 해준다. 오늘 남은 식사 시간, 무엇을 먹든 여태껏 그 어떤 끼니보다 더 집중해보기를, 마음을 가득 채운 생각들을 비워내며 음식 맛을 음미해보기를 권한다.

 

진료실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일화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심리와 관계의 의미를 풀어내고, 마지막에는 '마음챙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신과란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기에 정신과에 찾아간 것만 해도 큰 용기를 낸 것이란 얘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신 질환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최대한 정확하고 쉽게 전달해서, 정신과, 정신질환에 대해 모르는 사람, 편견을 가진 사람이 점점 줄어야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해소하고 정신과문턱을 더욱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진료실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해 보였습니다.

p294 치료 성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조기 치료와 재발 방지다. 치료받지 않은 시기가 길수록, 재발 횟수가 많을수록 잘 회복되지 않는다. 약물에 더 반응하지 않는다. 이토록 중요한 치료 시작 시기를 늦추는, 자주 재발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정신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정신질환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편견과의 싸움’으로 정신과 상담이나 진료를 쉬쉬하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 지역에서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를 극복하기 위해 진료실을 찾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정신과 문턱이 낮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유명인들도 언론매체나 방송 등을 통해 정신과 진료 사실을 밝히면서, 정신과가 예전처럼 중증 정신질환자들만 가는 곳이 아니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정신∙심리적 요인이 영향을 주는 각종 내과∙외과적 질환들도 점점 더 많아져 정신건강의학과의 역할이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현대에 들어서 정신건강의학과의 역할이 커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간접적으로 엿보는 것도 흥미로웠고, 삶에서 깨달은 깊이 있는 생각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환자를 환자로만 바라보지 않는 한 의사의 자세와 마음,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조금이나마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해소되지 않은 채 무의식에 계속 쌓인 부정적 감정은 여러 신경증(마음속 심리적 갈등이나 외부 스트레스에 의한 불안으로 다양한 증상이 발생하는 것) 증상을 만들어내는 원재료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환자의 무의식 속에 응축되어 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림으로써 증상이 해결될 수 있다
- P85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대상‘이다. ‘충분히 좋은‘이란 말을 내 방식대로 더 풀어서 이야기해보자면 ‘군데군데 불만족스럽고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이다
- P208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 바로 여기‘에.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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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Queen's Gambit : Now a Major Netflix Drama (Paperback) - 넷플릭스 '퀸스 갬빗' 원작
Walter Tevis / Orion Publishing Co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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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장기나 바둑과 같은 개념으로 서양에는 체스가 있습니다. 체스는 왕과 왕이 싸우는 게임입니다. 빛과 어둠, 선과 악, 천사와 악마 등 적대적인 힘이 서로 겨루고 있는 싸움터로써의 현실세계를 의미합니다.

베스의 부모는 그녀가 8살 때 교통 사고로 사망합니다. 다른 마을의 고아원으로 보내집니다. 이 곳은 엄격한 가치를 지닌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는 곳이었고, 아이들은 매일 진정제를 복용하고, 베스는 이것에 금새 중독됩니다. 그녀는 자신보다 4살 많은 졸린이라는 흑인 소녀와 친구가 되고, 고아원 지하실에서 수위인 샤빌에게 체스를 배웁니다. 곧 그녀는 머릿속에서 복잡한 게임을 시각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머지 않아 그녀는 샤빌의 실력을 훨씬 넘어 섰습니다.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꺼렸던 샤빌은 그녀의 끈기와 타고난 재능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 후, 그녀를 고등학교 체스 클럽의 후원자인 Mr. Ganz에게 소개합니다. 그는 그녀에게 체스클럽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하고 12명의 소년들을 동시에 플레이하고 패배시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휘틀리 부인에게 입양 된 후 본격적으로 체스를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체스실력은 더욱 월등해지고 그랜드 마스터 플레이어가 경쟁하는 토너먼트에서 우승하기 시작합니다. 18살에 미국 챔피언이 되지만, 양엄마의 죽음으로 점점 진정제와 알코올에 크게 의존합니다. 그 후, 그녀는 러시아의 체스마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러시아로 갑니다.

시리즈 전체를 이미 보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공 베스는 뛰어난 재능으로 빛을 발하지만, 체스에 대한 열정과 진정제에 대한 중독이라는 결함이 있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체스 게임에 관한 소설이지만, 알지 못해도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베스의 목표에 응원을 하게 되면서도, 후반부에서는 극도의 외로움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베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고아소녀의 성장스토리가 주는 긍정적인 힘은 새롭고 흥미로웠고, 감동적인 우정, 사랑, 순수한 기쁨의 순간은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합니다. 저자인 Tevis는 훌륭한 이야기를 전하는 천재적인 이야기꾼인 듯합니다.

체스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극도의 공격성을 요구하는 게임일 뿐만 아니라, 빈틈없는 전략이 요구되는 치열한 두뇌 플레이입니다. 말의 움직임은 현실세계와 그 속에서 개인이 가지는 모든 가능성의 실현을 상징합니다. 어떤 말을 움직일 것인지 선택은 자유이지만, 말을 움직임으로써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즉 자유의지와 운명이 모두 들어있는 인생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수많은 천재들은 특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베스의 미래가 그렇게 우울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체스영재의 발견, 성장, 고민, 시련, 극복의 모습을 잘 보여준 성장스토리로는 무난했지만 마지막 난적과 만나는 이야기는 밋밋한 점이 있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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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ㅣ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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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세기말 장미꽃 향기가 짙은 어느 초여름 밤, 런던에 있는 버질 홀워드의 화실이 배경입니다. 그는 지금 세상에서 보기 드문 미모의 젊은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막 완성하려는 참입니다. 이 때 그림의 주인공이 들어옵니다. 그는 헨리 경의 악마적 유미주의 사상에 매료되어 자신은 그대로 젊음을 유지하는 대신 초상화 속의 인물만 추하게 늙어버렸으면 하고 바랍니다.

p58 나는 점점 늙고 추하고 끔찍해 지겠지요. 하지만 이 그림은 언제까지나 젊음을 간직하고 있을거예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유월의 오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거예요.

아. 그와 정반대가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언제까지나 젊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그림이 나 대신 점점 나이를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편, 도리언은 변두리 가설극장에서 본 여배우 시빌 베인에게 매혹됩니다. 그러나 그녀가 무대 위의 줄리엣에서 현실 속의 시빌 베인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왕자’인 자신을 열애하게 되자 그녀를 멀리합니다. 이 때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에서 전에 없던 미묘한 변화를 알아챕니다. 자신의 추해진 모습을 보면서 과오를 뉘우치고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하지만, 그녀는 이미 자살한 뒤였습니다.

그 후 그는 환락의 생활 속에서 점점 타락해 갑니다. 여자들을 마구 유혹하면서 사창굴에 출입하고, 결국에는 친구인 화학자와 시빌의 남동생 홀 워드까지 살해합니다.

38세 된 어느 날 밤, 그는 자신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위, 즉 칼로 초상화를 찢은 후 쭈글쭈글한 주름투성이의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죽습니다.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1891년 간행되었으며 영국의 세기말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주인공 도리언은 작자의 사상적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헨리 워튼 경의 유미적 쾌락주의에 촉발되어 악과 관능의 세계에 탐닉하고 여기에서 생기는 ‘추함’과 ‘노쇠’는 모두 그의 초상에 새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언제까지나 아름다움과 젊음을 잃지 않고 계속 죄를 거듭합니다. 그러나 결국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위하여 그 초상을 파기하려고 단검으로 찌르지만, 그것은 또한 자신을 찌르는 것이 되고 맙니다.

악과 관능의 세계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는 모두 자신의 초상화에 전가시키고, 쾌락을 추구하던 한 젊은이가 결국은 파멸하고 마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영국 문학사에 가장 특이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의 인생관과 예술지상주의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당시 영국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킨 것은 이 작품의 특성으로 보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도덕성에 관한 한 오스카 와일드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도덕관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었습니다.

p160 선하다는 건 자신의 자아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야말로 부조화 아니겠나. 자기만의 인생 - 이건이 정말 중요하네. 주변 사람들의 인생도 중요하지 않는냐고 묻는다면, 글쎄, 누군가 도덕가인 체하고 싶다거나 청교도인이 되고 싶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도덕적인 견해를 과시하려 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변 사람들을 안중에 두지 않을 거야. 게다가 개인주의에는 사실상 더욱 숭고한 목적이 있지. 현대의 도덕은 각 세대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있네. 하지만 난 교양 있는 누군가가 자기 세대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추잡한 부도덕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

 

주인공인 도리언은 순수한 청년으로 영원히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간직하고 싶어했고, 이런 도리언과 그를 모델로 하는 버질이라는 존재는 작품 전개와 결말에 큰 암시를 처음부터 주고 있습니다. 미와 욕망의 관념 전개에서 보상과 대타협을 향한 심리적 움직임이 신비스럽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잠시 자신의 오점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포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두려움이나 스스로의 잘못을 마주보고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은 아마도 자기자신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의 공포가 아니었을까요?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초상화를 보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비슷한 공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치명적인 단점이 한 두가지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시작은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우아한 매력이 있었고, 소년기 특유의 순백의 순수와 고대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과 같은 아름다움이 우리 모두를 위해 간직되어 있었다. 누구든 그와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그는 타이탄이 될 수도 있고, 하찮은 장신구가 될 수도 있다. 아, 그토록 아름다운 미모도 언젠가는 사라져야 하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인가
- P78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 은근슬쩍 달라붙어 기생하는 상식이라는 놈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살고 있지만, 사람이 결코 후회하지 않을 단 한 가지가 자신이 저지른 실수뿐이라는 걸 깨달을 땐 이미 세월이 한참 흐른 뒤랍니다
- P89

살면서 오직 한번만 사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얄팍한 거야. 그 사람들은 그걸 정절이니 헌신이니 하고 말하지만, 난 습관적인 무기력이나 상상력 부족이라고 말하지. 감정적인 인생에서 한 사람에게만 충실하다는건 지성을 추구하는 인생에서 한 가지 사실만 고집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네. 정절이라는 개념 안에는 소유에 대한 애착이 있어. 다른 사람이 주워갈까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내다버릴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 P105

도리언, 자넨 영원히 날 좋아할 거야. 난 자네가 절대로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온갖 죄악들을 자네에게 보여줄 테니까 말이야
- P162

자책 속에는 일종의 자기만족이 있는 법. 우리는 스스로를 비난하면서도, 나 아닌 그 누구도 자신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죄에서 사해주는 것은 고백이지 신부가 아닌 것이다. 편지를 완성했을 때, 도리언은 자신이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느꼈다.
- P196

초상화 안에는 알 수 없는 운명이 살아 있어요. 초상화는 제 나름의 인생을 살고 있단 말입니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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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ㅣ 허밍버드 클래식 M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한에스더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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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때론 누군가에게는 양심의 갈등 문제로, 누군가에게는 은밀한 쾌락의 향연으로 표출될 것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분은 아마 없으실 겁니다.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최초의 소설인 동시에,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워낙 많이 만들어져 굳이 소설을 읽지 않고도 줄거리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뮤지컬이나 연극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면서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증명되고 있는데, 이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가 때때로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종종 발견할 때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헨리 지킬 박사는 유명한 의학자이자 왕립협회 회원으로, 학식이 높고 자선심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간 내부에 있는 선악의 모순된 두 감정을 약품으로 분리해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약품을 만들어 복용한 결과, 악하고 추한 하이드로 변합니다. 법률 고문이면서 오랜 친구인 아타슨 변호사는 이를 지켜보고 동료 의학자인 라니용 박사에게 상담해 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후 1년이 지나 끔찍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안개 낀 어느 밤, 하이드는 템즈 강변에서 우연히 만난 카알 상원의원을 말다툼 끝에 지팡이로 때려죽입니다. 사건 직후에 버려진 지팡이와 지킬에서 모습을 감추라는 내용의 하이드의 편지를 보고 필적 감정가는 이것이 지킬의 것임을 밝혀냅니다.

2개월 후, 라니용 박사는 ‘지킬이 사망 또는 실종할 때까지 개봉해서는 안 된다’라고 쓴 유서를 아타슨 변호사에게 남기고 죽습니다. 이 때 지킬이 하이드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아타슨 변호사가 현장에 도착해보니, 실험대 위에 지킬의 의복을 걸친 하이드의 시체와 아타슨을 상속인으로 한 유언장이 함께 남겨져 있었습니다. 아타슨은 먼저 라니용의 유서를 읽는데, 카알의 살인범인 하이드가 바로 지킬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충격으로 인해 죽게 되었음이 밝혀집니다. 지킬의 고백서에는 그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고, 하이드가 다시 지킬로 돌아가려면 두세 배의 약이 필요한데, 약을 구할 방도가 없어서 자살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영국과 미국에서 스티븐슨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가장 기여한 작품입니다.

작가의 유니크한 작품으로 평가되나 인간이 지닌 대립모순의 심리적 추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특이한 줄거리와 소재로 현대인의 성격 분열을 미리 암시한 괴기소설이지만 모순적인 이상 심리에 대한 세밀한 심리 분석이 부족하므로 뛰어난 작품이 아니라는 심리학계의 지적도 많았습니다.

흔히 이 작품에 대해 지킬을 ‘선인’, 하이드를 ‘악인’으로 딱 잘라 구분해서 선인과 악인이 수시로 변모, 교체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킬 박사는 대단한 선인이라기보다 평범한 한 남자에 불과합니다. 즉, 내면에 악에 대한 욕구를 품고 있다가 그것에 가끔 굴복하고 마는 보통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지킬이 남과 다른 점은 내적 이중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약의 힘으로나마 악한 본성을 제거하려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려 한 것은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 즉 자연의 순리에 벗어나는 것이므로 비극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전하려 하는 교훈은 뚜렷합니다. 선과 악 그 자체의 분열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악한 충동이 애초에 얼마만 한 크기로 존재했든 간에 그대로 방치해 두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난 선과 악의 갈등은 지킬과 하이드 사이의 갈등이라기보다는, 지킬의 마음속에 있는 선한 충동과 악한 충동 사이의 싸움입니다.

추리, 미스터리 등의 장르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철학적 요소를 담아내고 있는데,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에게 선택의 지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800년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묘사나 구성이 현대 문학과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다는 점에서도 놀라운 작품입니다.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명작의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여러 장르에서 이 작품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나 자신의 내부에도 두 개의 본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쌍한 지킬, 아무래도 상당히 곤란한 상황인 것 같군. 그 친구도 젊었을 때는 제멋대로 굴었었지.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역시 신의 심판 앞에선 시효가 없나 보군. 그래, 그거야. 과거에 저지른 범죄의 유령과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부끄러운 암덩어리가 나타나고 만 거야. 복수의 여신은 절뚝거리는 다리로 뒤늦게 찾아온다더니,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려지고 자신의 죄를 스스로 용서한 뒤에도 끝내 찾아 오고야 마는군
- P31

내안에 존재하는 두 자아를 분리하게 될 기적이 가능하리라 믿으면서 기뻐도 했고, 두개의 나를 두개의 전혀 다른 자아에 가둘 수만 있다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리라 나 자신을 설득했네. 사악한 나는 정직한 내가 느끼는 죄책감을 잊고 자유로이 살 테고, 정직한 나는 기꺼이 선행을 베풀며 정상을 향해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나.
- P103

얼마 되지 않아 하이드는 괴물로 변하기 시작하더군. 그렇게 잠시 일탈에서 돌아올 때면, 타락한 하이드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는 내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네. 내 영혼에서 튀어나와 혼자 실컷 즐기게 된 하이드는 태생적으로 사악하고 악랄했네. 행동과 사고는 이기적이었고, 지킬마저 고문을 당하듯 괴로워할 정도로 짐승처럼 쾌락을 탐닉했으며 바위처럼 무자비했지. 에드워드 하이드가 저지른 짓에 겁을 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네. 그렇다고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고 그저 교묘하게 양심의 가책을 면할 정도였지만. 결국 죄를 저지른 건 하이드였으니 지킬의 선한 면은 손상되지 않았고, 때로는 하이드가 저지른 악행을 보상하기도 했네. 따라서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었지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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