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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ㅣ 허밍버드 클래식 M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한에스더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때론 누군가에게는 양심의 갈등 문제로, 누군가에게는 은밀한 쾌락의 향연으로 표출될 것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분은 아마 없으실 겁니다.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최초의 소설인 동시에,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워낙 많이 만들어져 굳이 소설을 읽지 않고도 줄거리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뮤지컬이나 연극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면서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증명되고 있는데, 이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가 때때로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종종 발견할 때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헨리 지킬 박사는 유명한 의학자이자 왕립협회 회원으로, 학식이 높고 자선심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간 내부에 있는 선악의 모순된 두 감정을 약품으로 분리해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약품을 만들어 복용한 결과, 악하고 추한 하이드로 변합니다. 법률 고문이면서 오랜 친구인 아타슨 변호사는 이를 지켜보고 동료 의학자인 라니용 박사에게 상담해 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후 1년이 지나 끔찍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안개 낀 어느 밤, 하이드는 템즈 강변에서 우연히 만난 카알 상원의원을 말다툼 끝에 지팡이로 때려죽입니다. 사건 직후에 버려진 지팡이와 지킬에서 모습을 감추라는 내용의 하이드의 편지를 보고 필적 감정가는 이것이 지킬의 것임을 밝혀냅니다.
2개월 후, 라니용 박사는 ‘지킬이 사망 또는 실종할 때까지 개봉해서는 안 된다’라고 쓴 유서를 아타슨 변호사에게 남기고 죽습니다. 이 때 지킬이 하이드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아타슨 변호사가 현장에 도착해보니, 실험대 위에 지킬의 의복을 걸친 하이드의 시체와 아타슨을 상속인으로 한 유언장이 함께 남겨져 있었습니다. 아타슨은 먼저 라니용의 유서를 읽는데, 카알의 살인범인 하이드가 바로 지킬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충격으로 인해 죽게 되었음이 밝혀집니다. 지킬의 고백서에는 그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고, 하이드가 다시 지킬로 돌아가려면 두세 배의 약이 필요한데, 약을 구할 방도가 없어서 자살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영국과 미국에서 스티븐슨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가장 기여한 작품입니다.
작가의 유니크한 작품으로 평가되나 인간이 지닌 대립모순의 심리적 추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특이한 줄거리와 소재로 현대인의 성격 분열을 미리 암시한 괴기소설이지만 모순적인 이상 심리에 대한 세밀한 심리 분석이 부족하므로 뛰어난 작품이 아니라는 심리학계의 지적도 많았습니다.
흔히 이 작품에 대해 지킬을 ‘선인’, 하이드를 ‘악인’으로 딱 잘라 구분해서 선인과 악인이 수시로 변모, 교체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킬 박사는 대단한 선인이라기보다 평범한 한 남자에 불과합니다. 즉, 내면에 악에 대한 욕구를 품고 있다가 그것에 가끔 굴복하고 마는 보통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지킬이 남과 다른 점은 내적 이중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약의 힘으로나마 악한 본성을 제거하려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려 한 것은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 즉 자연의 순리에 벗어나는 것이므로 비극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전하려 하는 교훈은 뚜렷합니다. 선과 악 그 자체의 분열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악한 충동이 애초에 얼마만 한 크기로 존재했든 간에 그대로 방치해 두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난 선과 악의 갈등은 지킬과 하이드 사이의 갈등이라기보다는, 지킬의 마음속에 있는 선한 충동과 악한 충동 사이의 싸움입니다.
추리, 미스터리 등의 장르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철학적 요소를 담아내고 있는데,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에게 선택의 지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800년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묘사나 구성이 현대 문학과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다는 점에서도 놀라운 작품입니다.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명작의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여러 장르에서 이 작품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나 자신의 내부에도 두 개의 본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쌍한 지킬, 아무래도 상당히 곤란한 상황인 것 같군. 그 친구도 젊었을 때는 제멋대로 굴었었지.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역시 신의 심판 앞에선 시효가 없나 보군. 그래, 그거야. 과거에 저지른 범죄의 유령과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부끄러운 암덩어리가 나타나고 만 거야. 복수의 여신은 절뚝거리는 다리로 뒤늦게 찾아온다더니,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려지고 자신의 죄를 스스로 용서한 뒤에도 끝내 찾아 오고야 마는군 - P31
내안에 존재하는 두 자아를 분리하게 될 기적이 가능하리라 믿으면서 기뻐도 했고, 두개의 나를 두개의 전혀 다른 자아에 가둘 수만 있다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리라 나 자신을 설득했네. 사악한 나는 정직한 내가 느끼는 죄책감을 잊고 자유로이 살 테고, 정직한 나는 기꺼이 선행을 베풀며 정상을 향해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나. - P103
얼마 되지 않아 하이드는 괴물로 변하기 시작하더군. 그렇게 잠시 일탈에서 돌아올 때면, 타락한 하이드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는 내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네. 내 영혼에서 튀어나와 혼자 실컷 즐기게 된 하이드는 태생적으로 사악하고 악랄했네. 행동과 사고는 이기적이었고, 지킬마저 고문을 당하듯 괴로워할 정도로 짐승처럼 쾌락을 탐닉했으며 바위처럼 무자비했지. 에드워드 하이드가 저지른 짓에 겁을 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네. 그렇다고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고 그저 교묘하게 양심의 가책을 면할 정도였지만. 결국 죄를 저지른 건 하이드였으니 지킬의 선한 면은 손상되지 않았고, 때로는 하이드가 저지른 악행을 보상하기도 했네. 따라서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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