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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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세기말 장미꽃 향기가 짙은 어느 초여름 밤, 런던에 있는 버질 홀워드의 화실이 배경입니다. 그는 지금 세상에서 보기 드문 미모의 젊은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막 완성하려는 참입니다. 이 때 그림의 주인공이 들어옵니다. 그는 헨리 경의 악마적 유미주의 사상에 매료되어 자신은 그대로 젊음을 유지하는 대신 초상화 속의 인물만 추하게 늙어버렸으면 하고 바랍니다.

p58 나는 점점 늙고 추하고 끔찍해 지겠지요. 하지만 이 그림은 언제까지나 젊음을 간직하고 있을거예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유월의 오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거예요.

아. 그와 정반대가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언제까지나 젊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그림이 나 대신 점점 나이를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편, 도리언은 변두리 가설극장에서 본 여배우 시빌 베인에게 매혹됩니다. 그러나 그녀가 무대 위의 줄리엣에서 현실 속의 시빌 베인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왕자’인 자신을 열애하게 되자 그녀를 멀리합니다. 이 때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에서 전에 없던 미묘한 변화를 알아챕니다. 자신의 추해진 모습을 보면서 과오를 뉘우치고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하지만, 그녀는 이미 자살한 뒤였습니다.

그 후 그는 환락의 생활 속에서 점점 타락해 갑니다. 여자들을 마구 유혹하면서 사창굴에 출입하고, 결국에는 친구인 화학자와 시빌의 남동생 홀 워드까지 살해합니다.

38세 된 어느 날 밤, 그는 자신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위, 즉 칼로 초상화를 찢은 후 쭈글쭈글한 주름투성이의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죽습니다.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1891년 간행되었으며 영국의 세기말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주인공 도리언은 작자의 사상적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헨리 워튼 경의 유미적 쾌락주의에 촉발되어 악과 관능의 세계에 탐닉하고 여기에서 생기는 ‘추함’과 ‘노쇠’는 모두 그의 초상에 새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언제까지나 아름다움과 젊음을 잃지 않고 계속 죄를 거듭합니다. 그러나 결국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위하여 그 초상을 파기하려고 단검으로 찌르지만, 그것은 또한 자신을 찌르는 것이 되고 맙니다.

악과 관능의 세계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는 모두 자신의 초상화에 전가시키고, 쾌락을 추구하던 한 젊은이가 결국은 파멸하고 마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영국 문학사에 가장 특이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의 인생관과 예술지상주의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당시 영국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킨 것은 이 작품의 특성으로 보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도덕성에 관한 한 오스카 와일드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도덕관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었습니다.

p160 선하다는 건 자신의 자아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야말로 부조화 아니겠나. 자기만의 인생 - 이건이 정말 중요하네. 주변 사람들의 인생도 중요하지 않는냐고 묻는다면, 글쎄, 누군가 도덕가인 체하고 싶다거나 청교도인이 되고 싶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도덕적인 견해를 과시하려 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변 사람들을 안중에 두지 않을 거야. 게다가 개인주의에는 사실상 더욱 숭고한 목적이 있지. 현대의 도덕은 각 세대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있네. 하지만 난 교양 있는 누군가가 자기 세대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추잡한 부도덕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

 

주인공인 도리언은 순수한 청년으로 영원히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간직하고 싶어했고, 이런 도리언과 그를 모델로 하는 버질이라는 존재는 작품 전개와 결말에 큰 암시를 처음부터 주고 있습니다. 미와 욕망의 관념 전개에서 보상과 대타협을 향한 심리적 움직임이 신비스럽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잠시 자신의 오점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포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두려움이나 스스로의 잘못을 마주보고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은 아마도 자기자신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의 공포가 아니었을까요?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초상화를 보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비슷한 공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치명적인 단점이 한 두가지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시작은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우아한 매력이 있었고, 소년기 특유의 순백의 순수와 고대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과 같은 아름다움이 우리 모두를 위해 간직되어 있었다. 누구든 그와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그는 타이탄이 될 수도 있고, 하찮은 장신구가 될 수도 있다. 아, 그토록 아름다운 미모도 언젠가는 사라져야 하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인가
- P78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 은근슬쩍 달라붙어 기생하는 상식이라는 놈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살고 있지만, 사람이 결코 후회하지 않을 단 한 가지가 자신이 저지른 실수뿐이라는 걸 깨달을 땐 이미 세월이 한참 흐른 뒤랍니다
- P89

살면서 오직 한번만 사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얄팍한 거야. 그 사람들은 그걸 정절이니 헌신이니 하고 말하지만, 난 습관적인 무기력이나 상상력 부족이라고 말하지. 감정적인 인생에서 한 사람에게만 충실하다는건 지성을 추구하는 인생에서 한 가지 사실만 고집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네. 정절이라는 개념 안에는 소유에 대한 애착이 있어. 다른 사람이 주워갈까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내다버릴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 P105

도리언, 자넨 영원히 날 좋아할 거야. 난 자네가 절대로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온갖 죄악들을 자네에게 보여줄 테니까 말이야
- P162

자책 속에는 일종의 자기만족이 있는 법. 우리는 스스로를 비난하면서도, 나 아닌 그 누구도 자신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죄에서 사해주는 것은 고백이지 신부가 아닌 것이다. 편지를 완성했을 때, 도리언은 자신이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느꼈다.
- P196

초상화 안에는 알 수 없는 운명이 살아 있어요. 초상화는 제 나름의 인생을 살고 있단 말입니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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