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니다, 우주일지
신동욱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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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은하수, 검은색, 달, 태양계, 그리고 반딧불 등등이 떠오릅니다.

최근 SF 소설을 읽고 있어서, 해당 도서 분야에서 베스트 셀러를 고르던 중 제목부터 눈에 띄는 '씁니다, 우주일지'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책의 초반은 주인공인 맥 매커쳔이라는 실제 T사의 CEO와 토니 스타크를 섞어놓은 듯한 캐릭터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과학자로 일하고 있는 '김안나'라는 캐릭터에 집중이 되었습니다.

도전정신이 뛰어난 T사의 CEO, 맥 매커쳔은 어렸을 적부터 우주에 대한 동경과 우주탐험이라는 장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출시하는 미래 지향적인 제품개발과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고 이를 기반으로 화성 이주라는 꿈을 실천에 옮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김안나라는 과학자는 새로운 대안을 내세웁니다. 바로 지구에서 우주로 나아가는 우주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 그 프로젝트를 실천하려면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균형을 잡아줄 균형추가 필요합니다. T사의 CEO 맥 매커쳔은 김안나의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로 하고 다양한 투자를 얻어 이 프로젝트가 사업으로 수익성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우주 엘리베이터에서 균형추로 사용하기 위해 우주 멀리에서 태양계에 다가오고 있는 소행성 납치를 직접 해오기로 합니다.

다행히도 스토리는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인 맥 매커천의 개인적인 고난과 사색, 상상이 무르익게 되면서 몰입도가 확실히 올라가게 됩니다.

책을 덮고 나서야 작가가 배우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배우인데도 필력이 대단했습니다. 특히, 우주에 대한 보통 열정이 없다면 쓸 수 없는 표현과, 장면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과학과 우주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그 누구 못지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책에 기술된 다양한 지식이나 설정들이 나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희귀병을 알게되고 소설을 되짚어보니 맥 매커쳔의 유쾌하면서도 처절한 우주 생존기는 신동욱 작가 본인의 경험담에서 나온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치료법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을 겪으며 함께 집에서 외부와 고립된 상태로 글을 써내려갔다는 작가의 고백과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통신도 안되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의 망망대해에서 방향도 잃고, 식량도 부족하고, 전기도 부족하는 등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갖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는 맥 매커쳔의 모습이 겹쳐보이면서, 작가가 글을 탈고하면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 작가를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유난히 똥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주선에서 똥 마저도 아껴야할 자원으로써 활용되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또한 우주복과 우주선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과 기술은 그 자체로 간략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영화 ‘마션’ 개봉 이후에 우주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가 한층 더 인기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영화와 소설 모두 화성과 우주에 대한 묘사가 매우 실감나고 구체적이라 영화를 본 이들이 실화라고 착각할 정도였죠.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험담에 유머와 로맨스까지 곁들여, 읽는 내내 유쾌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어려운 과학 용어들 또한 그리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우주와 물리학에 관련된 수백 권의 책을 독파하고 전 항공우주연구원장 채연석 박사를 직접 찾아가 자문을 받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자신을 우주덕후라고 말하던데 과연 덕후라는 말을 할만큼 우주에 관한 탄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그가 이 한 권의 책에 쏟아부은 열정과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납니다. 더구나 투병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죠.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 과학적이고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책은 무척 쉽

고 편하게 읽힙니다. 우주처럼 막막하고 깊은 심연 속에서도 밝음과 유쾌함을 가지고 소설을 써내려간 그의 첫 번째 소설은 SF 소설을 읽는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줄 것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칼 세이건…… 난 우주를 사랑했던 그들의 글을 읽으며 자랐어. 그들이 원했던 대로 우주에 대한 사랑의 씨앗이 내게도 전해졌던 거지. 나는 단지 씨앗만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씨앗을 재배해서 내 손으로 열매를 따고 싶었어. 그 뿐이야
- P107

어쩌면 그때가 맥에 대한 감정이 호감으로 바뀐 첫 번째 계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접근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우리에겐 우주를 사랑한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나는 학문적으로 접근했고, 그는 현실적인 사업으로 접근했을 뿐이다. 그때 그의 순수한 꿈을 느꼈다. 나는 그의 순수한 열정에 미소를 지었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그의 금빛 머릿결이 더욱 매력적으로 흩날렸다. 나는 그의 순수한 미소를 바라보며 입맞춤을 하고 싶었다. 그의 눈이 바다와 같이 푸르고 깊어 보였다.
- P109

아내는 도대체 어느 행성에서 지구로 왔을까? 내일은 아내가 외계어를 지구의 언어로 번역해서 나에게 알려줄 것이다. 그러면 빌리와 나는 협동해서 응가응가 벽돌들을 재배치할 예정이다. 한 명이 중앙 데크의 벽면 패널을 뜯고 벽돌을 밀어서 던져주면, 다른 한 명이 받아서 슝슝슝 딱! 끝! 하면 된다. 힘겹게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린 슈퍼 우주인인데, 지구의 나약한 인간들이여. 우리의 힘을 찬양하라!
- P119

모습이 고구마 같지요? 이 고구마가 유리한 점은 지구의 입장에서 볼 때 보이는 면적이 넓다는 겁니다. 세워져 있는 모양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우리가 꼬셔오기에도 수월합니다. 질량, 크기 같은 것들은 덤이라고 할 수 있지요.
- P139

우리는 현재의 인류와 더 나은 세상을 사고 있을 미래의 인류를 잇는 거대한 대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표상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선택한 현재의 결과에 따라서 미래에 대한 결과도 많이 달라질 테니. (중략) 미래는 절대로 정해져 있지 않다. 현재의 선택에 의해서 진화의 나무처럼 분화되고 갈라질 뿐이다. 그래야 공정하다. 미래가 단 하나의 세상으로 결정돼 있다면, 우주의 존재는 엄청난 시공간의 낭비일 뿐이니까. (중략) 나는 노력의 질량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미래의 결과조차도 휘게 만들 수 있는 무거운 중력이 만들어지지라 믿는다. 미래는 그 누구도 정말 모를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의 시간을 충실하게 달려서 미래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최선이다.
- P255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몰랐다. 벙어리가 되는 것이 이렇게 어둡다는 사실 말이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내 자신이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뱃사공, 스틱스 강을 노 젓는 카론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1달만 버티고 나면 지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때까지는 나의 어여쁜 안나와 실컷 대화를 나눌 생각이다. 외롭다보니 그렇게 됐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길. 그리고 지금 든 생각인데 지구에 돌아가면 동물 애호가가 될 생각이다. 강아지가 오죽하면 짖어 대겠는가. 나는 강아지들도 외로워서 짖는 것이라고 믿는다. 외로우면 짖는 거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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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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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웃기면서 동시에 가장 시니컬한 작가인 커트 보니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더글러스 애덤스 등 작가들이 좋아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공학과 문학의 길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1943년 2차대전 막바지에 징집돼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경험을 했는데요. 연합군의 공습으로 13만명이 몰살당한 이 지옥에서 살아남은 뒤 결국 반전작가로 거듭납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소방수, 영어교사, 자동차 외판원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글쓰기를 계속해 ‘제 5도살장’, ‘고양이요람’ 등의 소설과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등 풍자적 에세이집을 써냅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은 문체가 정말 좋다는 느낌입니다. 우선 내용은 진지하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킬 주제들을 담고 있는데,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유머와 비유 등을 통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읽히게 만듭니다. 동시에 쉽지만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습니다. 짧은 글 속에서는 인권, 반전, 환경, 유머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몇 장을 읽자마자 '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가 좋아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한 모습에는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이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도 휴머니스트적인 시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4편 모두 아무 때고 꺼내들어 한 편씩 음미하며 아껴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작가의 사후에도 이런 작품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커트 보니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세 수긍할 법하지만, 몇몇 작품들은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갸우뚱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통찰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방대한 상상력을 동원해 풀어낸, 시종일관 블랙유머와 날카로운 풍자, 넘치는 위트있는 이야기는 독자를 계속 끌어들이기에 충분할 만합니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그건 우리 마음 속 최악의 부분에 직통으로 연결되는 물건이야, 헨리." 엘런이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저걸 가져선 안돼, 헨리. 그 누구도! 그 작은 목소리는 지금도 이미 충분히 시끄러워."
- P41

조금이라도 신경을 쓸 만한 테스트는 단 하나뿐이란다. 바로 인생 테스트야. 그 테스트에서 얻는 점수가 진짜 중요한 점수지 - P184

마크가 진지하게 규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찰리는 열 살이 얼마나 멋진 나이인지 떠올렸다. 찰리는 모두가 평생 열 살인 채 지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만약 모두가 열 살 이라면, 어쩌면 규칙과 일반적인 예의, 상식에서도 미약하나마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찰리는 생각했다 - P319

그녀가 진짜로 하고 있는 말은 헨리와 앤이 성장하는 것, 헨리와 앤이 가까이에서 비극을 보게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가 진정으로 성장한 적이 없다고, 가까이에서 비극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평생 어린아이로 지낼 수 있는 거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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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The Looking Glass (Paperback) ㅣ Collins Classics 41
루이스 캐럴 지음 / HarperPress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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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하는 토끼를 쫓아 땅속 이상한 나라를 모험하고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초겨울날, 앨리스는 방 안에 걸린 거울 속으로 뛰어들어 거울 나라를 모험하게 됩니다. 그곳은 거울 나라답게 모든 것이 반대였는데 글자도 거꾸로 보이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려면 반대방향으로 달려야 하며 벌을 받은 뒤에 잘못을 저지르는 식입니다. 앨리스는 거대한 체스 판처럼 생긴 거울 나라에서 하얀 여왕의 졸이 되어 직접 경기를 펼칩니다. 졸로 시작한 앨리스는 여왕이 될 것이고, 이야기의 각 장은 이러한 졸의 움직임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 앨리스는 여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붉은 여왕, 하얀 여왕과 함께 즐기던 파티가 엉망이 되면서 앨리스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야기의 구성이 탄탄하고 환상과 넌센스 요소도 탁월하며 등장인물과 묘사도 다채롭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체스 규칙이 반영되었는데 그만큼 이야기꾼이자 수학자로서의 루이스 캐롤이 치밀하게 계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이를 너무도 사랑하고 영원히 친구가 되고 싶었던 저자는 교훈과 도덕보다는 이야기와 말장난이 주는 재미를 담고 있는 듯 했습니다. 또, 유쾌한 상상력과 말놀이, 시적인 묘사와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 재치 넘치는 패러디와 날카로운 사회 풍자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열심히 달려온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언제나 제자리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작품 속의 앨리스도 그러한 경험을 하죠 앨리스는 붉은 여왕의 손에 이끌려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하지만 곧 자신이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치 우리들의 업무 현실이나 일상을 묘사한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앨리스가 자신의 꿈에서 깨어나자, 흰여왕과 붉은 여왕은 모두 집에서 함께 키우는 아기 고양이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셋이 함께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생각합니다. 앨리스가 매트릭스를 비롯한 현대의 여러 영화들에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 구석구석 루이스 캐럴이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황당한 이야기 조각들에는 정말로 그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환상과 과학 사이의 신비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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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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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둔 부모라면 모두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최근 여러가지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학폭위(학교폭력위원회)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약국을 운영하는 세영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워킹맘입니다. 14살 중학생 아이의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합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아이들이 연루되어 열린 학폭위에 참석할 일이 너무 괴롭기만 합니다. 결국 세영은 불참을 선언하고 남편이 지내는 지방으로 홀로 내려갑니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 자기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남편에게 어떠한 위로도 얻지 못하고, 세영이 불참한 그날의 학폭위는 가해자 아이들에게 유리하게 결론이 내려집니다. 결국 피해자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들 앞에 벌어진 엄청난 일 앞에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고, 도우를 비롯한 몇몇의 아이들은 자발적 조문으로 죽은 친구를 위로합니다.

작품 속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세영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주저앉고 싶기도 하고 나가고 싶기도 하고 오래오래 울고 싶기도 하는 마음 중 어느 하나도 잡지 못하는 갈팡질팡한 모습. 작가의 말인지 세영의 독백인지 그것이-‘중산층의 조그만 바램’-죄라면 죄에 대해 신들에게 간구하는 밤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영과 세영의 남편, 세영의 딸의 시점으로 각각 전개되는데, 세 명 모두 가족구성원 간 직접적인 갈등이나 다툼이 없었음에도 어딘가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풀어내어 이해가 가면서도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

‘핀시리즈’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 책 자체가 굉장히 분량이 짧기 때문인 이유도 있겠지만, 문제를 너무 피상적으로 다룬다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남의 인생에 그렇게까지 개입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세영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 P45

어떤 말들은 그 위에 티끌 하나 날아와 앉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다. - P49

사람들이 그 침묵을 수긍과 순응의 의미로 해석한다는 걸 성인이 되고서 알았다. 자신에 대해 착하고 순한 인간이라는 평가가 내려져 있다는 것도. 무원은 수긍한 것도 순응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속에 떠도는 말들을 꺼내지 않은 것뿐이었다 - P69

누가 아프다고 하면 심장 안쪽에 손을 넣어 눈물을 닦아줄 필요까지는 없었다. 피부와 피부는 반드시 닿지 않아도 되었다. 닿지 않아서, 희미해서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들이 있었다. - P97

도대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에게, 어디에 존재하는지조차 불확실한 사람들에게 어쩌자고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고 시간과 열정을 바쳤단 말인가. 길에서 마주친대도 아무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이제 그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당신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고 속삭여주는 타인은 하나도 없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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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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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정, 오륙도, 마흔 다섯살이면 정년, 56살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적 정년은 예순 살이지만, 조기 퇴직을 종용하는 기업의 문화 때문에 일찍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는 아무리 능력 성과 평판이 탁월해도 50세 전후면 보직 해임되기도 합니다. 이들에겐 두 가지 선택이 주어집니다. 위로금을 받고 퇴사하거나, 계약직으로 전환해 몇 년 더 일하는 것입니다. 둘 다 거부하면 평소 일과는 다른 업무가 부여됩니다.

이 작품은 수십 년간 일에 대한 열정과 회사에 대한 충성을 바치고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로 부터 비참하게 버림받은 중년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통신 공기업에 입사해 26년간 현장 팀에서 수리와 설치를 담당하던 주인공은 저성과자로 분류돼 재교육 직전 상사로부터 퇴사를 권유 받습니다. 주인공에게 아직 부양해야 할 고등학교 자녀와 홀어머니가 있고 노후를 대비해 마련한 변두리 다세대 주택 구입의 빚도 남아 있습니다.

매일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노하우를 익히고 실력이 늘어가는 것. 주인공에게 직장과 일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 대가로 그가 회사에 기대했던 것은 “존중과, 감사, 이해와 예의 같은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회사의 사직 요청을 거절하자 돌아 온 것은 모욕이었습니다. 회사는 지역의 거점센터로 영업 일을 하라며 그를 쫓아냈고 26년간 통신 설비 설치와 수리를 담당한 기술자에게 인터넷 가입 영업을 지시했습니다. 회사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일을 뺏음으로써 모욕을 줬던 겁니다.

결국 주인공은 회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약속을 받고 송전탑 건설을 대행하는 자회사에 편입되어 이름도 없이 78구역 1조 9번으로 불리며 송전탑 건설에 앞장서다가 이를 막는 마을 주민들과 갈등하다 파국을 맞습니다.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일과 삶의 분리 없이 평생직장의 신화를 만들어온 베이비붐 세대가 떠올랐습니다. 한때 산업 역군이라 불렸던 분들이 은퇴연령에 가까워지면서 자의든,타의든 일을 그만 두게 됩니다.

그저 ‘당연히 열심히 해야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먼 이야기라서, 나의 윗세대의 이야기라서 멀게만 느껴졌지만, 결국 열심히 일만해서는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 시대가 된 듯합니다. 회사를 ‘자신의 일부이자 전부’라 여기고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회사 인간’이 설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게 되겠죠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까마득하게 길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잠이 들 무렵이면 하루가 또 이처럼 순식간에 지나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16

회사를 그만 두지 못하는 이유가 다만 경제적 어려움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는지, 26년간 회사와 자신을 이어주던게 겨우 얄팍한 월급 통장 하나뿐이라고 여기는지 그는 되묻고 싶었다. - P33

긴 시간 회사를 통해 자신이 얻은 것과 배운 것, 바라고 원한 것, 이루고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순간들을 부정할 마음은 없었다. 회사에 속해 있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그 시간들 모두를 부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회사에 쏟았던 시간과 노력이 다만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일이었다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 P85

그러니까 가까운 사람들 틈에서 너무나 쉽게 갈등을 만들고, 무엇이 미움과 불만을 부풀리는지 아는 영악하고 지능적인 회사의 실체를 비로소 목격한 기분이 들었다. - P159

작은 불안의 조짐이 감지되면 그것은 곧장 공포감으로 몸집을 키웠고 거기에 휩쓸려버리는 거였다. 그가 맞서고 있는 것도 실은 실체도 없이 수시로 자신을 휘젓고 다니는 그런 감정들일지도 몰랐다. - P168

다만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그래서 마침내 닿게 되는 곳이 어디인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거기까지 이르러야만 이 기이한 집착과 이상한 오기를 모두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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