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는 뇌 - 디지털 시대, 정보와 선택 과부하로 뒤엉킨 머릿속과 일상을 정리하는 기술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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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오늘도 스마트폰을 통해 수백에서 수천 개의 정보를 보고 있습니다.
한때 우리는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은 모두 컴퓨터가 처리하고 우리 자신은 좀 더 고귀한 목적의 일만 하며 더 많은 여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더 정신없이 바빠졌습니다.

정보를 담는 저장 공간이 충분해도 결정하는 뇌는 과부하 중입니다. 정보의 과부화로 우리의 뇌는 종종 오류를 일으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데 머리 속이 멍해질 때가 있습니다. 기억도 비슷합니다. 뇌에 주어지는 각종 디지털 정보는 그렇지 않아도 불완전하고 왜곡이 많은 기억력에 더 많은 혼란을 가져옵니다. 쓸모없는 신호를 뇌 속 뉴런에 담아두다가 정작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저자는 ‘머릿속과 일상을 정리하는 기술’을 알려줍니다.

우리 스스로 책임의식을 가지고 인지 과부하 시대에 정보와 생각과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효율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는 관건은 바로 뇌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정리하는 습관임을 강조합니다.. 뇌는 불완전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의 행동은 정해져 있습니다. 행동 패턴을 조정해서 기억력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것이 바로 정리입니다.
그리고 뇌 신경과학, 인지심리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최신 연구를 토대로 머릿속에서 시작해 가정, 비즈니스, 시간, 사회 및 인간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주의력 배터리와 주의력 전환비용입니다.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주의력은 한정되어 있고 그 주의력을 다 쓰면 더이상 효과적으로 업무를 한다거나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업무나 공부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주의력 배터리가 많이 충전되어 있는 잠에서 일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업무를 마친 저녁시간에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거나 학습을 해야될 때는 이미 주의력 배터리가 상당히 소모되었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주의력 전환비용이란 어떤 하나의 일을 할 때에는 다른 것에 주의력이 쓰이지 않도록 신경쓰일 만한 것들을 다 치우고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즉, 두 가지 일을 일을 번갈아서 한다면 한가지 일에만 전념해서 순차적으로 일을 마치는 것보다 전환할 때마다 주의력이 더 크게 들기 때문에 한개씩 순차적으로 완료시키는 것보다 주의력 낭비가 심하게 일어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쓸수 있는 한정된 주의력은 최대한 아끼고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5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메모

나중에 해야될 일이 있다면 업무 중에도 우리의 뇌는 그 나중에의 일을 해야된다고 계속 신경쓰면서 주의력을 소모합니다. 메모를 해둠으로써 사소한 것들에 대해 기억의 외부화를 시킴으로써 주의력을 아낄 수가 있습니다.

2.    2분법칙

2분안에 내릴 수 있는 작은 의사결정이나 다른 일은 떠올랐을 때 바로 해버립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때 2분안에 쉽게 결정하거나 해낼 수 있는 것들은 그냥 생각난대로 결정하거나 일을 해냅니다.

미뤘다가 나중에 다시 생각한다면 한가지 해야할 일에 두번 세번 주의력이 쓰이는 것입니다.

3.    분류기준과 우선순위

 의사결정은 굉장히 많은 주의력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가장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분류기준을 나누고 의사결정을 이루는 것에 있어서 가치의 우선순위를 둬서 의사결정을 쉽고 빠르게 내려야 합니다.

 점심메뉴 고르기 같은 사소한 고민거리가 있다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차이가 있지만 우리의 뇌에서 소비되는 주의력 소모량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사소한 고민거리는 향후 결과의 만족도를 크게 고려하지 말고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들에 주의력을 더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4.    환경셋팅

 해야될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둡니다.

5.    메뉴얼을 짜놓는다

 어떠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미리 머리속에 기준들을 두고 의사결정을 빠르게 내립니다. 깊게, 오래 고민할수록 주의력 낭비가 심각해집니다.
이 책은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 정리를 잘 하기 위한 자기계발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왜 정리를 왜 잘 못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입니다.  뇌신경학적 분석에서부터 시작해서, 인문 과학적 지식들이 총동원됩니다. 정리할 것은 차 열쇠와 지갑만이 아닙니다. 인간관계, 계획표, 공부 방법까지. 일상에서 겪는 건망증과 결정 장애의 문제를 ‘정리’의 힘을 통해 해결해나갑니다.. 여기에서 다루는 정리라는 것의 세계가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유용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핸드폰이나 지갑 등 자주 물건을 두었던 곳을 기억하지 못해 찾으러 다니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또한, 해야 할 업무를 정해진 시간에 하지 못하고 미루거나 완수하지 못한 적이 종종 발생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간관리, 나의 주의력에 대한 문제를 직시하게 되었고, 새롭게 변화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해야 할 일을 미리 알려주는 알림이 파일을 사용하거나 일정표를 짜면서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해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미루는 습관을 고칠 수 있도록 오늘 계획한 일은 꼭 실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간단한 행동유도장치라면 꼭 새로 무언가를 구입하지 않아도 비슷한 기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책, CD,DVD 같은 것이 잘 정리되어 있고, 책장이나 음반 서랍장에서 지금 막 꺼낸 것을 어디에 다시 꽂아두어야 하는지 기억하고 싶다면 방금 꺼낸 것 바로 왼쪽에 있는 것을 2cm 정도만 앞으로 빼어두자. 물건을 다시 되돌려놓도록 해주는 간단하고 훌륭한 행동유도장치가 될 수 있다 - P138

스탠퍼드대학의 신경과학자 러스 폴드락은 멀티태스킹을 하는 동안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면 정보가 뇌의 엉뚱한 부분으로 간다는 것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TV를 보게 하면 학교공부에서 얻은 정보가 선조체로 간다. 이곳은 사실과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과정과 기술을 저장하도록 특화된 뇌 영역이다. TV 때문에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았으면 정보가 해마로 갔을 것이다. - P156

새로 얻은 기억은 처음에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간섭에 저항성이 생기려면 신경 강화 혹은 응고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중에 검색을 통한 접근이 가능하다 - P275

통찰이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에는 감마파가 함께 폭발하듯 터져나와 이질적인 신경 네트워크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서로 관련 없어 보이던 생각들을 일관성있는 새로운 주제로 엮어낸다. - P301

노년층은 사회적 네트워크의 규모가 작고 그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지만 젊은이들만큼이나 행복하다는 것은 이미 연구결과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또 그것을 실천에 옮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구결과 이런 일이 노화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 입증됐다 - P320

생산성 전쟁에서 승리하는 회사들을 살펴보면, 대개 직원들에게 생산성 시간, 낮잠시간, 운동시간, 그리고 일을 할 수 있는 차분하고 고요하고 질서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끊임없이 일을 하라고 다그치는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는 깊은 통찰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 P446

경험에 비추어보면 내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보통은 그보다 더 좋은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신해주었다. 낡은 것을 없애면 무언가 훨씬 멋진 것이 그 자리를 채워준다는 신념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관건이다 - P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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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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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 정신질환 등의 단어를 들으면 흔히 우리는 부정적인 느낌을 가집니다. 정상이라는 범주에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과 그 범주를 벗어난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의학은 그들을 환자로 규정해왔고, 뭔가가 모자라거나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 사람들 부족하고 같이 살기엔 어려움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심리학에는 관심이 있지만 이런 병리학적인 접근은 접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저자의 시각은 참신하게 느껴졌습니다. 뇌와 신경 쪽의 부분적인 이상으로 부인을 모자로 착각하거나 얼굴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의 한 부분이 없어졌다고 느끼는,’완벽한 인지 오류’가 가능하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이 책은 ‘올리버 색스’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큰 매개가 되었으며 그만큼 신경증의 문제를 비주류에서부터 관심의 대상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신경과 전문의로서 직접 치료하거나 만났던 사람들 혹은 직간접적으로 마주했던 흥미로운 케이스들을 모아놓았습니다.

책에는 다양한 주제로 신경심리학적 손상을 가진 사람들의 사례가 단편 이야기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환자에 대한 이야기라면 제목을 진단명으로 붙일 법도 한데, 저자는 제목을 진단명이 아니라 그 사람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붙였다는 점입니다. 만약, 제목이 진단명이었다면 독자는 책의 내용을 읽기도 전에 인물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병이 있든 없든, 장애를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성격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든지 간에, 윤리적으로 인간이라는 점에서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진단명을 붙이지 않고 인물의 특징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어떤 특징 하나로 규정지어지는 것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한편 환자를 대하는 소설 속 의사의 모습을 통해 만약 진단을 붙이게 된다 하더라도, 그 규정이란 것 또한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Part 1에서 저자는 장애를 연구함에 있어 예술적인 발전과 병리학적 발전을 함께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환자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진정으로 환자의 삶에 이로운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한다는 것입니다.

Part2 에서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며 인간은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가진 윤리적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의 이러한 관점에 의한다면, 기억에 문제가 생긴 인간은 소위 '정상적인' 인간으로 대우받을 수 있게 됩니다.

책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마지막 이 부분에서 4부에 자신이 하고싶은 결론적인 이야기를 넣어놓은 듯합니다. 자신이 환자나 저능아들을 만나면서 관점이 변화하고 그들을 한 개별자로 자신과 동등한 한 인간으로 보려는 따뜻한 의학자의 시선으로 가득합니다.

차갑고 기술적인 의술의 직업의사라는 타이틀을 넘어, 따뜻하고 휴머니티 넘치는 마음을 가진 저술가인 저자의 관점에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환자를 진단하는 과정을 의사가 고민하는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현실생활에서도 우리가 어떤 사람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 사람을 대하는 것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그는 '무;에서 ‘유’로 규정됩니다. 저자는 책에서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모습을 1인칭 관점에서 서술하며, 독자가 이를 통해 의사의 사고과정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할 수 있게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또, 대체적으로 이 소설의 탄탄한 내용을 둘째로 치더라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생물학 분야뿐만 아니라 니체, 베르그송, 비트겐슈타인 등 고대와 현대를 아울러 여러 철학자를 인용하며 생각을 펼치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 책에서 연구된 내용보다 더 많은 내용의 자료와 새로운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최근 신경심리학은 엄청나게 중요한 분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신경심리학이나 심리학이라는 분야에 처음 발을 디디는 사람에게는 관점과 내용적으로는 좋은 입문서가 되겠지만, 과거에 씌여진 책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듯합니다.

24가지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중첩되는 부분들도 약간 있지만 개별적으로 소설 소재로 쓰일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라 책장이 빨리 넘어갔습니다. 사례 중심의 책이 늘 그렇듯이, 뒤로 갈수록 점점 지루해져가는 것은 아쉽습니다.

 

 

그는 순간 속의 존재이다. 말하자면 망각이나 공백이라는 우물에 갇혀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과거가 없다면 미래 또한 없다. 끊임없이 변동할 뿐 아무 의미도 없는 순간순간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 P61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는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종종 거짓말쟁이나 얼간이로 취급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 받는다 - P108

"아, 알았다. 선생님, 거울 따위는 필요 없어요. 수준기만 있으면 돼요. 머릿속의 수준기는 사용할 수 없지만 머리 밖에 있는 거라면 사용할 수 있어요. 눈으로 볼 수 있는 수준기라면 말예요." - P137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묘한 세상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이 뒤집히는 세계이다. 병리 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이며 정상 상태가 곧 병리 상태일 수도 있는 세계이자,
흥분 상태가 속박인 동시에 해방일 수도 있는 세계,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몽롱하게 취해있는 상태 속에 진실이 존재하는 세계 말이다
- P187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묘한 세상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이 뒤집히는 세계이다. 병리 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이며, 정상 상태가 곧 병리상태일 수도 있는 세계이자, 흥분 상태가 속박인 동시에 해방일 수도 있는 세계, 깨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몽롱하게 취해있는 상태속에 진실이 존재하는 세계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큐피드와 디오니소스의 세계이다 - P206

뇌는 그 사람의 전 생에 걸친 기억을 완전하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보관하고 있다. 모든 의식의 흐름은 뇌에 보존되며, 생활 속에서 필요할 때마다 언제라도 떠오른다 - P260

더러는 지능이 낮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물쇠를 열지도 못하고, 하물며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해하거나 세계를 개념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세계를 구체적인 것,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마틴이나 호세, 쌍둥이 형제처럼 재능이 풍부한 ‘바보‘들이 가진 또 하나의 측면이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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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ㅣ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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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지저귀고 시끄러워야 할 봄에 적막한 기운만 감돈다면 얼마나 황량할까요? 만일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세상의 모든 새들이 사라진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아이들에게 들려줄 새소리가 없다는 것, 숲 속을 거닐며 새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훨훨 날아다니는 새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입니다.

미국 한가운데쯤 곡식이 자라는 밭과 풍요로운 농장들 사이에 모든 생물체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은 계절별로 경관이 아름답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평화의 노랫소리 끊이지 않고 마을 사람들은 고기를 잡으러 가까운 시냇가로 나가곤 했습니다. 특히 이 마을에는 다양한 종류의 새로 유명했는데, 봄가을 이동기를 맞은 철새 무리를 구경하려고 멀리서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어느 날 낯선 병이 이 지역을 뒤덮어 버리면서부터 마을은 사악한 마술에 걸린 듯 가축 떼가 죽어나가고 새들도 오지 않고 꽃도 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과 주민까지 알 수 없는 질병을 앓다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유는 인간이라는 생물 종이 위험하고 치명적인 유독물질로 공기 ‧ 토양 ‧ 하천 ‧ 바다 등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피해를 본 자연은 원상태로의 회복은 불가능한데 그 오염으로 말미암은 해악은 생물의 세포조직에도 스며들어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불러옵니다..

강렬하고 짧은 이 이야기가 책의 제목을 더 각인시키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이어서 2장부터 17장까지 드린계 농약과 유기 염소계 농약인 DDT, BHC 등의 살충제와 농약이 새, 물고기, 야생동물, 그리고 인간에게 미치는 파괴적 결과를 4년간의 ‘직접조사’를 바탕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모두 17단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단계별 내용이 모두 인간의 이기심과 부주의로 빚어내는 화학약품에 따른 환경오염과 자연 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의 배후에 생태적 연관 관계에 대해 무지하고 탐욕에 눈이 먼 전문가․정책 당국자․기업의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음을 증언합니다.

간이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화학물질은 그대로 땅으로 스며들어 물을 오염시키고 물고기를 떼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또, 대지에 뿌려진 살충제나 제초제는 토양으로 흡수되어 땅 위에 생존하는 식물을 죽이므로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자연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자연은 서서히 병들어 갑니다. 또한, 핵전쟁으로 말미암은 인류의 절멸 가능성과 더불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심각한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물질로 인한 환경오염입니다. 이 물질들은 식물과 동물의 세포조직에 축적되는데, 심하면 세포를 뚫고 침입해 유전물질을 변형시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화학물질이 우리에게 주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모르는 인간은 농지와 숲을 대상으로 화학물질의 공중살포 범위를 확대하였고, 살생 목표인 해충이나 잡초만이 아니라 화학약품이 뿌려진 지역에 사는 사람도 화학물질인 독극물을 뒤집어쓰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자주 거론되는 ‘DDT는 유기 할로겐 화합물에 속하는 살충제이다. 이 물질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중추신경계의 마비 증세를 보이며 체내에 축척이 되어 암을 유발하거나 기형아를 태어나게 하는 등 부작용을 유발하는 독성이 강한 화합물입니다.

지구의 역사는 생명체와 환경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입니다.모든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생존과 진화를 거듭해 왔지만 지구 탄생이후 인간이라는 생물종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힘으로 지구 환경을 변화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기술적 진보와 경제적 번영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그 오만함이 결국 인류의 파멸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두려운 진실입니다.

인간은 이쯤에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입니. 그동안 고집해온 관념을 바꾸고 인간이 우월하다고 믿는 오만함도 버려야 합니다.

 자연은 인간보다 훨씬 다양하고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간이 해충이나 잡초를 제거하려고 화학물질을 살포할수록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화학적 방제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자 한다면 다양한 선택이 존재합니다. 그 중 저자가 인류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많이 늦은 지금이라도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라는 것입니다. 생태계가 살아나고 먹이사슬이 제대로 형성되면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해충이니 잡초니 이름을 붙여 제초제나 살충제 등 화학물질을 만들어 마구잡이로 살포하는 것은 결국 지구를 병들게 하고 인류를 멸망시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이러한 지적에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침묵의 봄은 다행히 아직 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이 나왔기 때문에, 살충제와 여러 환경문제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아직 ‘침묵의 봄’이 오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앞으로의 환경문제가 중시되고 있는 것들을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경고가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인간의 이기심과 과학적 자만심을 버리고 인간의 겸손함을 드러내야 할 때입니다.

 

미국에서만 매년 500여 종의 화학물질이 등장해 사용된다. 이 놀라운 수치가 암시하는 것은 인간과 동물이 매년 500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인데, 이는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런 신물질 중 상당수는 인간이 자연에 대항해 벌이는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P31

죽음에 이른 얼룩 다람쥐의 모습은 특별하다. 몸을 웅크린 책 앞발로 가슴을 잡고 있었다. ... 머리와 목은 축 늘어졌고 입에는 더러운 흙이 들어 있었는데, 불쌍한 다람쥐가 죽어가면서 땅을 물어 뜯기라도 할 듯 몸부림쳤음을 알려준다 - P126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우리가 잠시 권력을 맡긴 관리들이다. 이들은 아름다움과 자연의 질서가 깊고도 엄연한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잠깐 소홀한 틈을 타 위험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 P154

자기만족을 위해 자연을 일정한 틀에 꿰맞추려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다가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결정적인 역설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이 만든 틀에 순응하지 않는다. 곤충은 자신에 대한 화학적 공격을 우회적으로 피해가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자기만족을 위해 자연을 일정한 틀에 꿰맞추려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다가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결정적인 역설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이 만든 틀에 순응하지 않는다. 곤충은 자신에 대한 화학적 공격을 우회적으로 피해가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 - P273

내성이란 개인별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다른 생명체보다 유독 물질에 영향을 덜 받는 능력을 타고났다면 살아남아서 후손을 낳을 가능성도 더욱 커진다. 내성이란 수많은 세대를 거치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100년 동안 세대가 평균 세 번 바뀐다. 하지만 곤충의 경우에는 며칠 또는 몇 주 단위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다 - P303

생명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해 싸움을 벌일 때조차 경외감을 잃어서는 안된다. 자연을 통제하기 위해 살충제 같은 무기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능력 부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면 야만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과학적 자만심이 자리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 P304

새롭고 상상력 풍부하며 창의적인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살아 있는 생물들, 그 생명체의밀고 밀리는 관계, 전진과 후퇴이다. 생물들이 지닌 힘을 고려하고 그 생명력을 호의적인 방향으로 인도해 갈 때, 곤충과 인간이 이해할 만한 화해를 이루게 될 것이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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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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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무(無)라는 점은 자극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보다 , 기억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에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흥신소에서 탐정일을 하다 퇴직한 주인공 ‘기 롤랑’은 자신에 대한 일체의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자신에 대한 존재 증명을 상실해 버린 그는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인물을 찾는 것처럼 자신의 과거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한 장의 귀 떨어진 사진과 부고를 단서로 그는 바의 피아니스트, 정원사, 사진사 등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한 가지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점점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기억 속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과 대면합니다

그 과정에서 받은 사진들을 토대로 자신이 차례로 프레디 하워드 드 뤼즈, 페드로, 페드로 맥케부아, 지미 페드로스테른 등의 이름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생각하며, 그와 드니즈라는 여성, 프레디와 게이 오를로프라는 여성 등 남녀 네 사람이 므제브로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후 망수르라는 사진 작가를 통해 드니즈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게 됩니다. 과거의 단서들을 추적하면서 자신일지도 모를 이름들을 듣게 될 때마다 정말 자신이 그 인물이었다고 확신하며 과거의 파편들을 하나둘씩 맞춰나갑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여러가지 이름 중 어느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경마기수인 앙드레 빌드메르를 만나서 페드로 맥케부아라고 불렸던 기 롤랑의 과거가 일정부분 밝혀지게 됩니다. 그는 드니즈, 게이 오를로프, 프레디와 함께 므제브로 갔으며, 그곳에서 기 롤랑과 드니즈 둘이 스위스 국경을 넘으려다 이들을 도와주겠다는 두 명의 인물에게 속아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이후 기 롤랑은 기억찾기의 마지막 시도를 해보기로 하고,’어두운 상점들의 거리,2번지’를 찾아나서며 끝을 맺습니다.

우울하고 몽환적인 느낌의 문장, 프랑스의 낯선 지명, 등장인물의 이름 때문에 쉽사리 읽히지 않았습니다. 특히 더 읽기 어려운 부분은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사실을 나열한 듯한 방식을 쓴다는 것입니다.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입니다. 사진 몇 장과 주변인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자신의 과거를 확신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기억이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날이나 일을 기억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과 같이 힘들고 아픈 기억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과 시간은 이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조금씩 잊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의도적으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조차 잊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에서 하나 둘씩 잊어가는 것들이 쌓이다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의도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잃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기억에서 멀어져가는 것들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다른 것들을 잃게 되는 것 말입니다.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 버린다. 미(美)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 P75

나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혹시 그는 나를 알아볼 것인가? 매번 나는 같은 희망을 품고 매번 실망한다. - P87

그 여자가 나에게 이 질문을 어찌나 강요하는 듯한 어조로 물어왔는지 나는 처음으로 절망감에, 아니 절망감보다도 더한 감정, 모든 노력, 모든 유리한 점, 모든 선의에도 불구하고 넘을 수 없는 장애물과 부딪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느껴지는 그런 충격에 사로잡혔다. - P121

골목들과 대로들의 저 미궁속에서 어느날 드니즈 쿠드뢰즈와 나는 서로 만났던 것이다. 거대한 전기 당구대 위에서 때떄로 서로 마주쳐 부딪치기도 하는 수천수만 개의 작은 당구공들처럼 파리 시내에서 오가는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따라가는 저 도정들 가운데서 서로 마주치는 도정들. 그런데 그것으로부터 이제는 아무것도, 심지어는 하나의 반딧불이 지나가면서 남기는 저 가느다란 빛의 줄무늬조차도 남은 것이 없는 것이었다 - P156

어제 저녁에 그 거리들을 훑어 지나가며 나는 그 거리들이 전과 다름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들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건물들도 거리의 폭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 시절에는 빛이 달랐었고 다른 무엇이 대기 속에 떠돌고 있었다… - P170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난 후(나는 신부님에게 내가 사설탐정 노릇을 했었노라고는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원천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 P183

이 도시 안에서, 발걸음을 서둘러 걷고 있는 그 모든 그림자 같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서로 길을 잃은 채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 P190

그녀는 반 알렌이 그녀에게 주는 원본에 따라 작업을 하거나 바느질을 했고 나는 장의자에 누워서 회고록들 중 어떤 것이나 아니면 그 여자가 그토록이나 좋아했던 마스크 총서의 탐정소설들을 읽었다. 그 저녁들은 내가 경험한 유일한 안도의 시간, 우리가 평화로운 세상 속에서 탈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환상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 P221

그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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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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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단편 소설을 읽으면서 궁금한 것은 어떻게 하면 짧은 분량 안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가였습니다. 장편소설도 좋고 단편소설도 좋지만, 그래도 호흡이 길고 이야기 자체의 서사성이 있는 장편을 더 좋아하긴 합니다. 그래서인지 단편 소설은 약간 밋밋하다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 많은 젊은 소설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주저 없이 "레이먼드 카버"를 꼽는다고도 해요. 특히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카버의 팬인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버의 소설을 직접 번역해 일본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단편작가로서 절정기에 올라 있던 레이먼드 카버의 문학적 성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대표작입니다. 표제작 "대성당"을 비롯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깃털들" 등 총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작품집은, 평단과 독자의 지지를 동시에 얻으며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후보에도 올랐었다고 하네요.

레이먼드카버의 문장은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상당히 단문입니다. 게다가 어떠한 군더더기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현상만을 그대로 포착하는데 주력하는 깔끔한 문장은 감정을 거의 절제하는 작가 특유의 관점과 맞물려 독특한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단편들은 각각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고, 그것은 작가의 힘입니다. 현실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순간의 힘은 단편문학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실려있는 소설들은 굉장히 터프합니다. 하지만 따뜻함과 뭉클함이 가슴속에 깊게 남겨진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대성당 외에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입니다. 아이의 생일 날 찾아 온 사고와 죽음, 그리고 빵장수가 얽힌 이야기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부부의 상황은 작가의 감정이 거의 개입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극이 처절하게 다가옵니다. 작가는 냉정하게 상황을 저술합니다. 빵장수라는 뜬금없는 제 3자가 등장하고, 아이를 잃은 부부가 그에게 감정을 토해내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상호간의 감정적 교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빵장수의 전화에 분통을 터트리며 그의 가게에 찾아간 부부는 갓 구워낸 빵을 대접받으며 밤이 새도록 긴긴 대화를 나눕니다. 어조는 끝까지 변함이 없지만 그 긍정적인 소통으로 인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문을 발견한 부부의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깁니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접한다는 것, 그 한 순간의 놀라움은 종종 앞으로의 삶 혹은 삶의 관점을 모조리 뒤흔들 만큼 강렬함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이 단편집은 새로운 발견입니다.

그 끔찍한 일을 다시 떠올리면서 마이어스는 그게 다른 사람의 일이라도 되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사실 그렇기도 했다. 그는 정말 그때와 다른 사람이었다. 그즈음 그는 혼자 살았고 일을 떠나서는 그 어떤 사람과도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다. 밤이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물새 미끼들에 관한 책을 읽었다 - P74

마이어스는 진행 방향으로 등을 돌리고 앉았다. 차창 밖 시골 풍경이 점점 더 빨리 스쳐가기 시작했다. 한순간, 마이어스는 그 풍경이 자신에게서 멀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방향이라면, 조만간 그는 알게 되리라 - P86

그 순간 앤은 무슨 말이냐고 너무도 묻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종류의 기다림이라는 상황에 처한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도 두려웠고, 그들도 두려웠다. 다들 그런 공통점이 있었다. - P110

"꿈은 꾸잖아!" 패티가 말했다.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꿈을 꾸지 않으면 미쳐버려. 책에 그렇게 나와. 그건 배출구라구. 사람들은 잠잘 때마다 모두 꿈을 꿔. 꿈을 안 꾸면 돌아버려. 그런데 나는 꿈이랍시고 꾸는 게 비타민뿐이란 말이야. 내가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어?" - P139

그는 아일린이 떠났으며, 그가 이해하는 바,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상황이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 그만뒀다. 캐럴과 함께 보내지 않는 밤들에만, 오직 그런 밤들의 아주 늦은 시간에만, 아일린에 대해 그가 여전히 지니고 있는 애정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게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 P241

"자네 인생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나 이 사람아? 그러기에 삶이란 희한한 걸세. 잘 알다시피. 계속해. 멈추지 말고."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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