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참던 나날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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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정도 갖추어진 사회에서 태어나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환경에 태어납니다.

이미 갖추어놓은 사회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우리는 그들을 사회 부적응자, 및 사회성 장애 라는 말로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리디아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폭력적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을 방치했던 어머니는 우울함을 견디지 못해 술에 절어 지냈습니다. 수면제를 입 안에 잔뜩 털어넣고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집 안에서 리디아는 수치심과 절망을 먼저 배웠습니다. 훌륭한 수영선수였지만 대학에 진학한 뒤 마약에 손을 댑니다. 경기에 출전하면 끝까지 완주하지도 못했습니다. 수영선수로서의 경력은 날아가버립니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혼엔 두 번 실패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삶을 슬픔의 심연으로 밀어넣은 건 딸의 죽음이었습니다. 딸은 태어나던 날 죽었습니다. 리디아는 한동안 좀비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종일 침대에 누워 울며 신음을 뱉어냈습니다.

종종 찬란한 기회가 찾아왔지만, 잡을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학대, 성폭력, 중독, 자기파괴, 사산의 슬픔을 겪은 뒤에도 끝내 자신의 힘으로 솟아올랐고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진부한 스토리고 진부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글쓰기는 저자를 구원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줍니다. 여성의 글쓰기는 역사 속에서 칭송받아온 적이 없지만 이토록 폭발적이고 강력합니다.

‘부적응자’에게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글을 통해 보여줍니다.

헐리웃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숨을 참던 나날을 읽자마자 영화 판권을 샀다고 합니다. 대본과 연출 모두 맡을 것으로 보여 기대와 궁금증이 한껏 커집니다.

하지만, 아주 작고 아주 불안한 나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작은 소녀가 있었다. 나는 그 소녀를 동굴에 가둬 놓았지만, 그 동굴에서 소녀는 미소 짓고 있었다.
- P93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나 자신의 끝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죽음 근처에 가고 싶었다. 정말로 죽은 근처에 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랬을 수도.
- P218

그는 항상 나를 웃겨주었다. 나는 10살 이후로 웃은 적이 없었다. 아이였을 때는 안전하지 않아 웃을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 딸을 잃고 나니 너무 아파 웃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술 취한 남자가 나를 웃겨주었다. 언제나. 가끔은 그게 최고였다는 생각도 든다
- P238

책을 읽고 싶었다. 밤마다 들었던, 나를 마비시키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나는 관념의 나라를 여행하고 싶었고 생각을 체감하고 싶었고 내 머리 꼭대기를 터드려 열어젖히고 싶었따. 정신 나갈 때까지 술 마시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었다.
- P256

유일한 목격자는 오직 몸밖에 없다는 잔인하지만 엄연한 진실에도 불구하고,기억력이라는 정신의 강압적인 힘만을 고집하니까.
- P262

이것을 꼭 이해해야 한다. 망가진 사람들은 항상 네, 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바로 앞에 대단한 것이 있어도 그것을 선택하지 못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고 사는 것은 부끄러움이다. 좋은 것을 원한다는 사실에서 생겨난 부끄러움,좋은 것을 느끼는 데에서 생겨난 부끄러움.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같은 공간에 서있을 만한 가치가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생겨난 부끄러움.우리 가슴 위에 커다란 주홍글자.
- P277

남자들 여럿이 모이면 그들만의 규칙이 작동한다. 손동작과 시선, 자세, 주고받는 말들과 말 속에 담긴 다중적 의미. 사소한 도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 그렇게 형성되는 위계.
- P308

한 문장에 생명과 죽음을 함께 담아내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한 몸에 담아내는 것도.
사랑과 고통을 모두 끌어안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 P345

남편 앤디가 아버지를 데려왔을 때, 내 자아는 두 명의 리디아로 쪼개졌다. 하나는 딸, 고통받아 망가진 소녀였다. 다른 하나는 막 새로운 삶을 시작한 여성이자 어머니, 작가였다
- P391

결혼 생활이 파탄 나면,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라. 성장기를 보낸 가족이 별로였다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라.
세상에 얼마나 사람이 많은가. 거기서 고르면 된다. 지금 같이 사는 가족이 상처를 준다면, 짐을 챙겨 떠나라. 지금 당장.
- P408

예술 안에서 나는 나의 동족을 만났다.
그들은 내 옆을 지켜주고 내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이건 당신을 위한 책이다. 내가 길을 뚫어 흘려보낸 물이다.(…)
안으로 들어오기를, 이 물이 당신을 잡아줄 것이다.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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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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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공허감과 깊은 슬픔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

30여 년간 같이 살아온 아내와의 사별 후 반스는 5년여 간을 사회와 격리된 채 생활을 합니다. 그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단 한 줄의 문장도 쓰지 않고 작품도 출판하지 않았는데, 이 책에는 그간의 내면변화가 담겨 있습니다.

책의 원제는 Levels of Life. 삶의 레벨 혹은 삶의 계층을 의미합니다. 원제와 어울리도록 이 책은 총 3부(3계층)로 이루어져있습니다.

1부에서는 뜬금없이 열기구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2부는 여전히 열기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지 배경이 하늘이 아니라 이제는 땅으로 내려옵니다. 베르나르와 버나비의 사랑이야기가 호화롭게 펼쳐집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결국은 헤어집니다.

3부에서야말로 본격적인 작가 자신의 사별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기구에서 바라본 세상이 평지에서 보이는 세상과 확연히 다르듯, 사랑의 환희에 빠진 두 사람의 눈에 보이는 세상 또한 그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삶의 여러 층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하늘, 땅, 지하로 이어지는 레벨들. 우리들의 삶과 죽음. 하늘에서 태어나 땅에서 살다가 지하로 내려가는, 역사 전체적으로 볼 때는 매우 짧은 시한부 인생을 이 책은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상과 달리 상당히 글이 담담하고 차가운 편이었습니다. 아내의 죽음을 그냥 어찌할 수 없어서, 자신의 슬픔도 어찌할 수 없는, 그저 세상이 돌아가는 일부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작가의 내면 정리로 끝을 맺습니다.

반스가 아내에 대해 아무것도 잊지 않았음을, 완전히 떠나보내지 않았음을 압니다. 어떤 말로도 그를 위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남, 이별, 새로운 만남, 그러한 것들을 가슴 아련하게 잘 느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실감도 극복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무언으로 말해주는 듯 합니다.

"에세이"는 그 진정성 때문에 그 장르를 정말 존중하고 좋아합니다. 이 세계적인 소설가의 에세이는 말 그대로 "진정성" 그 자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이 진실과 마법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사진에서의 진실,기부 비행에서의 마법처럼
- P61

그녀와 함께한 짧은 시간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을 부채질했고, 급기야 내내 함께 하고 싶어졌다
- P80

아, 그렇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걸요. 그래서 난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거고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감각, 쾌락,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어요. 난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감정을 찾아 헤매요. 삶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나의 마음은 어느 누구, 어느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짜릿한 흥분을 원한답니다. - P93

사별의 슬픔은 인간으로서의 상태이지 의학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며, 그 고통과 더불어 다른 모든 것을 잊는 데 도움이 되는 약은 있어도 치유해주는 약은 없다.
- P116

그러나 우주가 다만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면 우주 자신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을 터이니, 우주 따윈 될 대로 되라지. 세상이 그녀를 구할 수도 없고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면, 도대체 내가 뭣 때문에 세상을 살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 P122

내가 느끼는 비탄이 어느 정도는 나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건-‘내가 뭘 잃어버렸는지 봐줘. 내 인생이 어떻게 쪼그라들었는지 보라고’-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부터 줄곧, 언제나, 그녀에 관한 일이었다. 그녀가 무엇을 잃었는지 보라. 그녀는 인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육신, 그녀의 영혼, 그녀가 인생에 대해 품었던 빛나는 호기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때로는 인생 그 자체가 가장 큰 상실자이며, 진정 사별을 겪는 쪽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인생은 더 이상 그녀의 빛나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29

우리는 신의 위치를 잃었고 나다르의 위치를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깊이를 잃었다. 아주 먼 옛날의 어느 한 때, 우리는 지하세계로,죽은 자들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곳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 P142

비탄과 대비되는 애도의 문제가 있다. 비탄은 하나의 상태인 반면, 애도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둘을 차별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둘 사이엔 불가피하게 겹치는 면이 있다.
- P144

아내가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한, 그녀는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물론 아내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생생히 살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기억하는 가장 주된 사람이다. 만약 그녀가 어디엔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내 안에 내면화되어 존재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자살을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그러했고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자살하면 나 자신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욕조의 물이 붉게 변하면서 그녀에 대한 나의 빛나는 기억들이 희미해져 갈 때, 그녀는 두 번째로 죽게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결국 (혹은 한동안만이라도) 그냥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더 광범위하지만 이와 밀접한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내가 살아 있다면 그러길 바랐을 모습대로 살아야만 한다
- P148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 P169

‘우리’는 씻겨가고 이제 ‘나’만 남았다. 쌍안경의 기억은 단안경이 되었다. 똑같은 하나의 일화에 관한 두 가지의 불확실한 기억을 삼각측량과 항공 탐사의 과정을 거쳐서 더 확실한, 단일한 기억으로 응집할 가능성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 P181

고독은 본질적으로 두 종류로 나뉜다. 사랑할 사람을 찾지 못해서 느끼는 고독과,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빼앗겨서 느끼는 고독이다
- P184

자연은 너무나 정확해서, 정확히 그럴 가치가 있을 만큼의 고통을 안겨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 고통을 즐기기도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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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스릴러 - 스릴러는 풍토병과 닮았다 아무튼 시리즈 10
이다혜 지음 / 코난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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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을 찾게 되는 이유는 ‘중독성’과 ‘상상력’이 큰 요인으로 꼽힙니다. 추리·스릴러물은 스토리의 전개에 한 번 몰입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중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범인이 누군지’ 혹은 ‘다음 사건이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 유발시키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킵니다. 마지막에 범인이 누군지 밝혀졌을 때의 희열감 역시 계속 추리·스릴러물을 찾게 되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상황 자체가 스릴러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저자인 이다혜 기자는 영화 리뷰와 리포트, 에세이 등으로 유명합니다. 여러 경로로 워낙 글솜씨가 좋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묻어나는 저자의 스릴러 장르에 대한 오랜 경험과 식견, 애정도 느껴지고, 무엇보다도 ‘스릴러’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이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 책은 스릴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스릴러란 무엇이고, 어떤 장르로 나뉘는지, 작가에게 스릴러란 어떤 존재인지, 또한 스포일러에 대한 생각과 스릴러의 계보에서 여성 작가의 활약상을 개인 일화 등이 주요 골자입니다.

저자는 픽션 뿐 아니라 가해자 가족들이 쓴 묵직하고 처절한 논픽션들, 그리고 현실의 범죄에 대해서까지 다양하게 넘나들며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스릴러는 결국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말하는 장르라는 재정의로 귀결된다고 합니다.

워낙 많이 읽고 지식이 풍부해서 내용은 충실하지만, 뭔가 집중해서 글은 아닌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소소하게 여러 가지 책 이야기가 있었고 제가 좋아했던 작가들의 이야기도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흥미있는 책들은 몇 개 메모해두었다가 나중에 꼭 읽어볼 참입니다.

고전 미스터리가 규칙에 더 들어맞는 정통파의 플레이를 보여준다면 스릴러 쪽은 변칙이 더 환영받는다. 때로는 퍼즐을 다 맞춰도 퍼즐 조각이 남거나 빈 공간이 남아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범인 찾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나? 아닐 수 있다... 서스펜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서스펜스물과는 종종 혼용되며, 반전이 있는 경우가 많고, 대체로 사건 진행 속도가 빠르다. 고전적인 느낌이 없을수록 어떤 작품이 스릴러로 불릴 가능성은 높아진다
- P8

살다 보면 수시로 찾아오는 환란의 날에 마음둘 취미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꼴찌 팀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기라 할지라도, 나는 프로야구, 음악, 영화, 소설, 여행이라는 취미를 가졌고, 요즘은 야구를 거의 못 보지만(내가 봐서 지는 줄 알았더니 안 봐도 지더라) 다른 네가지는 우선순위 없이 전부 나의 시간과 돈을 도둑질하는 취미들이다. 문제는 취미 따라가느라 돈도 시간도 부족해져버렸다는 사실.
나의 취미는 나를 구했는가 망하게 만들었는가. 그런, 나를 구원했는지 파괴했는지 모를 취미 중 하나가 소설, 그중에서도 스릴러 소설 읽기다. 그리고 원래 망한 인생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법이다
- P18

내게 판타지라는 장르의 벽은 늘 그 ‘끓는점’이 너무 높다는 데 있었다.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성상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숙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 ‘지금, 이곳 너머’를 무대로 하고 있으니 일단 거대한 개념에서부터 꼼꼼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설정을 먼저 깔아야 한다. 세 권은 기본이고 다섯 권 이상 이어지는 시리즈가 많다. 그러니 300~500페이지는 읽고 나야 끓기 시작하는데, 500페이지까지 끓이다 보면 언제 끓여서 언제 먹고 포만감을 누리나 하는 생각에 벌써 지친다.
책장을 열면 바로 끓기 시작하는 스릴러나(첫장 혹은 첫 문장에서 이미 긴장이 시작된다), 남자 주인공이 나오면 끓기 시작하는 로맨스(1500페이지를 넘기는 경우가 아니면 아무리 늦어도 30페이지 이내에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첫 ‘밀실살인’이 벌어지면 냅다 부글거리는 본격 미스터리(현장에 탐정이 함께 있다면 금상첨화)에 비해 판타지의 진입 장벽은 너무 높아만 보이는 것이다
- P36

범죄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이 죽기 때문이 아니라 크건 작건 어떤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너무 길고 구차한데다 상대가 별 관심도 없는 경우가 많아 생략하기 일쑤다. 살인사건보다 살인을 저지른 인간의 심리가 궁금하잖아요, 하는 설명은 어디까지나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하고나 할 수 있는 얘기다
- P104

그래서 범죄물을 읽는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의의 정체가 궁금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가 이루어지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 천재적인 두뇌플레이를 보고 싶어서, 그 안에서는 언제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서사 안에서 안전한 쾌락을 느끼고 싶어서. 하지만 ‘내가 파는 장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
부디 바라건대, 이 글을 쓰는 나나 읽는 여러분의 삶은 평온하기를. 그리고 이 세상도, 약간은 평온해지기를
- P116

현실이 잔인하다고 잔인한 설정을 한껏 이용하는 창작물을 즐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의 문제를 픽션의 연장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픽션’과 ‘픽션 같은’은 전혀 다른 말이다. 픽션을 픽션으로 즐기려면 현실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 사실은 종종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파는’ 장르의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 쾌락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이 그렇다. 스릴러가 현실의 피난처로 근사하게 기능해온 시간에 빚진 만큼, 현실이 스릴러 뒤로 숨지 않게 하리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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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떡볶이 - '이건 맛있는 떡볶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아무튼 시리즈 25
요조 (Yozoh) 지음 / 위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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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는 학창 시절에 누구나 추억이 있을 법한 음식입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나 영화에서도 교복을 입고 떡볶이를 먹는 장면이 나오곤 합니다. 그렇게 떡볶이에는 누구에게나 추억이 많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서만 분식집은 세 곳이 있었고, 학교에서 가까운 만큼 학생들이 자주 가는 분식집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런 분식집은 국민학생(지금은 초등학생)의 취향에 맞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식집은 그 분식집에서 여유 있게 먹는 것보다는, 분식집에서 먹을 것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가끔은 괜히 옛날 생각으로 집에서 직접 떡볶이를 해 먹곤 합니다.
매번 떡볶이를 만들 때마다 어릴 적 떡볶이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백종원의 레시피를 참고하려 떡볶이를 만들어보곤 했지만, 항상 뭔가 부족했습니다. 옛날 어렸을 때의 먹었던 맛은 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엄마와 자신이 만든 음식 다음으로 많이 먹은 음식이 떡볶이’라고 자처합니다. “집 밖에서 머리를 맞대고 하나의 음식을 먹는 일의 단란한 기쁨을 처음으로 맛보는 경험”으로서의 떡볶이가 있습니다. 떡볶이를 먹던 곳의 분위기, 당시의 심경, 이를 둘러싼 관계, 그리고 여기서 비롯하는 모든 기억이 떡볶이 ‘맛’의 일부입니다.
짧고 간결하지만 따뜻하고, 유쾌하지만, 진지한 삶에 대한 고찰도 들어있습니다. '떡볶이’라는 음식 하나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나 무궁무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이렇게 먹고 싶고, 가고 싶게 맛갈나게 글을 쓰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분식집에 들른다는 건, 그 때만의 특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맛있는 떡볶이는 먹을 수 있을 언정, 추억의 그대로 떡볶이를 먹을 수 있을 리는 없습니다. 어쩌면 떡볶이는 옛날의 추억을 찾게 만드는 게 아니라, 끝까지 계속 추억을 쌓게 만드는 음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공룡의 이름을 끝도 없이 줄줄 외우는 제하(달리는 공룡박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작은 인간의 눈동자와 입술과 손가락을 보면서 나는 귀여움의 공포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진짜 무서운 것은 귀여움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악마가 시커멓고 꼬리가 길고 눈알이 빨갛고 이빨이 뾰족하기 때문에 세상이 아직 안전한 것이다. 제하 같은 애가 악마였다면 세상은 진즉에 끝났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맥주를 벌컬벌컥 마셨다.
- P16

모든 것은 그 나무의 컨디션과, 그날의 바람과 온도, 그리고 하필 그 순간의 내 호흡이 맞아떨어지는 아주 찰나에 좌우된다. 길을 걷다가 꽃나무 향기를 맡는 것도 나에게는 큰 횡재인 것이다.
- P53

맛없는 떡볶이 집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는 좋다.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닥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P62

떡볶이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자랑을 했더니 내 주변 다정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나를 돕고 싶어서 만나기만 하면 늘 떡볶이집으로 안내하려고 했다... 어디 괜찮다는 떡볶이집을 알게 되면 어찌나 득달같이 제보들을 해주는지, 나는 자연스럽게 조금씩 떡볶이 맛집 인간 지도가 되어갔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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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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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에는 어떤 체보다도 촘촘한 망이 겹겹이 걸쳐 있고, 모든 구성원은 그 망을 통과하여 걸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망을 통과할 수는 있지만 다음 망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어떤 망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걸러진 사람들의 삶은 손쉽게 간추려지고 미래는 예측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실격당했다’고 말합니다.

저자인 김원영 변호사는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을 받은 장애인입니다. 골형성부전증은 특별한 원인이 없이도 뼈가 쉽게 부러지는 선천성 유전질환입니다. 한국에서 이 병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가 200명 안팎에 불과한 희귀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만 했던 저자는 비장애인과는 확연하게 다른 삶을 경험하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과, 법률적 지식을 토대로 소위 우리 사회에서 ‘실격당한 사람’ 으로 낙인 찍힌 이들의 삶을 변론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실격당한 사람’이란 비단 장애인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장애, 질병, 가난, 볼품없는 외모 등 여러 이유로 사회로부터 부당하게 다른 대우를 받게 되는 사람들을 통칭합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명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 하면 그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약자, 소수자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뤄져야 하고, 단순히 논의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단계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총 9장에 걸쳐서 ‘실격’ 취급을 받아온 사람들의 입장을 차근차근 대변해 나갑니다.

책을 읽으며 많이 감탄했습니다. 막연하게만 느꼈던 불편한 감정들이 명료한 언어로 정리되어 있거나,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담론들이 각 장마다 펼쳐지고 있어서 그야말로 생각이 트였기 때문입니다.

장애 문제에 대해 잘 몰랐던 분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해요. 각종 실제 사례와 판례, 그리고 여러 가지 가정 상황 등을 통해서 이해하기 쉽게 논지를 전개해 나갑니다. 그렇게 1장부터 9장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주장들은 마침내 마지막에 이르러서 이 변론을 완성하게 됩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8장의 내용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름다울 기회의 평등’이라는 제목의 8장에서는 아름다움, 즉 미(美)의 관점에서 장애인의 삶과 몸을 바라보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변론의 형태로 말하고 있지만, 실은 우리 사회에서 ‘실격’ 당한 모든 이들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에는 몇 겹이나 되는 거름망이 놓여있습니다. 이 거름망이 너무 많고 촘촘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실격당한 자’가 될 운명에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실격당한 자’를 배제할 때 그는 기호가 되지만, 같은 위치에 우리를 놓고 사회의 거름망을 조망하게 될 때 우리는 상대의 개별성을 인지할 눈을 갖게 됩니다. 이제는 이 눈으로 지금보다 더 넓게 세계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속물과 품격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자들의 경계는 그래서 모호하다. 차이가 있다면, 속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끔씩은 자신의 품격까지 짓밟는다는 것이다. ‘쇼하지 마!‘라고 외치던,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의 참가자가 그렇다.
- P62

누군가에게 연극적인 삶은 위선이겠지만 누군가는 연극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가면을 쓰지 않은 얼굴은 너무나 투명해서 실제로 얼굴이 있는지도 알아볼 수 없다. 아무리 거울에 비추어 보아도, 즉 반성해도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얼굴이 없는 인간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나체로 죽겠다는 결정은 결국 자신의 죽음조차도 퍼포먼스로 만든다. 자신이 장애를 비관하여 죽는 게 아니라는 ‘진실‘을 위해 연극적으로 죽어야 하는 삶. 이런 죽음은 정반대로 장애가 없는 ‘완벽한‘ 인간에게도 있다.
- P83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시선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 그 가능성은 이제 ‘수용‘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고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결국 나의 몸, 운명, 삶, 실존에 대한 수용을 전제로 한다.
- P91

자신의 장애를 단지 극복해야 하고 없애야 할 요소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진지하게 숙고하고자 하는 이들은 장애에 대한 전적인 부정의 언어와 태도를 만날 때 매우 심란해진다
- P113

유전자진단기술을 통해 장애아를 ‘걸러낼‘ 수 있는 사회는 해당 장애에 대한 의료, 사회복지 지출에 둔감해지기 쉽다. 그냥 ‘걸러내면‘ 될 것을 굳이 낳아서 치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개인은 사회에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죄책감은 타당할까? 위 프로그램의 의미를 소개하면서 연구자 황지성은 첨단기술을 활용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은 사회적 차별과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모순을 지적한다. 유전자진단이나 임신중절은 일정 범위 안에서는 당신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다만 그 자유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장애아가 태어나면, 그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결국 모든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 P115

질병과 장애에는 각각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는 질병과 장애를 안은 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해석되고 기록된다. 며칠 아팠다가 낫는 감기나 한 달 정도 입원했다가 치료를 받고 끝나는 일시적인 질병은 우리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계기가 되고, 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뿐이다. 하지만 만성적인 질병, 늘 약을 먹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고, 때로는 빨리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질병이나 우발적인 사고로 갖게 된 ‘장애’라는 몸 상태는 한 사람에게 고유한 이야기가 된다. 내 몸이 가진 이 속성, 흔적, 경험으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정제성이란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129

우리가 무엇인가를 ‘수용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철저히 자발적인 선택을 의미한다. 믿음은 나의 의지에 따라 믿거나 믿지 않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수용은 오로지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물론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수용할 수 있지만, 근거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당신이 장애가 있는 아이를 진정 가치있고 반짝거리는 존재로 수용하고자 한다면, 그아이에게 다른 아이에게는 없는 천재적인 수학 능력이 있는가 혹은 예술가로서의 빛나는 재능이 보이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 P139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장애가 있는 몸, 미적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여겨지는 신체를 수용했다고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혐오나 피해의식에 기초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이 세상이 구축해놓은 외모의 위계질서에 종속되지 않으며, 앞으로의 삶을 외모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나 억압, 혹은 피억압자로서의 의식과 트라우마에 짓눌리지 않은 채 살아가겠다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입장)‘를 수용한 것이다.
- P144

어떤 사람을 존엄한 존재로 대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자기 인생의 자율적인 주체, 말하자면 작가/저자author로서 존중함을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다.
- P185

람들이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계기로 어떤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 이야기가 그 사람이 앞으로 할 행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그는 자기 삶의 저자로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 P194

장애인들은 장애가 개인의 비극이나 극복해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라고 믿는다
- P294

존엄의 순환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 순환 속에서 존엄은 더 구체화되고, 더 강해지고,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을 보고 그를 더 사랑하게 되듯이, 우리는 나를 존중하는 상대방을 보고 그를 더 존중하게 되고, 나를 존중하는 법률을 보고 그러한 법의 지배를 기꺼이 감내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를 더 깊이 사랑하고 관용하게 된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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