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스릴러 - 스릴러는 풍토병과 닮았다 아무튼 시리즈 10
이다혜 지음 / 코난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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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을 찾게 되는 이유는 ‘중독성’과 ‘상상력’이 큰 요인으로 꼽힙니다. 추리·스릴러물은 스토리의 전개에 한 번 몰입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중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범인이 누군지’ 혹은 ‘다음 사건이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 유발시키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킵니다. 마지막에 범인이 누군지 밝혀졌을 때의 희열감 역시 계속 추리·스릴러물을 찾게 되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상황 자체가 스릴러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저자인 이다혜 기자는 영화 리뷰와 리포트, 에세이 등으로 유명합니다. 여러 경로로 워낙 글솜씨가 좋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묻어나는 저자의 스릴러 장르에 대한 오랜 경험과 식견, 애정도 느껴지고, 무엇보다도 ‘스릴러’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이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 책은 스릴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스릴러란 무엇이고, 어떤 장르로 나뉘는지, 작가에게 스릴러란 어떤 존재인지, 또한 스포일러에 대한 생각과 스릴러의 계보에서 여성 작가의 활약상을 개인 일화 등이 주요 골자입니다.

저자는 픽션 뿐 아니라 가해자 가족들이 쓴 묵직하고 처절한 논픽션들, 그리고 현실의 범죄에 대해서까지 다양하게 넘나들며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스릴러는 결국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말하는 장르라는 재정의로 귀결된다고 합니다.

워낙 많이 읽고 지식이 풍부해서 내용은 충실하지만, 뭔가 집중해서 글은 아닌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소소하게 여러 가지 책 이야기가 있었고 제가 좋아했던 작가들의 이야기도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흥미있는 책들은 몇 개 메모해두었다가 나중에 꼭 읽어볼 참입니다.

고전 미스터리가 규칙에 더 들어맞는 정통파의 플레이를 보여준다면 스릴러 쪽은 변칙이 더 환영받는다. 때로는 퍼즐을 다 맞춰도 퍼즐 조각이 남거나 빈 공간이 남아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범인 찾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나? 아닐 수 있다... 서스펜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서스펜스물과는 종종 혼용되며, 반전이 있는 경우가 많고, 대체로 사건 진행 속도가 빠르다. 고전적인 느낌이 없을수록 어떤 작품이 스릴러로 불릴 가능성은 높아진다
- P8

살다 보면 수시로 찾아오는 환란의 날에 마음둘 취미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꼴찌 팀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기라 할지라도, 나는 프로야구, 음악, 영화, 소설, 여행이라는 취미를 가졌고, 요즘은 야구를 거의 못 보지만(내가 봐서 지는 줄 알았더니 안 봐도 지더라) 다른 네가지는 우선순위 없이 전부 나의 시간과 돈을 도둑질하는 취미들이다. 문제는 취미 따라가느라 돈도 시간도 부족해져버렸다는 사실.
나의 취미는 나를 구했는가 망하게 만들었는가. 그런, 나를 구원했는지 파괴했는지 모를 취미 중 하나가 소설, 그중에서도 스릴러 소설 읽기다. 그리고 원래 망한 인생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법이다
- P18

내게 판타지라는 장르의 벽은 늘 그 ‘끓는점’이 너무 높다는 데 있었다.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성상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숙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 ‘지금, 이곳 너머’를 무대로 하고 있으니 일단 거대한 개념에서부터 꼼꼼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설정을 먼저 깔아야 한다. 세 권은 기본이고 다섯 권 이상 이어지는 시리즈가 많다. 그러니 300~500페이지는 읽고 나야 끓기 시작하는데, 500페이지까지 끓이다 보면 언제 끓여서 언제 먹고 포만감을 누리나 하는 생각에 벌써 지친다.
책장을 열면 바로 끓기 시작하는 스릴러나(첫장 혹은 첫 문장에서 이미 긴장이 시작된다), 남자 주인공이 나오면 끓기 시작하는 로맨스(1500페이지를 넘기는 경우가 아니면 아무리 늦어도 30페이지 이내에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첫 ‘밀실살인’이 벌어지면 냅다 부글거리는 본격 미스터리(현장에 탐정이 함께 있다면 금상첨화)에 비해 판타지의 진입 장벽은 너무 높아만 보이는 것이다
- P36

범죄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이 죽기 때문이 아니라 크건 작건 어떤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너무 길고 구차한데다 상대가 별 관심도 없는 경우가 많아 생략하기 일쑤다. 살인사건보다 살인을 저지른 인간의 심리가 궁금하잖아요, 하는 설명은 어디까지나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하고나 할 수 있는 얘기다
- P104

그래서 범죄물을 읽는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의의 정체가 궁금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가 이루어지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 천재적인 두뇌플레이를 보고 싶어서, 그 안에서는 언제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서사 안에서 안전한 쾌락을 느끼고 싶어서. 하지만 ‘내가 파는 장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
부디 바라건대, 이 글을 쓰는 나나 읽는 여러분의 삶은 평온하기를. 그리고 이 세상도, 약간은 평온해지기를
- P116

현실이 잔인하다고 잔인한 설정을 한껏 이용하는 창작물을 즐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의 문제를 픽션의 연장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픽션’과 ‘픽션 같은’은 전혀 다른 말이다. 픽션을 픽션으로 즐기려면 현실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 사실은 종종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파는’ 장르의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 쾌락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이 그렇다. 스릴러가 현실의 피난처로 근사하게 기능해온 시간에 빚진 만큼, 현실이 스릴러 뒤로 숨지 않게 하리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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