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참던 나날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어느 정도 갖추어진 사회에서 태어나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환경에 태어납니다.

이미 갖추어놓은 사회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우리는 그들을 사회 부적응자, 및 사회성 장애 라는 말로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리디아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폭력적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을 방치했던 어머니는 우울함을 견디지 못해 술에 절어 지냈습니다. 수면제를 입 안에 잔뜩 털어넣고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집 안에서 리디아는 수치심과 절망을 먼저 배웠습니다. 훌륭한 수영선수였지만 대학에 진학한 뒤 마약에 손을 댑니다. 경기에 출전하면 끝까지 완주하지도 못했습니다. 수영선수로서의 경력은 날아가버립니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혼엔 두 번 실패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삶을 슬픔의 심연으로 밀어넣은 건 딸의 죽음이었습니다. 딸은 태어나던 날 죽었습니다. 리디아는 한동안 좀비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종일 침대에 누워 울며 신음을 뱉어냈습니다.

종종 찬란한 기회가 찾아왔지만, 잡을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학대, 성폭력, 중독, 자기파괴, 사산의 슬픔을 겪은 뒤에도 끝내 자신의 힘으로 솟아올랐고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진부한 스토리고 진부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글쓰기는 저자를 구원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줍니다. 여성의 글쓰기는 역사 속에서 칭송받아온 적이 없지만 이토록 폭발적이고 강력합니다.

‘부적응자’에게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글을 통해 보여줍니다.

헐리웃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숨을 참던 나날을 읽자마자 영화 판권을 샀다고 합니다. 대본과 연출 모두 맡을 것으로 보여 기대와 궁금증이 한껏 커집니다.

하지만, 아주 작고 아주 불안한 나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작은 소녀가 있었다. 나는 그 소녀를 동굴에 가둬 놓았지만, 그 동굴에서 소녀는 미소 짓고 있었다.
- P93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나 자신의 끝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죽음 근처에 가고 싶었다. 정말로 죽은 근처에 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랬을 수도.
- P218

그는 항상 나를 웃겨주었다. 나는 10살 이후로 웃은 적이 없었다. 아이였을 때는 안전하지 않아 웃을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 딸을 잃고 나니 너무 아파 웃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술 취한 남자가 나를 웃겨주었다. 언제나. 가끔은 그게 최고였다는 생각도 든다
- P238

책을 읽고 싶었다. 밤마다 들었던, 나를 마비시키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나는 관념의 나라를 여행하고 싶었고 생각을 체감하고 싶었고 내 머리 꼭대기를 터드려 열어젖히고 싶었따. 정신 나갈 때까지 술 마시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었다.
- P256

유일한 목격자는 오직 몸밖에 없다는 잔인하지만 엄연한 진실에도 불구하고,기억력이라는 정신의 강압적인 힘만을 고집하니까.
- P262

이것을 꼭 이해해야 한다. 망가진 사람들은 항상 네, 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바로 앞에 대단한 것이 있어도 그것을 선택하지 못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고 사는 것은 부끄러움이다. 좋은 것을 원한다는 사실에서 생겨난 부끄러움,좋은 것을 느끼는 데에서 생겨난 부끄러움.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같은 공간에 서있을 만한 가치가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생겨난 부끄러움.우리 가슴 위에 커다란 주홍글자.
- P277

남자들 여럿이 모이면 그들만의 규칙이 작동한다. 손동작과 시선, 자세, 주고받는 말들과 말 속에 담긴 다중적 의미. 사소한 도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 그렇게 형성되는 위계.
- P308

한 문장에 생명과 죽음을 함께 담아내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한 몸에 담아내는 것도.
사랑과 고통을 모두 끌어안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 P345

남편 앤디가 아버지를 데려왔을 때, 내 자아는 두 명의 리디아로 쪼개졌다. 하나는 딸, 고통받아 망가진 소녀였다. 다른 하나는 막 새로운 삶을 시작한 여성이자 어머니, 작가였다
- P391

결혼 생활이 파탄 나면,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라. 성장기를 보낸 가족이 별로였다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라.
세상에 얼마나 사람이 많은가. 거기서 고르면 된다. 지금 같이 사는 가족이 상처를 준다면, 짐을 챙겨 떠나라. 지금 당장.
- P408

예술 안에서 나는 나의 동족을 만났다.
그들은 내 옆을 지켜주고 내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이건 당신을 위한 책이다. 내가 길을 뚫어 흘려보낸 물이다.(…)
안으로 들어오기를, 이 물이 당신을 잡아줄 것이다.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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