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공허감과 깊은 슬픔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

30여 년간 같이 살아온 아내와의 사별 후 반스는 5년여 간을 사회와 격리된 채 생활을 합니다. 그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단 한 줄의 문장도 쓰지 않고 작품도 출판하지 않았는데, 이 책에는 그간의 내면변화가 담겨 있습니다.

책의 원제는 Levels of Life. 삶의 레벨 혹은 삶의 계층을 의미합니다. 원제와 어울리도록 이 책은 총 3부(3계층)로 이루어져있습니다.

1부에서는 뜬금없이 열기구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2부는 여전히 열기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지 배경이 하늘이 아니라 이제는 땅으로 내려옵니다. 베르나르와 버나비의 사랑이야기가 호화롭게 펼쳐집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결국은 헤어집니다.

3부에서야말로 본격적인 작가 자신의 사별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기구에서 바라본 세상이 평지에서 보이는 세상과 확연히 다르듯, 사랑의 환희에 빠진 두 사람의 눈에 보이는 세상 또한 그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삶의 여러 층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하늘, 땅, 지하로 이어지는 레벨들. 우리들의 삶과 죽음. 하늘에서 태어나 땅에서 살다가 지하로 내려가는, 역사 전체적으로 볼 때는 매우 짧은 시한부 인생을 이 책은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상과 달리 상당히 글이 담담하고 차가운 편이었습니다. 아내의 죽음을 그냥 어찌할 수 없어서, 자신의 슬픔도 어찌할 수 없는, 그저 세상이 돌아가는 일부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작가의 내면 정리로 끝을 맺습니다.

반스가 아내에 대해 아무것도 잊지 않았음을, 완전히 떠나보내지 않았음을 압니다. 어떤 말로도 그를 위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남, 이별, 새로운 만남, 그러한 것들을 가슴 아련하게 잘 느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실감도 극복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무언으로 말해주는 듯 합니다.

"에세이"는 그 진정성 때문에 그 장르를 정말 존중하고 좋아합니다. 이 세계적인 소설가의 에세이는 말 그대로 "진정성" 그 자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이 진실과 마법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사진에서의 진실,기부 비행에서의 마법처럼
- P61

그녀와 함께한 짧은 시간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을 부채질했고, 급기야 내내 함께 하고 싶어졌다
- P80

아, 그렇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걸요. 그래서 난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거고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감각, 쾌락,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어요. 난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감정을 찾아 헤매요. 삶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나의 마음은 어느 누구, 어느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짜릿한 흥분을 원한답니다. - P93

사별의 슬픔은 인간으로서의 상태이지 의학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며, 그 고통과 더불어 다른 모든 것을 잊는 데 도움이 되는 약은 있어도 치유해주는 약은 없다.
- P116

그러나 우주가 다만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면 우주 자신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을 터이니, 우주 따윈 될 대로 되라지. 세상이 그녀를 구할 수도 없고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면, 도대체 내가 뭣 때문에 세상을 살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 P122

내가 느끼는 비탄이 어느 정도는 나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건-‘내가 뭘 잃어버렸는지 봐줘. 내 인생이 어떻게 쪼그라들었는지 보라고’-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부터 줄곧, 언제나, 그녀에 관한 일이었다. 그녀가 무엇을 잃었는지 보라. 그녀는 인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육신, 그녀의 영혼, 그녀가 인생에 대해 품었던 빛나는 호기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때로는 인생 그 자체가 가장 큰 상실자이며, 진정 사별을 겪는 쪽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인생은 더 이상 그녀의 빛나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29

우리는 신의 위치를 잃었고 나다르의 위치를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깊이를 잃었다. 아주 먼 옛날의 어느 한 때, 우리는 지하세계로,죽은 자들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곳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 P142

비탄과 대비되는 애도의 문제가 있다. 비탄은 하나의 상태인 반면, 애도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둘을 차별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둘 사이엔 불가피하게 겹치는 면이 있다.
- P144

아내가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한, 그녀는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물론 아내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생생히 살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기억하는 가장 주된 사람이다. 만약 그녀가 어디엔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내 안에 내면화되어 존재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자살을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그러했고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자살하면 나 자신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욕조의 물이 붉게 변하면서 그녀에 대한 나의 빛나는 기억들이 희미해져 갈 때, 그녀는 두 번째로 죽게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결국 (혹은 한동안만이라도) 그냥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더 광범위하지만 이와 밀접한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내가 살아 있다면 그러길 바랐을 모습대로 살아야만 한다
- P148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 P169

‘우리’는 씻겨가고 이제 ‘나’만 남았다. 쌍안경의 기억은 단안경이 되었다. 똑같은 하나의 일화에 관한 두 가지의 불확실한 기억을 삼각측량과 항공 탐사의 과정을 거쳐서 더 확실한, 단일한 기억으로 응집할 가능성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 P181

고독은 본질적으로 두 종류로 나뉜다. 사랑할 사람을 찾지 못해서 느끼는 고독과,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빼앗겨서 느끼는 고독이다
- P184

자연은 너무나 정확해서, 정확히 그럴 가치가 있을 만큼의 고통을 안겨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 고통을 즐기기도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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